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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0주년 특별기획] 코로나가 만든 재난 시나리오, ‘시네마’는 살아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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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의2020년 상반기는 그야말로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상상불가의 속도로 수직 하강하는 롤러코스터였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지난 2월10일 진행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차지했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뚫은 이 영화에 대한 찬사와 이례적인 아카데미의 선택은 연일 국내외 문화 뉴스를 도배했다.

영화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에 대한 인정은 한국영화 101년 역사에 쏟아진 가장 성대한 축전이었다. 하지만 축제의 시간은 짧았다. 일주일 후인 2월18일, 국내 코로나19 확산의 출발점이 된 대구 신천지교회 ‘31번 환자’가 발생했다. 벅찬 감동의 드라마는 빠르게 막을 내리고 도저히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재난영화가 시작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지난 2월10일 진행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차지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지난 2월10일 진행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4관왕(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차지했다.ⓒ뉴시스/AP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4월20일 공개한 ‘2020년3월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3월 전체 관객 수는 고작 183만 명이었다. 1284만 명이 극장을 찾았던 전년 동월 대비87.5%가 감소한 숫자다. 전체 매출액은 2019년 같은 기간 대비 88.0%(1114억 원)가 감소한 152억 원이었다. 지난3월은 충무로에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이 가동을 시작했던 2004년 이후 최저의 관객을 동원한 달이었다. 1월14편이었던 한국영화 실질 개봉 편수는 2월에는 10편, 3월에는 7편으로 줄었다. 그중 흔히 대중 상업영화라 말하는 500 개관 이상으로 개봉한 한국영화는 3월에는 0편이었다. 쉽게 말해 2020년 3월은 평년 대비 1/10로 토막이 난 기근에 가까운 한 달이었다.

그 와중에 겨우 50만 명 조금 넘은 관객수로 전체 흥행 1위를 차지했던 영화의 제목은 ‘인비저블 맨’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침공과 함께 하루 앞,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투명인간’을 주인공으로 한 공포영화의 1위 탈환은 아이러니컬하고 절묘하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환호 1주일 뒤
‘신천지 31번 확진자’로 시작된 일촉즉발 재난영화

이렇게 극장을 중심으로 한 영화시장이 무너지는 가운데 스트리밍과 넷플릭스, 왓챠 등으로 대표되는OTT(Over The Top)로의 유입은 늘어났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라고 불리는‘베를린 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던 영화 ’사냥의 시간‘이 극장 개봉을 거치지 않고 넷플릭스로 직행한 것은 가히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영화의 생태계는 국내외 할 것 없이 빠른 속도로 붕괴되었다. 세계 영화인의 가장 큰 축제인 칸 국제영화제가 기약 없이 연기되면서 올해 개최가 불가능해졌다. 이후 이어지는 전 세계의 영화제 릴레이도 그 바통 넘기기를 멈췄다. 매년 4월에 열리던 전주 국제영화제는 5월로 한 차례 연기된 후 최종적으로 공개 상영도 관객도 없이 오로지 경쟁부문 작품에 대한 심사만 진행되는 방식을 택했다. 상반기 개봉을 기다리던 영화들은 일단 개봉을 보류하거나 하반기로 연기했다. 투자가 엎어지고 크랭크인을 준비 중이던 영화의 제작도 무기한 연기되었다. 해외 촬영 중이었던 영화팀은 급히 촬영을 멈추고 귀국했다. 보통 짧게는 6개월에서1년까지 잡혀 있게 마련인 주요 배우들의 스케줄도 모두 꼬여버렸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명장면. 관객들을 위해 광장 벽에 영사기를 틀어준 알프레도와 그와 우정을 나누는 주인공 토토.
영화 ‘시네마 천국’의 명장면. 관객들을 위해 광장 벽에 영사기를 틀어준 알프레도와 그와 우정을 나누는 주인공 토토.ⓒ영화 스틸

코로나19로 시네마는 멸종할 것인가, 진화할 것인가
“잔인한 바이러스”도 대중의 호기심을 살해할 수는 없다는 희망

봉준호가 시상식에서 경외를 바치기도 했던 세기의 명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전 세계 영화산업을 장악해버린 프랜차이즈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범람을 꼬집으며 일찍이 ‘시네마’ 즉 영화예술의 위기를 경고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의 기고문을 통해 “전 세계적 시청각 오락 상품”에 의해 점점 ‘시네마’의 설자리가 희귀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단체 관람. 영화관이 가진 가장 기본인 조건은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하면서 고스란히 가장 취약한 조건으로 작용했다. 거대한 스크린을 앞에 두고 어두운 극장에 앉아 다른 관객들과 웃음과 눈물을 공유하던 공동의 체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시네마 천국’의 시간은 점점 먼 기억이 되어간다. 관객들은 서서히 극장을 찾지 않는 주말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라는 권준욱 중앙 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의 선언은 마치 극장을 중심으로 한 ‘시네마'에 대한 사형선고처럼 들리기도 했다. 함께 한 공간에 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던 영화의 향유 방식은 꽤 빠른 속도로 바뀌어 갈 것이다. 바이러스는 ‘언젠가’를 ‘지금’으로 앞당겼다. 곧 도착할 파도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닥쳐올지 몰랐던 영화의 미래를 지금 세계의 관객들은 ‘방역’이라는 극장 안에서 3D, 4D로 꼼짝없이 단체 관람하고 있는 셈이다.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자료사진

공동작업이 창조한 가장 아름다운 20세기 발명품이었던 영화는 힘겹게 다음 세기 속에서 생존 중이다. 무엇 하나도 쉽게 긍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한 팩트이자 희망은 제 아무리 “잔인한 바이러스”라고 해도 새로운 이야기에 목말라하고, 배우를 통해 구현된 픽션의 인물들을 만나고 싶어하는 대중의 호기심을 살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가 시네마의 멸종을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시네마의 진화로 이어질 것인가. 이것은 전 세계 영화계가 이제 막 첫 장을 넘긴 가장 미스테리어스 한 시나리오다.

[창간20주년 특별기획]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모아보기

백은하 배우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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