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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은희의 내가 만난 동남아_5] 브랜드로 남은 전직 CIA 요원 : 태국 방콕의 짐 톰슨 하우스

개인적으로 오지를 사랑하는 자연파 연구자인지라 피곤한 동남아의 대도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날이 정비되고는 있으나 마천루 경쟁으로 일 년 365일 공사 중인 곳이 많고, 대중교통이 덜 발달하다보니 자가용과 오토바이가 장악한 도로는 늘 막힌다. 그나마 방콕은 전철이 잘 갖추어진 편이지만, 점점 더 무국적화되어 가는 메트로폴리탄 대도시의 경관에 쉽게 마음을 주기가 꺼려진다. 이 학회만 끝나면, 이 인터뷰만 마치면, 재빨리 도시를 벗어나 저 산 속에 풍덩 빠져들어야지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물론, 방콕은 전세계인들이 사랑하는 관광 목적지이다. 태국하면 연상되는 온갖 볼거리, 먹거리들이 도시 곳곳에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다. 금빛으로 빛나는 불교사원과 조형물들, 국민들의 전폭적 사랑을 받는 왕가(특히 전임 푸미폰 국왕을 향한)의 럭셔리 왕궁들, 다수의 박물관과 미술관, 향신료로 유혹하는 타이음식점과 인테리어부터 멋진 다국적 식당들, 잘 찾아보면 곳곳에 숨어 있는 녹지들, 배낭여행객의 성지 카오산 로드, 방콕을 감싸고 흐르는 짜오쁘라야 강의 보트투어, 시원한 밤공기와 젊은 열정이 충만한 루프탑 바들.

아, 열거해 보니 볼거리, 할거리가 상당히 많군요!
그래도 저는 이제 이런 여행자 목적지들은 좀 시큰둥하답니다.

일반 여행자들과는 목적이 좀 다르지만 나의 동남아 이력에서 방콕행은 정말 잦았다. 이는 동남아시아, 좁게는 메콩지역(대륙부 동남아)에서 태국이라는 나라가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동남아국가들 중 상대적으로 시민사회가 살아있고(안타깝게 갈수록 약화되고 있음), 대학이나 전문 연구기관 및 국제기구와 글로벌 NGO들의 본부들도 방콕을 기반으로 한 곳이 많다. 다국적 하천 ‘메콩’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던 지난 몇 년 동안 주변국(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에서의 조사에 앞서거나 뒤이어 방콕 여정을 추가하곤 했다. 그곳에는 학회와 세미나도 자주 열리고, 전문연구자들이나 신뢰할만한 NGO 활동가들도 많았다. 그래서 나의 조사 내용을 점검하고 더 큰 지역단위의 정세와 변동사항들을 따라잡기 좋았다.

2차 대전 말기 CIA 전신의 스파이로 태국에 온 짐 톰슨
전후 실크업에 뛰어들어 실크왕이 됐으나
부활절 휴가 때 말레이시아에서 홀연히 종적을 감추고 사라지다

이처럼 크고 번화한 대도시 방콕에서 내 마음에 들어온 한 장소가 있으니, 내가 오늘 안내할 그곳은 바로 짐 톰슨 하우스(Jim Thompson House)이다. 동남아에서 기념품 좀 사 본 사람들에게는 실크 브랜드로 알려져 있을 터이고(나름 면세점에 단독매장 있는 명품임), 방콕의 여행자들 중에는 박물관 겸 아트센터를 찾아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음식도 맛있다.)

태국 방콕의 짐 톰슨의 집
태국 방콕의 짐 톰슨의 집ⓒ민중의소리

짐 톰슨이란 인물의 생애스토리도 매우 흥미롭다. 미국에서 나름 이름 있는 건축가로 활약했던 그가 방콕에 온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말미였던 1944년이다. 당시 그의 직업은 미중앙정보국(CIA), 정확히는 그 전신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의 요원이었다. 스파이로 이 땅을 밟은 것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방콕에 남은 그는 ‘누구나 아는 비밀’ 직업으로 스파이를 유지한 채 합법 신분으로는 실크회사를 차려 성공적으로 운영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스파이 노릇은 그만두고 실크업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오늘날 태국의 실크산업이 국제적 명성을 얻기까지 그의 초기 노력이 적지 않은데, 그래서 그는 당대에는 실크왕이었고 후대에도 태국 실크 근대화와 국제화의 주요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또한 미 동부의 명문가 집안 출신으로 예술 애호가의 안목을 갖춘 덕에 그는 태국 이외에 메콩지역 전역(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에서 부처상이나 각종 예술품을 바지런히 모았다. 건축가의 안목으로 아유타이의 오래된 태국 전통가옥을 해체한 후 방콕의 운하 가까이 옮겨와 새로 고쳐지어 자택으로 사용했다. 60년대 중반까지 그의 집은 예술품 전시장이자 방콕 사교계의 명소로 통했다. 이 집이 현재의 짐 톰슨 하우스이다.

그는 죽음마저도 극적이다. 1967년 부활절 휴일에 친구들과 함께 간 말레이시아 휴양지 카메론 하이랜드에서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짐은 모두 숙소에 그대로 둔 채 간단한 차림으로 정글 산책을 나간 후 그를 본 사람은 없었다. 동행한 친구들은 지역주민 수십 명을 동원해 그를 찾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미군 헬리콥터와 CIA 요원들까지도 수색에 동원되었다는데 그렇게 사라진 그는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전 직장과 공산반군과 실크업계의 경쟁자의 이름들이 나열되는 음모론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 스토리마저 신화의 일부가 되었고 그의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유명세를 이어오고 있다.

짐 톰슨 하우스는 방콕의 대표적인 관광 포인트 중 하나다. 내가 소개 안 해도 알 사람, 간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생전 그가 살았던 집은 현재 박물관이자 아트센터이자 실크제품 판매점이자 레스토랑으로 성업 중이다. 방콕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잡한 씨암(Siam)의 파라곤몰에서 걸어서 10분, 방콕 지상철 BTS 국립운동장역(BTS National Stadium)에서는 더 가깝고 여기서는 무료 전동카트도 이용가능하다. 뉴욕인지 도쿄인지 서울인지 그 어느 도시 이름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코스모폴리탄스런 씨암의 백화점 거리에서 겨우 한 블록 꺾어 들어왔을 뿐인데, 이 공간은 그 자체로 고즈넉하고 아주 그린그린한 멋이 있다.

왼쪽은 짐 톰슨 하우스, 오른쪽은 실크 짓는 장인
왼쪽은 짐 톰슨 하우스, 오른쪽은 실크 짓는 장인ⓒ필자 제공

아유타유 양식의 태국전통 대저택과 정원은 그 자체로 건축 박물관의 역할을 한다. 더불어 그가 수집한 각종 그림이며 기념품이 6개 방마다 가득해 문화 박물관의 가치도 충분하다. 넓은 북향 테라스 앞으로는 과거 방콕의 핵심 교통망이었던 운하도 여전히 흐르고 있어 가능하면 오래 앉아 그 풍경을 즐기고 싶어진다. 아쉽게도 투어 프로그램은 20 분이면 끝나 홀로 그 풍광을 즐길 수는 없다 대신 그 아쉬움은 레스토랑의 음식이나 실크 제품 탕진잼(아이템도 다양하고 품질도 좋다)과 아트센터의 전시물로 달랠 수 있다. 매장 2층의 미술관에서는 제법 준수한 초대전이 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이곳의 방문횟수가 적지 않다. 첫 동남아 일주에서 나 홀로, 조사 중에 동료들과 함께, 다음 조사에선 조교들과 함께, 3년 전에는 나의 두 가족과 함께, 그 외에도 단독조사에서 시간이 붕 뜨면 홀로 찾은 적도 있었다. 갈 때마다 대체로 좋았다. 이리 많이 갔는데, 다시 이곳에 갈 일이 있을까? 방콕 초심자와 동행하는 경우가 아니라면(이런 경우 훈련된 지리학자는 본능적으로 가이드가 된다), 짐 톰슨 하우스는 이제 그만 더 안가도 되지 싶었다.

죠수아 컬랜칙의 책 부제 “짐 톰슨의 비극과 미국의 전쟁 방식”
이상주의자 면모를 가진 톰슨이 베트남 전쟁에 남긴 말
“이 전쟁은 공산주의 섬멸이 아닌 미국의 덫이 될 수 있다”

그러다 최근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 다시 가야지 마음먹었다.《The Ideal Man》죠수아 컬랜칙이란 미국의 동남아 전문가 2011년에 쓴 책이다. 본제목에 이은 부제가 “짐 톰슨의 비극과 미국의 전쟁 방식”이다. 제목과 약간의 어긋남이 있는 부제의 조합이 일단 흥미로웠고, 몇 페이지 읽기 시작하니 문체가 전기보다는 소설에 어울려 제법 잘 읽힌다. 책표지의 톰슨의 상반신 사진도 맘에 들었다. 오, 당신은 좀 매력적인 분 같군요.

이 책에 따르면 짐 톰슨은 이상주의자가 맞다. 그는 태평양전쟁이 정점에 이른 1944년에 도착해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이 심화된 1967년 사이 태국에 머물렀다.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졌으되 그와 비슷한 시기 이곳에 온 이들 중에는 反식민주의와 민족자결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을 이끈 지도자 중 한 명인 루즈벨트 미대통령이 동남아 민중들에게 약속한 바가 그러하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본격적인 냉전 시대가 열리면서 메콩지역의 지정학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전후 미국의 對동남아전략의 제일 목표는 공산화를 막는 것이었고, 공산화된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메콩유역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른바 죽(竹)의 장막.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전략은 ‘안정과 발전의 선물’에 맞춰졌으며, 이를 위해 미국의 로컬 파트너로 선택된 이들 중에는 민주적 민족주의자보다 보수적인 경제엘리트, 독재자, 군인 등의 수가 월등하게 많았다. 이상주의자 톰슨이 정보원 생활을 접고 사업에 매진하게 된 때가 바로 이 즈음이다.

그가 정글에서 사라진 1967년의 지역 상황은 미국의 베트남 개입이 본격화된 시기와 맞물린다. 1964년 통킹만 사건 조작으로 이 전쟁에 참전한 미국은 65년부터는 ‘더 많은 깃발’을 호소하며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파병을 요청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영토를 넘어 인도차이나 곳곳에 전쟁의 상흔을 남겼다. 톰슨이 살던 방콕은 열전의 현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쟁이 후방보급기지이자 전투에 지친 미군들의 휴가지였으며 보이지 않는 정보전의 현장이었다. 1967년부터 방콕의 이러한 변화는 본격화되었다. 참전 군인들에게 총성에서 자유로운 휴가와 술과 진짜 햄버거와 콜라와 매춘과 그들에 정서에 맞춰진 ‘동양적인 그 무엇’이 있는 미국화 된 제3의 공간,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자유 방콕.

짐 톰슨
짐 톰슨ⓒ자료사진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는 한 퇴역군인이 기억하는 톰슨의 마지막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저자의 주요 인터뷰대상인 그 퇴역군인은 짐 톰슨과의 자신의 상관이자 방콕의 미군사령관과의 만남에 동행했던 자이다. 그가 기억하는 존 톰슨은 자신의 상관을 향해 “이 전쟁은 공산주의 섬멸이 아닌 미국의 덫이 될 수 있다”며 실망감과 슬픈 분노를 드러냈다고 한다. 사실 그의 증언과 컬랜칙이 찾아낸 몇몇 기록을 제외하고 존 톰슨의 생전 행적에 대한 증거는 부족하다. 그래서 이 책은 어느 정도 소설같은 측면이 없지 않다.

연구자로서의 직업적 소명으로 그의 이야기와 그가 살았던 40~60년대 냉전의 시대 태국과 메콩지역에 지정학 이야기를 버무려 역사지리 논문을 써볼까. 아주 잠깐 마음이 쏠렸지만, 정신 차려 지금 쌓여 있는 일을 보란 말이다! 마음 접었다. 방콕에서 나에게 몇 안 되는 여유 공간인데, 연구한다고 해상도 높게 헤집고 나면 더 이상 그곳은 휴식처가 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 먼 나라 저 나라/지역의 냉전시대 이야기 누가 관심이 있기는 할까 싶어 살짝 손만 대고 말았다.

마음 한 편에는 한 매력적인 이상주의자에 대한 궁금함이 여전히 꼬물거린다.
브랜드로 남은 한 이상주의자의 이야기를 신화의 영역까지만이라도 끌어 올 수 있지 않을까?
논문 말고 번역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1.5 챕터 번역은 해 두었어요). 아, 이건 제 발등을 찍는 말이지 말입니다.
괄호 안의 문장은 지워야할까, 말까.
혹시라도, 나처럼 그가 궁금한 독자가 있으시다면. 쩜쩜쩜.

엄은희 서울대 사회과학원·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지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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