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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생각] 팬데믹, 주인은 누구인가?
마스크를 쓴 행인들이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거리에서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은 상점을 지나가고 있다. (2020.3.20)
마스크를 쓴 행인들이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거리에서 코로나19 사태로 문을 닫은 상점을 지나가고 있다. (2020.3.20)ⓒAP/뉴시스

1.
범유행(汎流行)이라고들 번역하는 팬데믹(pandemic)은 유행성 질환이 광범하게, 특히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이것은 고대 희랍어를 현대어로 만든 것인데, 전철 ‘판pan-’은 ‘모두’를 뜻하고, 명사 ‘데모스dēmos’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뜻하며 이것의 어미 ‘-os’ 대신 달아놓은 영어 어미 ‘–ic’는 ‘~과 관련된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팬데믹을 있는 그대로 옮기자면 ‘모든 사람과 관련된 일’이다. 지위와 인격과 빈부의 차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감염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팬데믹은 2019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질환의 범유행을 잘 가리키는 말처럼 보인다.

2.
막상 고대 희랍 사람들은 ‘판데모스(pandēmos)’를 어떻게 사용했을까? 고대 문헌에서 판데모스가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신 이것을 부사형으로 만든 판데메이(pandēmei, 모두 함께)가 널리 쓰였다. 희랍 고전기를 이끌었던 역사가 헤로도토스와 투퀴디데스의 입을 빌어 ‘판데메이’의 용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팬데믹’은
바이러스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시달리거나
잔뜩 움츠리고 있는 형국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고대의 ‘판데메이’는
이러한 수동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재난 앞에서 모든 사람이
팔을 걷어붙이고, 다함께 일을
치르거나 의견을 한데로
모으는 능동성에 더 가깝다.

우선 두 역사가는 전쟁 상황에서 가용한 모든 병력을 “총동원하여” 전투에 임하는 상황을 묘사할 때 판데메이를 사용한다(매우 빈번하게 쓰이므로 예시는 생략한다). 다음으로 군사력을 총동원해도 힘에 부친 상황에서는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거류민이나 체류 중인 외국인까지 모두 함께 동원되어 그야말로 총력전이 펼쳐지는데, 이런 상황을 묘사하는 데에 판데메이가 쓰인다. “페르시아인들이 재차 침공해왔을 때, 우리는 육지에서 그들을 막을 충분한 병력이 없어 모든 시민이 함께(pandēmei) 함선에 올라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했습니다.”(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권 73절)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아테나이의 주민은 모두(pandēmei) 성벽 쌓는 일에”(1권 90절). “히포크라테스는 아테나이에서 시민, 거류민, 그곳에 와있던 외국인까지 모두 함께(pandēmei)”(4권 90절).

나아가 판데메이는 전쟁이라는 문맥을 벗어나, 온 시민이 축제에 참여하거나 신들에게 간청하는 상황, 심지어 한 사람에게 정치적 지지를 보내는 상황을 묘사하는 데에도 쓰인다. “아폴론을 위한 축제가 열리는데, 뮈틸레네의 주민은 모두 함께(pandēmei) 이 축제에”(투퀴디데스 3권 3절). “남자와 여자가 모두 함께(pandēmei) 그들의 성소들에 가서 탄원자로 앉아 앞으로 닥칠 불행에서 반을 면하게 해달라고 신들에게 간청하고”(투퀴디데스 7권 120절). “스파르테의 인민이 모두 함께(pandēmei) 아리스톤을 ... 가장 영광스러운 왕이라고 여겨”(헤로도토스 「역사」 6권 63절)

페르시아 전쟁을 치르는 동안 아테네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판데메이’를 경험했다. 그들은 마라톤 평원에서 모두 함께 밀집대형(phalanx)을 짠 채로 페르시아의 기병대의 공격을 버티어 냈고, 살라미스에서는 삶의 터전을 버리고 모두 함께 전함에 올라 적군에 맞섰다. 전쟁이 끝난 뒤 아테네 사람들은 이 ‘평등’의 경험을 복기하면서 신분 ‘차이’에서 시작된 정치적 ‘차별’을 자각했고 점차 민중-권력(dēmo-kratos)의 지분을 높여갔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민주주의(dēmokratiā)는 그렇게 탄생했다.
페르시아 전쟁을 치르는 동안 아테네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판데메이’를 경험했다. 그들은 마라톤 평원에서 모두 함께 밀집대형(phalanx)을 짠 채로 페르시아의 기병대의 공격을 버티어 냈고, 살라미스에서는 삶의 터전을 버리고 모두 함께 전함에 올라 적군에 맞섰다. 전쟁이 끝난 뒤 아테네 사람들은 이 ‘평등’의 경험을 복기하면서 신분 ‘차이’에서 시작된 정치적 ‘차별’을 자각했고 점차 민중-권력(dēmo-kratos)의 지분을 높여갔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민주주의(dēmokratiā)는 그렇게 탄생했다.ⓒ아테네 박물관

3.
좁은 의미에서 ‘판데메이’는 전군이 전력을 다해 싸우는 상황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도시국가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무언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상황을 표현한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팬데믹’은 바이러스의 무차별적인 공격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시달리거나 잔뜩 움츠리고 있는 형국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고대의 ‘판데메이’는 이러한 수동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재난 앞에서 모든 사람이 팔을 걷어붙이고, 다함께 일을 치르거나 의견을 한데로 모으는 능동성에 더 가깝다.

페르시아 전쟁을 치르는 동안 아테네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판데메이’를 경험했다. 그들은 마라톤 평원에서 모두 함께 밀집대형(phalanx)을 짠 채로 페르시아 기병대의 공격을 버티어 냈고, 살라미스에서는 삶의 터전을 버리고 모두 함께 전함에 올라 적군에 맞섰다. 전쟁이 끝난 뒤 아테네 사람들은 이 ‘평등’의 경험을 복기하면서 신분 ‘차이’에서 시작된 정치적 ‘차별’을 자각했고 점차 민중-권력(dēmo-kratos)의 지분을 높여갔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민주주의(dēmokratiā)는 그렇게 탄생했다.

4.
재난은 죽음을 가져오지만 죽음을 묻진 않는다. 재난이 묻는 것은 관계이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나와 나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갈 것인지에 관해 대답을 요구한다는 말이다. 팬데믹을 범유행으로 읽지 않고, 고대의 전통에 따라 판데메이, 즉 ‘다함께’로 읽는다면, 팬데믹은 모두가 지난날의 일상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나날(New Normal)을 함께 찾아 나서겠다고 하는 일반 의지의 표명이 될 것이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한국인이 보여준 판데메이는
국제사회에 K-방역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면서
인류의 한 모범이 되어가고 있다.
한편으로 나는 우리의 판데메이 상황이
가슴 아프다. 이토록 재난에
익숙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팬데믹과 더불어 한국인이 보여준 판데메이는 국제사회에 K-방역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면서 인류의 한 모범이 되어가고 있다. 한편으로 나는 우리의 판데메이 상황이 가슴 아프다. 이토록 재난에 익숙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갑오년, 유무상자(有無相資)를 끄덕이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서로 손을 내놓았던 사람들, 금남로에서 주먹밥을 뭉치고 황금동에서 피를 나누었으며 택시와 버스를 몰고 와서는 기꺼이 계엄군과 대치했던 사람들, 명동 어느 담벼락 너머로 얼굴 없이 초코파이를 던져주던 사람들, 광화문 거리에서 염화미소를 지으며 귤과 핫팩을 나누던 사람들, 그렇게 묵묵히 민주주의의 지분을 넓혀왔던 사람들. 우리는 이들로부터 이미 판데메이를 배워 알고 있었다. 아프지만 슬프지 않을 수밖에.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가 바로 우리의 새날이니까. 새날은 이미 여기 있으니까.

2016년 12월: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조기탄핵 송박영신 10차 범국민행동의 날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16년 12월: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조기탄핵 송박영신 10차 범국민행동의 날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나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구문의 진창을 연상하고 인환네
처갓집 옆의 지금은 매립한 개울에서 아낙네들이
양잿물 솥에 불을 지피며 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고
이 우울한 시대를 파라다이스처럼 생각한다
버드 비숍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역사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
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 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_제3인도교의 물 속에 박은 철근 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괴기영화의 맘모스를 연상시키는
까치도 까마귀도 응접을 못하는 시꺼먼 가지를 가진
나도 감히 상상을 못하는 거대한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김수영 ‘거대한 뿌리’(1964) 중에서-

양진호(철학자, 인문학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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