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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매년 1만명, 산재 유가족이 바라는 것

5월 10일, 입주민의 폭행과 폭언을 견디다 못한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3일, 강원도 삼척의 시멘트 공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15일에는 경남 함안의 금속처리 공장에서 폭발사고로 2명이 사망했다. 17일 새벽엔 인천에서 상수도관을 교체하던 노동자가 숨졌다.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한국은 2019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산재)로 2020명이 사망한 나라다. 매일 6~7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지는 상황이니, 보도되지 않는 산재 사망이 더 많다. 한 해 2천 명이 산재로 숨지면, 매년 1만명 가까운 산재 유가족이 발생하고, 그 보다 더 많은 산재 노동자의 동료들이 생긴다. 산재 유가족은, 사망 노동자의 동료들은 잘 지내고 있는 걸까?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고(故) 김용균 노동자를 기리고, 더 이상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활동하는 김용균재단에서 여러 산재 유가족을 만나 그 동안의 상처와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 할 점을 묻고 있다. 산재 유가족들은 공통적으로 ‘상담’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처를 얘기한다고 한다.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가운데)가 7일 서울 종각역 4거리에서 열린 ‘고(故)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2.07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가운데)가 7일 서울 종각역 4거리에서 열린 ‘고(故) 김용균 1주기 추모대회’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2.07ⓒ정의철 기자

사고를 겪으며 유가족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왜 이런 사고가 일어났는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다. 왜 아침에 출근했던 내 가족이 무사히 퇴근하지 못했나, 사고는 왜 발생했는가, 일을 시킨 사장은 이 사고에 책임이 없는가, 무엇이 달랐더라면 그이는 살았을 수 있을까,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어떻게 하면 이 죽음이 헛되지 않을까. 유가족들이 말하는 ‘진상규명’, 네 글자에는 이런 절절한 마음이 들어 있다.

하지만,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재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찰,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해 제대로 기소·처벌하지 않는 검찰과 법원, 반복되는 사고를 막지 못하는 무능한 고용노동부 때문에 유가족의 마음을 풀릴 만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돈벌이를 우선하며 매년 수천 명의 노동자를 산재로 죽게 하는 이 사회의 위로방식은 고작 ‘합의금 지급’에 머물 뿐이다. 작년 10월, 아버지를 산재 사고로 잃은 한 유가족은 당시 노동조합조차 주로 ‘합의금’ 얘기를 했던 점이 상처였다고 전했다.

“(노동조합 간부가 와서) 사고 현장이 명백한 거 같으니까, 이렇게 합의를 하셔라. 합의를 하셔도 될 거 같다. 사실 저는 돈 얘기 하는 거 너무 싫어가지고... (그런데) 그냥 그렇게 얘기하다 가셨어요. 합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런 얘기 하다가...”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의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2020.04.27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의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2020.04.27ⓒ김철수 기자

이러니, 망자와 유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사과와 보상을 약속하는 합의가 마치 ‘거래’ 성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합의서에 도장 찍고 돈 받고 나왔는데, 회사 쪽 변호사가 잘 끝났으니 웃으면서 인사하라고... 무슨 웃으면서 인사를 해. 그래서 ‘변호사님도 정신 차리세요.’라고 한 마디 했어요.”

건설 현장에서 동생을 사고로 잃은 한 유가족은, 이럴 때 위로가 된 것은 다른 산재 피해 가족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산재 피해가족들을 만났는데, 이미 겪어 보신 분들이기 때문에 제일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사건 진행이 어떻게 될 거다’ 알려주시고, ‘회사가 어떻게 회유를 할 거다’ 하는 것도 알려주셨어요. 감정적 심리적으로도 ‘좀 있으면 정신과 약도 먹고 그렇게 될 거야’ 라고 하셨는데, 정말 제가 이상해지더라고요”

최근 김용균재단에서는 이천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 참사로 숨진 노동자들의 분향소에 ‘유가족을 위한 안내문’을 부착했다. 유가족들이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2020.05
최근 김용균재단에서는 이천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 참사로 숨진 노동자들의 분향소에 ‘유가족을 위한 안내문’을 부착했다. 유가족들이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2020.05ⓒ사진 = 김용균재단

최근 김용균재단에서는 한익스프레스 산재사고 분향소에 ‘유가족을 위한 안내문’을 부착했다. 지난 4월 29일,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건설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의 노동자가 숨졌고, 직접적인 유가족만 100명이 넘게 발생했다.

“한익스프레스 화재로 인한 사망 사고는 여러분 가족의 잘못이 아닙니다. 유가족들은 상황을 가장 잘 알 권리가 있고, 의견을 말하고 요구하실 권리가 있습니다. 전문가의 조력을 받고 존중받으며 돈 때문이라고 의심받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유가족들의 행동에 함께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가족과 함께 할 사람’은 누구일까? 사고 조사가 길어져도 잊지 않고 지켜보며, 진짜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받는지 추적하고, 사고 이후 어떤 제도가 바뀌고 현장은 어떻게 달라질지 따져볼 언론, 노동자, 시민들이 바로 그들이 되어야 한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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