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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두산그룹은 사우디 왕가 흉내부터 집어치워라

“우리 두산의 전통은 왕위를 한 세대가 쭉 승계하고 다음 장자로 넘어가 그 세대도 반복되는 사우디 왕가 방식이다.”

2005년 두산그룹에서 이른바 ‘형제의 난’이 터졌을 때, 박용성 당시 두산그룹 회장이 했다는 말이다. 나는 그때 이 이야기를 듣고 진짜로 큰 소리로 피식 웃었다. 그룹 회장직을 ‘왕위 승계’에 비유한 것도 웃겼지만, 그게 사우디 왕가의 방식을 모방한 거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태도에 실소를 멈출 수 없었다.

21세기 최첨단 자본주의 시대에 세계는 주주자본주의냐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냐를 두고 수준 높은 논쟁을 벌이는데 이 나라 유력 재벌은 사우디 왕가 승계 방식을 따른단다. 왜, 이왕이면 민족 정서를 발휘해 신라의 화랑제도도 도입하고 고구려의 개마무사대도 운영하시지? 그러면 더 폼 날 텐데 말이다.

두산그룹은 최근 극심한 경영난에 빠져 수조 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기에 이르렀다. 혹자는 “현 정권의 탈핵 정책 탓에 두산중공업의 실적이 악화돼 경영 위기를 맞았다”고 주장하지만 웃기는 이야기다. 두산중공업 부진은 탈핵 때문이 아니라 최근 10년 동안 두산건설에 2조 원 가까운 돈을 갖다 박은 탓이다.

문제는 이 무능한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조차 엉망진창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자랑스럽게 앞세우는 사우디 왕가 승계는 한 세대의 형제끼리 쭉 돌아가며 나라를 운영한 뒤 다음 세대로 왕권을 넘기는 방식이다. 이 전통을 기반으로 두산은 3대 형제들이 돌아가며 경영을 맡은 뒤 2016년 4대의 장자인 현 박정원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그러면 다음 경영권은 어떻게 될까? 장남의 장남인 박정원 회장이 임기를 마치면 장남의 차남인 박지원 씨가 차기다. 그 다음은 차남의 장남이 맡아야 되는데 이 집안은 2005년 형제의 난 당시 축출됐으니 대권 후보에서 생략된다. 그 다음으로 3남의 장남 박진원 씨가 차차기를, 이어서 3남의 차남 박석원 씨가 차차차기를 맡는다.

그 뒤로 4남의 장남이 차차차차기, 4남의 차남이 차차차차차기, 4남의 3남(이 집안은 형제가 세 명이다)이 차차차차차차기, 5남의 장남이 차차차차차차차기, 5남의 차남이 차차차차차차차차기를 맡는다. 지금 장난하냐? 그룹 회장이 맛집 대기표 뽑는 줄이냐고?

그래서 지금의 두산그룹 위기는 도대체 누가 책임지는 건가? 지금 회장이? 전임 회장이? 전전임회장이? 전전전임 회장이? 위기 극복은 누가 하는 건가? 차기가? 차차기가? 차차차기가? 차차차차기가?

4대는 그렇다 치고 5대로 넘어가면 어떻게 할 건가? 아들이 너무 많으면 순서 정하기가 난감하니 출생 제한을 위한 가족계획이라도 할 건가? 성평등이 상식인 21세기에 딸이 “나에게도 기회를 달라”라고 나서면 “공주는 찌그러져 있어라” 이럴 거고? 국제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는 거다.

대표적 친일파였던 박 씨 집안은 재산을 형성한 과정부터 정통성이 없다. 그런 박 씨들이 형제끼리 우애를 과시한다며 경영권을 돌려막기 하다가 건설에서 2조 원 가까이 물려 그룹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박 씨 집안의 무능에 수만 명 노동자의 생계가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그 책임을 누가 지는 건지, 미래는 누가 개척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두산그룹이 공적자금을 받으면서 다양한 자구안을 내놓는 중이라고 하는데 그보다 시급한 것은 박 씨 일족이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것이다. ‘사우디 왕가 방식’ 같은 웃기는 소리 그만 하고 염치라는 게 있으면 경영 실패에 책임을 지고 두산에서 떠나라. 그게 박 씨 일족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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