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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의 삶과 문학]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뉴시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 <소년이 온다>

소설은 40년 전 광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전해 듣고 기억하는 5월 광주와, 광주의 시민들이 주검이 되어 돌아간 상무관과, 합동분향소, 상무관에도 안치되지 못하고 어딘가에 버려져 썩고 불태워진 몸의 영혼들에 대한, 10년, 20년이 지난 뒤, 끝까지 도청에 남아 광주를 지켰던 열여섯, 열아홉, 스물, 스물세 살 들의 학살과 고문에 관한 증언. 살아남음에 관한 기록.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 <소년이 온다> ‘에필로그’ 중

언젠가 우리가 열여섯 살의, 열아홉 살의 봄날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 몸을 숨기며 뿌리고 간 한 장의 유인물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를. 우리의 ‘연한’ 것을 으깨어버린. 우리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때까지 알고 있던 세계의 정의를 뒤바꿔놓았던.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광주가 우리의 양심의 근본이 되었고, 세계관이 되었고, 그 학살의 주범과 공범자들을 잡아 가두고 처벌하고 싶어 목마르던 날이 있었던. (‘언제가 됐든 내가 죽을 땐, 그 사람들까지 꼭 데리고 갈 생각이었어.’ -소년이 온다) 죽여졌다면 열여섯, 열아홉, 스무 살의 그들로, 살아남았다면 지금, 어느 거리에서 우리의 곁을 엇갈리며 지나가고 있을. 끝나지 않은.

-동호 (16세, 사망)
‘오늘 남는 사람은 정말 다 죽나요?’
‘죽을 거 같으면, 도청을 비우고 다 같이 피해버리면 되잖아요. 왜 누군 가고 누군 남아요.’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달아났을 것이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동호 친구 정대 (16세, 사망)
‘그때 난 네 손을 붙잡았는데.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넋 나간 듯 중얼거리는 너를 행렬의 앞으로, 더 앞으로 끌었는데.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누나는 죽었어. 나보다 먼저 죽었어.’
‘이 몸들이 모두 그 거리에 함께 있었을까.’
‘몸들의 탑 위에 기름을 붓기 시작했어.’
‘한꺼번에 숨들이 끊어지는 소리. 그때 너는 죽었어.’
‘그들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어. 묻고 싶었어. 왜 나를 죽였지. 왜 누나를 죽였지. 어떻게 죽였지.’
‘나를 죽인 그들에게 가자. 하지만 그들이 어디 있을까.’

-은숙 (수피아여고 3학년, 생존)
‘김은숙 씨가 뭐가 미안합니까? 왜 나한테 사과를 해요?’
‘처음부터 살아남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동호야, 왜 집에 안 갔어? 이 애는 중학생이에요.’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일곱 번째 뺨을 잊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광주항쟁 당시 모습
광주항쟁 당시 모습ⓒ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진수의 시민군 동료 (스물세 살 복학생, 생존)
‘김진수는 그해에 대학 신입생이었으니, 아직 뺨에 솜털이 나 있었습니다.’
‘김진수는 우리 중에서도 특별히 변칙적인 고문을 더 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조의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였습니다.’
‘김진수는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적당한 때 너는 항복해라. 손들고 나가는 애를 죽이진 않을 거야.’
‘날이 밝을 때 까지만. 수십만의 시민이 분수대 앞으로 모일 때까지만.’
‘아니오,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십년이 흘렀습니다.’
‘언젠가 김진수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꼭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어, 형.’
‘살아 있는 김진수와의 만남은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선주 (스물세 살 양장점 미싱사, 생존)
‘부탁드립니다. 임선주 씨가 이 책의 여덟 번째 증언자가 되어주세요.’
‘올해로 당신은 만 사십삼 세가 되었고.’
‘전남방직 여공 수십 명이 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계엄 해제. 노동삼권보장. 당신은 홀린 듯 그 버스가 사라진 방향으로 걸었다.’
‘당신은 사십여 분 동안 메가폰을 잡았다. 제발 불이라도 켜주세요, 여러분.’
‘기억해달라고 윤은 말했다. 직면하고 증언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 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학살 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죽지 마. 죽지 말아요.’

-동호의 엄마
‘내 손으로 너를 묻었은게.’
‘느이 작은형이…… 이 원수는 제가 갚을랍니다. 삼십 년이 흘러가도록. 저것이 아직도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하고 있단가.’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지금 들어가면 못 나옵니다. 저 안에는 죽을 각오가 된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그 군인 대통령이 온다고, 그 살인자가 여기로 온다고 해서……’
‘벽에 걸린 살인자 사진을 끌어내렸다이.’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아.’
‘가만가만 부른다이 …… 동호야.’

‘나를 죽인 그들에게 가자. 하지만 그들이 어디 있을까.’

전두환은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등의 죄목으로, 노태우는 내란중요임무종사 죄로 1심에서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곧바로 감형, 사면되었다. 12.12 및 광주학살 관련자 12명 등도 사면되었다. 끝없이 발견되는 학살의 증거와 주검들의 책임자는 없다. 내 아이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동호와 정대와 은숙과 진수와 선주가 겹친다. 마주볼 수 없었다. 열여섯 살 동호는, 어디선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운다.’는 그 시민군은 이제, 괜찮을까. 우리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대로도 괜찮을 거라고.

한강(1970~ )

소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2016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대표작으로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여수의 사랑> <소년이 온다> 등이 있다.

이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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