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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비건 청소년, 키도 안 클 것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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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비건 선언은 부모님에게 달려 있어요. 이게 바로 유교사회구나 싶죠. 이 곤란함은 청소년 인권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요. ‘청소년은 미숙하다’라는 인식이 이런 상황을 만들거든요”

키 안 큰다/어린 애가 뭘 아느냐/싫으면 나가 살아라… 비건 청소년이 논비건 성인에게서 듣는 가장 흔한 핀잔이다. 이들의 한 마디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세상에 먹을 것 천진데 왜 풀떼기 따위만 먹느냐는 빈정댐, 자발적으로 씹는 맛 뜯는 맛 포기한 자에게 던지는 작은 조롱, 그리고 발화자의 모든 선택과 신념을 평가절하하는 ‘미성년자’라는 인식이다.

'비행청소년'(비거니즘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청소년)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박지은 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5.22
'비행청소년'(비거니즘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청소년)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박지은 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5.22ⓒ김철수 기자

최근 종로구의 한 비건 카페에서 만난 ‘비행청소년’(비건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청소년) 활동가 박지은(17) 씨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청소년 비건들의 고충은 이중고라고 말했다. 비건을 향한 ‘대놓고 멸시’와, 청소년을 향한 ‘은근한 멸시’가 동시에 다가온다는 것이다.

“제 키는 중학교 1학년 때 멈췄고, 이것은 비건 때문이 아닙니다”

“학교에는 도시락을 싸 가서 혼자 교실에서 먹었어요. 이것도 급식실과 교실이 따로 분리된 학교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죠. 무조건 급식실에 가서 밥을 먹어야만 하는 경우, 또는 급식실과 교실이 분리되지 않은 학교에 다니며 고기 냄새에 괴로워하는 사람도 많아요.”

지은 씨가 채식을 결심한 나이는 중학교 2학년, 그 누구의 강요나 제안 없이 홀로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동물권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인근 시장에 존재하던 ‘개 시장’을 목도하고서부터다.

“개가 도살당하는 걸 봤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저렇게 해서라도 꼭 고기를 먹어야만 하는 건가?’ 의문이 들었죠. 두 번째 계기는 중학교 2학년 때 찾아왔어요. 다이어트를 심하게 해서 몸이 망가졌거든요. 소화불량, 생리불순이 심해져서 고기를 먹으면 속이 더부룩했어요.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채식을 하기 시작했고요.”

몸을 위해 시작한 채식이었지만 자연스럽게 환경과 동물권에도 관심이 기울었다. 자신의 행위에 신념을 덧대는 과정이 마냥 자아를 고취하는 활동은 아니었다. 뿌듯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공장식 축산의 잔인함, 다른 사람의 무시 등을 접할 때마다 “인간이 미안해!”라고 외치며 생존에 대한 딜레마에 빠졌다.

“내가 살아있어서 쓰레기가 늘어나는구나, 나는 지구에 하등 도움도 안 되는 인간이구나, 괴롭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하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거니즘의 확산을 위해서는 또 내가 살아있어야겠구나, 그러면 열심히 밥 먹고 살자, 그래서 극단적 선택은 면했어요. 하하. 대부분 그렇게 딜레마에 빠지세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비거니즘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다짐으로 고민을 끝내죠.”

어느 정도 자아 성찰이 끝난 후에도 지은 씨는 거대하고도 은은한 몇 가지 멸시와 마주 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상태를 ‘비건’과 연관 지어 설명해야만 했고, 해명해야만 했다. 아픈 이유, 아프지 않은 이유, 먹지 않는 이유, 먹는 이유… ‘어디 들어 보자’ 사실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성실하게 답했으나 ‘강요하지 말라’라는 답이 돌아왔다. 난감한 일이었다.

“제가 힘이 없거나 하면 무조건 ‘고기를 안 먹어서’라는 답이 한 번은 돌아와요. 한국은 고기가 워낙 귀한 재료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제 키를 걸고넘어지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이 키는 중학교 1학년 때 키예요. 이미 다 컸어요. 또 채식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 중 일부는 아이들의 성장에 동물 단백질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요, 사실 그렇지만도 않다는 건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어요.”

지은 씨는 덧붙였다. “조금만 찾아보기도 싫다는 분들을 위해 제가 알려주면, 또 강요라고 하시죠. 도대체 왜 물어보시는 걸까요?”

'비행청소년'(비거니즘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청소년)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박지은 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5.22
'비행청소년'(비거니즘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청소년)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박지은 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5.22ⓒ김철수 기자

“청소년 비건은 부모님의 ‘허락’이 필수예요”

청소년이 가진 의견이 성인의 의견과 동등한 위치에 놓일 수 있을까? 박지은 씨는 ‘절대 아니’라고 답했다. 청소년의 주장이 보편적 의견이 아닐 경우 그 간극은 더더욱 벌어진다. 가뜩이나 고기를 안 먹는 자녀가 마뜩잖은 부모님에게 비거니즘을 선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경제권을 쥐지 못한 청소년이 ‘설득’하는 것이 아닌 ‘허락’ 받아야 하는 이유다.

지은 씨에 따르면, 몇몇 청소년은 자신이 비건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프레젠테이션으로 제작해 가족에게 설명하기도 한단다. 말로만 하면 귓등으로 들으니 온갖 방법을 다 쓴다는 거다. 설득하지 못하거나 허락받지 못해 일찌감치 독립을 선언한 청소년도 있다. 식습관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이 척지기도 하는 것이다.

“청소년이 비거니즘을 지속하는 것은 정말로 부모님에게 달려 있어요. 이게 바로 유교 사회구나 싶죠. 하하. 부모님에게 핍박받는 친구도 많아요. 성인 가족과 식문화가 다르다는 건 정말 힘든 문제예요. 부모님을 설득하지 않으면, 부모님은 나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가 되고, 저는 부모님에게 말 안 듣는 자식이 되죠. 비건 청소년의 이러한 곤란함은 청소년 인권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요. ‘청소년은 미숙하다’라는 인식이 이런 상황을 만들거든요.”

도란도란 모여 한 음식을 나눠 먹는 한국식 식문화도 넘어야 할 산이다. 정 없는 딸, 불편한 친구, 깐깐한 학생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비건 청소년이 목소리를 죽이고 숨어들었다. 그가 몸담은 조직 ‘비행청소년’은 이렇게 흩어진 목소리를 한데 모아 연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들은 주로 동물권과 환경, 비거니즘과 연관된 시위에서 청소년 대표로 목소리를 낸다.

“비건 청소년을 만나기가 무척 힘든데요. 손에 꼽을 정도예요. 이 조직도 한 스무 명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친구들끼리는 대부분 SNS로 만났어요. 앞서 말했듯 청소년이 비건이 되려면 개인의 의지는 둘째치고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아요. 비건에 대한 편견, 안 좋은 시선이 무서워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이 많을 것 같아요. 적어도 제가 아는 것보단 더 있을 거예요. 그런 친구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그래도 지은 씨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부모님의 동의를 얻었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집안 분위기 덕에 밥을 따로 먹는다는 이유로 핀잔 듣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도 가시적인 퍼포먼스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일부 활동에 대해서는 ‘과격한 강요’라며 무척 싫어했다. 몇 번 몰래 나간 적도, ‘그렇게까지는 안 해’라고 둘러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멈출 순 없었다.

“2년 전 개 식용 종식과 관련한 시위에 처음 참여했어요. 작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동물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100인큐브 활동에 참여했죠. 홍대, 명동, 삼청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길거리에서 동물 도살 영상을 보여주고 스피치를 했어요. 시민들은 놀라거나, 떨떠름해 하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이라도 다시 생각해보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청소년이 본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개인의 선택이 모여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어요”
박지은 씨가 꿈꾸는 아주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당연한’ 비건

완고한 논비건들은 청소년 비건이라는 존재 자체를 매우 불편해한다. 본인들도 자신들이 먹는 고기가 어떤 식으로 도축되어오는지 아는 탓이다. 게다가 미숙한 존재로 취급하는 청소년이라는 작자들이 ‘당신들은 틀렸다’라고 외쳐대니, 당당하지 못한 이들이 유일하게 든 무기는 큰 목소리와 괄괄한 비하밖에 없다.

“제가 공장식 도축을 반대하는 취지의 글을 SNS에 올렸는데. 댓글로 누가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인간은 원시시대부터 고기를 먹었는데, 지금 와서 못 먹게 하는 건 인간 본능을 거스르라는 뜻 아니냐’, 그래서 제가 반박이랍시고 ‘그러면 원시시대처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스스로 먹고 싶은 고기를 자유롭게 사냥해 드세요’라고 말했더니… 엄청난 비난을 받았죠. 서로 말도 안 되는 소리 주고받으며 싸운다는 게 참… 하하.”

하지만 비건은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니다. 불편한 것도,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다. 먹지 못해 깡말라 골골대며 예민함만 떨치는 집단도 아니다. 고기를 먹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도 아니다. 먹는 즐거움을 포기한 가련한 자도, 무언가 결핍된 부족한 자도 아니다. 지은 씨는 비건이 ‘개인적 선택’으로 소심하게 머무르는 게 아닌 기본적인 가치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옷 스타일, 헤어 스타일부터 시작해서 소수자의 인권 등 많은 개성과 가치고 존중받고, 또 어우러지고 있는데 어째서 식습관은 개인의 선택으로만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정말로 ‘개인의 선택’이라고만 못 박고 싶다면, 존중해줘야 해요. 이상하게 사람들이 많은 가치 중 비거니즘에 대해서는 유달리 깐깐해요. 음… 먹는 문제라 더 예민한 걸까요? 하하.”

지은 씨가 만난 대부분의 논비건은 공장식 도축의 비윤리성에는 지극히 공감하지만,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결국 ‘편리하게 섭취하려면 어쩔 수 없어’라는 식으로 합리화를 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윤리적 이유로 비건을 선언했지만 고기를 너무 좋아하는 탓에, 채소를 너무 싫어하는 탓에, 결국 먹을 게 없는 탓에 괴로움을 호소하는 비건도 많다.

“먹을 게 없어서, 또는 레시피를 잘 몰라서 ‘정크(Junk) 비건’이 되는 분도 있어요. 과자, 음료, 젤리 등 인스턴트 음식 중 동물 단백질이 없는 음식을 계속 먹는 거죠. 당연히 몸이 나빠져요. 정크 비건들은 ‘넌 왜 채식을 하는 데 건강이 안 좋냐, 고기를 먹어야 한다’라는 말을 매일 듣고, 그 말을 제일 싫어해요.”

지은 씨가 ‘비건 맛집’을 꿰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논비건이 비건에 느끼는 가장 큰 장벽이 ‘먹는 즐거움을 포기한다’라면, 먹는 것으로 유인(?)하면 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비건식의 활성화와 보편화가 필요하다. ‘마냥 풀만 뜯고 사는 재미없고 예민한 비건’이라는 편견을 깨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 채식 상품 기획전이 꽤 보여요. 많은 분이 윤리적 견해로 비건이 되길 선택했지만 채소는 너무 싫고, 먹을 건 없다고 헤매더라고요… 비건도 먹을 것 많아요! 대체품만 먹고 사는 게 아니에요. 많은 비건식이 소개돼야 해요. 인터넷도 좋고, 또 인터넷보다 TV를 많이 보는 분들을 위해서 요리 프로그램에서 소개도 많이 되고, 제품도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요.”

“특히 채식 옵션이 정말 중요해요. 캐나다 유학생인 제 친구가 말하길, 캐나다는 바비큐 집만 가도 베지테리언 옵션이 있대요. 가까운 나라인 일본을 가서도 느꼈어요. 비건 파르페, 라멘 등 못 먹는 음식이 거의 없어요. 한국은 비건 식당, 비건 옵션이 적으니까 더 먹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렇게 보편화가 된다면, 비건도 더는 ‘내가 왜 채식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비행청소년'(비거니즘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청소년)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박지은 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5.22
'비행청소년'(비거니즘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청소년)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박지은 씨가 19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5.22ⓒ민중의소리

지은 씨는 현재 미술 계통 학과로 진학을 꿈꾸고 있다. 이후에는 전공을 살려 환경과 동물권을 주제로 한 동화책을 그리고 싶다고 한다. 연령과 관계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편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모두가 볼 수 있는 동화를 그리고 싶어요. 비거니즘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부터 동물의 삶과 환경 문제를 접하게 되면 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끝으로 지은 씨는 카페 사장님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더니, 기자가 마시던 과일 콤부차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어 “여기 근처에 직장이 있다면 인근의 다른 곳도 추천해 드릴까요?”라며 경복궁 인근 비건 카페를 비롯해 전국구 비건 맛집과 메뉴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받아 적는 기자에게 지은 씨는 “사실 저는 맛집 추천해 줄 때가 제일 신나요”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허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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