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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산재는 ‘성실한 노동’이 아니라, ‘부정한 이윤 추구’에서 발생한다

시퍼런 불길이 폭발하고 화라락 시뻘건 화염이 덮쳐들었다. 한 모금만으로 죽음에 이르는 잿빛 연기가 통로마다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서른 여덟 명 노동자들의 꿈과 우주는 육신과 함께 산산이 찢기고 그을리고 불타고 질식했다.

4월 29일. 내일은 부처님 오신 날, 모레는 노동절, 글피는 토요일, 그글피는 일요일. 사람들이 황금연휴를 앞두고 그간 이어진 사회적 거리두기의 피로감을 어떻게 풀어볼까 궁리하던 시간이었다. 폭발을 일으키는 유증기로 가득 찬 밀폐공간 속 노동에 떠밀려 들어간 일용직 노동자들은, 종교와 계급투쟁과 기성제도로 허락된 연휴를 살아서도 누릴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들과 유가족의 삶을 삼켜버린 것은 화마(火魔)가 아니었다. 진짜 ‘악마’는 불길이 아니라 차갑고 음험한 물신주의 시스템과 그 추종자들이며, 작동하지 않은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이 ‘악마의 사제’ 역할을 했다. 화재가 아니라 산재다. 단순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다.

29일 오후 경기 이천시 모가면 한 물류창고에서 불이나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0.04.29.
29일 오후 경기 이천시 모가면 한 물류창고에서 불이나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0.04.29.ⓒ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2008년 똑같은 물류창고 화재 중대 재해로 마흔 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법으로 책정된 마흔 명의 목숨값은 사고 책임자들과 다단계 건설하청구조를 단죄하기에 턱없이 낮았다. 그랬더라도 죽음의 경로를 밝혀 위험의 구조를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 추모의 도리였다. 하지만 위험과 대비책은 살아있는 교과서와 실행 매뉴얼로 현장에 전파되지 않았다.

마흔 명 노동자의 죽음으로부터 온 교훈은 챙겨보지 않는 보고서와 백서에 갇혀, 문서고와 웹사이트 어느 구석에 쳐박혔다. 동료의 죽음을 지켜본 노동자들의 경험과 재해조사에 참여했던 베테랑 요원들 뇌리 속에서 이전되지 않은 채로 침잠했다. 그렇게 일터의 위험은 유증기와 함께 여전히 지하에서 밀폐공간에서 또아리를 틀고 예비된 폭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험과 죽음의 전조는 분명했지만 막지 못했다. 노동자들의 경험은 ‘작업중지권’은 커녕 송풍기 한 대 현장에 가져다 놓을 권능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며, 우레탄 발포작업 할 때의 꺼림직함만 더했을 것이다. 베테랑 안전보건행정 요원들의 뇌리 속에서 서류와 문자로만 옮겨진 경고는 여섯 번이든 열 번이든 사고 이전엔 작동하지 않으며, 노동자들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드러나 문책의 가늠자가 된다. 베테랑 요원에 대한 존중은 아직도 전문성보다는 가차없는 처벌의 엄중함에서 나온다.

30일 오후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사고 합동분향소에서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2020.04.30
30일 오후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사고 합동분향소에서 유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2020.04.30ⓒ사진 = 뉴시스

‘노동안전보건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으로서 자괴감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다. 그동안 국제노동기구(ILO) 웹사이트에서 10만명 당 몇 명으로, 고용노동부 산업재해현황분석(産業災害現況分析)에서 제대로 꺾인 적 없는 꺾은선 그래프로, 조간신문 사회면 구석에서 때로는 한 면을 가득 채운 이름 없는 이름으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재해조사서에서 익명에 다름 없는 낯선 실명으로 죽음을 만났다. 그렇게 해마다 달마나 날마다 노동자들의 죽음을 만났지만 각성하지 못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에 무뎌져 무엇하나 제대로 바꾸어 놓질 못했다.

그래서 또다시 덩그러니 벽면 한가득 하얗게 울부짖는 국화 꽃더미 속 열지어 선 사진으로 노동자들의 죽음을 만난다. 이런 처절한 데자뷰(Deja vu)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프로 숫자로 익명으로 만난 노동자들의 죽음에 각성하지 못하고, 눈 앞에서 피흘린채 새까맣게 그을린 시신으로 만나야만 깨우치는 사회라니 얼마나 야만적인가?

우선 사고 원인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책임 소재를 찾는 것을 넘어, 재발을 막기 위해 할 일이다. 2008년 재해의 경험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 때와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정말 발포작업 할 때 용접기만 없애면 되는 것인지 밝혀야 한다. 여섯 차례의 경고와 주의 조치에도 사고가 발생한 이유를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 경고나 주의는 적절한 것이었는지, 조치를 했음에도 사고가 발생한 것인지, 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현행 법제도에서 가늠되는 노동자들의 목숨값이 사고 책임자들과 다단계 건설하청구조를 단죄하기에 적절한지, 기업의 이윤추구 과정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권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규제와 처벌의 수준은 도대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따져야 한다. 죽음의 경로를 밝혀 위험의 구조를 낱낱이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추모다. 그리고는 드러난 위험과 그 대비책이 현장에서 살아서 작동하도록 제도와 체계를 뜯어고쳐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발의 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개기업 처벌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0.04.28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 관계자들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발의 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개기업 처벌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0.04.28ⓒ김철수 기자

각성해야 한다. 글을 쓰며 성토하는 나를 포함한 전문가들도, 노동 존중 시대의 대통령도. 서른 여덟명 노동자의 죽음 이틀 만에 맞은 노동절에 내놓아야 할 메시지는 고상한 덕담이 아니었어야 한다. ‘희생된 분들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였다는 인식으로 시작했다면, 명복을 빌고 위로만 할 것이 아니라 왜 죽는 이들이 일용직 노동자들인지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이제 사회 주류라는 노동자들이 왜 일터에서는 주체가 되지 못하여 죽어가는지, ‘반복되는 일 속에서 숙련공이’ 되어 위험을 예지해도 작업을 멈출 권리를 얻지 못하는지 답해야 한다.

산재는 노동자들의 ‘성실한 노동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가들이 제 것이 아닌 목숨을 걸고 위험한 속에서 행하는 ‘부정한 이윤 추구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류현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직업환경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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