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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 어떤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꿈꾸는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어렸을 때, 2028년이 되면 엄청 미래가 달라질 줄 알았어. 제트 팩과 모노레일을 타고 다니고, 우주비행사처럼 알약으로 식사를 하고 말이야. ··· 그런데 지금을 봐. 가스·전기세는 오르고, 일자리는 없어지고···”

이것은 영국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 (Years and Years)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어렸을 적에 2028년은 먼 미래였고, 공상과학 영화에서 봤던 일들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라고 믿었었다. 그런데 그 미래가 왔는데, 그 시간을 살아가는 인물은 전기·가스세 인상을 걱정하고, 잃어버린 일자리에 낙담한다. ‘이어즈 앤 이어즈’ 는 2019년부터 2034년까지의 영국 상황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보여주는 미래는 조지 오웰, 1984와 같은 강력히 통제되는 전체주의 사회는 아니다. 정치권도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정당이 존재한다. 그러나 1984처럼 절망적이다.

이어즈 앤 이어즈 한 장면
이어즈 앤 이어즈 한 장면ⓒ화면 캡처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한다. 그리고 미-중간 분쟁은 중국이 만든 인공섬에 미국이 핵을 발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전 세계는 공포에 쌓인다. 그러나 핵미사일이 발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에서는 핵미사일 발사로 인한 공포의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은 큰 변화 없이, 신자유주의적 경제 시스템이 만든 전쟁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국가의 경제관리능력은 바닥을 치고 있다. 금융기관은 연일 도산을 한다. 안정된 일자리는 찾기 힘들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3~5개의 일자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영국민을 정치에 냉소적으로 만든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포퓰리즘 정치가 득세한다. TV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독설가로 갑자기 유명해진 기업인이 정치인으로 변신하고 정치에 유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좌파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그의 언행을 헛소리, 조롱거리로 여겼었다. 유럽에서는 제2, 제3의 트럼프들이 득세한다.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힘든 뉴스와 주장을 전하는 다양한 미디어가 범람한다. 국민은 이러한 뉴스에 동요한다. 혼란스런 상태에서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폐업을 한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공포 분위기를 양산한다. 특히 반난민 정책이 강화된다. 난민, 이주노동자 등을 수용소에 수용하여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기후변화로 인해 홍수와 같은 자연재난이 끊이지 않고, 이로 인해 정전이 수시로 일어나고, 물가는 폭등한다. 혼란스런 사회는 테러를 양산시킨다. 급기야 핵 테러가 발생하고 방사선으로 인한 피해가 늘어난다.

6회로 구성된 드라마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들은 정치적 선호도가 달랐지만, 서로 의지하며 사는 보통의 가족이다. 이들이 자주하는 대사는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다음은 뭐야” 이다. 이 대사는 전체 드라마의 분위기를 표현한다. 드라마 속 평범한 인물들은 자신들에게 무엇이 일어나는지 잘 모른다. 당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미래 시간은 드라마가 시작되는 현재 2019~2020년의 연장이다. 따라서 미래는 현재의 모순, 부정의, 불평등, 부당함이 증폭된 시간일 뿐이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외계에서 온 생명체와의 싸움, 인간과 AI와의 싸움으로 인한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계속 빨간 신호가 켜졌으나 무시되어 온 기후변화, 사회경제적 양극화, 혐오 등의 현재 문제가 디스토피아를 만든다.

이어즈 앤 이어즈 한 장면
이어즈 앤 이어즈 한 장면ⓒ화면 캡처

어떤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꿈꾸는가

많은 지성들이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는 코로나 19 전과 후로 나누어질 것이란 기대 찬 전망이 나온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요구이기도 하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 담아야 할 내용은, 녹색 비전에서 공공의료 정책까지 다양하게 많다. 나는 여기서 단 하나의 주제, 노동문제를 하려 한다. 코로나19는 경제·사회적 불평등이 국민의 삶과 사회공동체에 얼마나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생물학적 바이러스 차원의 위험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만든 사회적 위기를 실감하게 했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 방역, 건강 수칙을 잘 지키는 사회가 우리의 목표인가. ‘이어즈 앤 이어즈’에서 보여준 것처럼 미래 위기는 핵전쟁이란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핵전쟁을 피했다고 디스토피아를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생물적 바이러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바이러스 즉 사회경제적 바이러스들이 있다.

이천에서 또 사람들이 죽었다. 코로나 19 방역으로 사회가 자신감을 얻고, 전 세계에 모범이 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할 때 사람들이 죽었다. 화재현장에서 노동자들이 탈출하려고 석고보드 벽면을 뜯은 흔적이 있었다. 찢기어진 벽면에 그들의 사투와 절망이 핏자국처럼 어렸다. 사망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이 검게 타버렸다. 그들은 평생 일용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었으며,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당장 먹거리가 급해서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 19로 많은 생명을 잃었다. 그런데 2020 봄에 발생한 코로나 사망자 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산재사망이 매년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 방역에 일정 성공했다. 코로나 19를 극복할 수 있는 힘 중 하나는 ‘바이러스는 무차별적이고, 나도 바이러스에 전염될 수 있다’는 인식이었다. 잠재적 피해자로서의 의식이 바이러스를 대처하는 태도를 만들었다.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방역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산재를 포함한 노동문제는 어떤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일부나, 개별 차원의 문제가 된다. 산재 피해자들 대부분은 중심이나 주류가 아니라 주변에 속한다. 즉 계층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사회적 중심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산재 이슈를 포함하여 노동문제에 있어서는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원인은 기업의 성장이 바로 국가의 품격이라는 의식에 기초하여 기업 중심의 노사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노동절을 맞아 문대통령은 “노동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이며, 주류로서 모든 삶을 위한 연대와 협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이 더 이상 노동자들이 약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유감이다.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것은 힘, 권력과의 관계다. 수적 우세만으로 주류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 노동자의 조직 숫자는 200만 명에 불과하다.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 한 사업장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분리되는 경계가 만들어진 지 오래다. 불안정 노동자는 정규직과 달리 코로나 사태로 실업자가 되어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다. 또한 노동자의 안전에 대하여 기업에게 온전한 책임을 물을 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는 기본적인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1일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당국,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2차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2020.05.01.
1일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당국,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2차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2020.05.01.ⓒ뉴시스

‘이어즈 앤 이어즈’ 드라마의 메시지는 가족의 제일 연장자인 할머니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다. 현재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모두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가 너무 무기력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 외에 관심이 없었다. 상점에서 1파운드의 티셔츠를 살 때, 그 싼 가격에 생산 노노동자와 농부에게 돌아가는 몫이 얼마큼 포함되는지 관심이 없었다. 슈퍼 계산대에 계산원 대신 기계로 대체했을 때, 계산원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평범한 소시민적 분노를 이용하는 정치인들을 조롱만 했지 대안적 실천을 하지 못했다. 드라마는 우리의 잘못이 만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라는 당연한 진리를 전하고 있다.

2028년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코로나 사태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많이 보여주었다. 경제사회적 약자들은 코로나 사태로 더 많은 고통을 받는 것을 목격했다. 또한 코로나 사태는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제 약자들의 부딪히고 있는 고통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연대가 있다면, 우리는 다른 세상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처럼 미-중 G2의 패권 전쟁으로 세계가 불안해지는 것을 우리는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가 실제적 주류가 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김애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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