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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인이 겪을 수 있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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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장비를 만들어 수출하는 코막중공업 조봉구 대표는 매일 아침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애국가 1절을 제창한 뒤에야 회의를 시작했던 사람이었다. 이른바 ‘조·중·동’과 같은 일간지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챙겨봤다. 이 신문에서 누군가를 ‘빨갱이’라고 하면 그런 줄 알았다. 주변에선 조 대표를 ‘보수적 기업인’이라고 했다.

그러던 조 대표가 완전히 변했다. 2008년 ‘키코(KIKO)’사태를 겪으면서부터 조 대표는 거리에서, 법정에서 12년간 금융자본과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조 대표는 금융권력과 맞서 싸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를 출간했다. 길고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조 대표를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인근 코막중공업 사무실에서 만났다.

조봉구 대표가 쓴 책 '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
조봉구 대표가 쓴 책 '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제공 = 시공사 캡쳐

IMF도 극복하며 설립한 ‘코막중공업’
건실한 중소기업이 법정관리 받기까지
비극의 시작:2007년 키코를 만나다

조 대표는 1997년 250만원으로 코막중공업을 세웠다. 설립 당시 자금이 부족했던 조 대표는 거래처에 ‘장비 주문하면 곧장 입금해달라’는 다소 파격적인(?) 거래를 했다. 처음엔 꺼리던 거래처도 코막중공업의 성실한 일처리에 신뢰를 쌓아갔다.

“그렇게 작은 발주를 받아가면서 모은 돈으로 공장을 차렸어요. 처음에는 그 공장 안에서 직원들이랑 거의 매일 족구하면서 보냈던 거 같아요. 족구하면서 건설 장비 신기술을 열심히 개발했는데, 그게 히트를 쳤죠”

코막중공업은 자체 기술로 바위를 뚫는 기계(브레이커) 등 건설 중장비분야 29개 특허를 따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중동, 아프리카, 유럽 등 60여개 나라로 수출했고 13개 코막중공업 해외 법인도 뒀다. 세계 13국에서는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툴 정도였다.

비극은 2007년 시작됐다. 그해 겨울 조 대표는 코막중공업 주거래 은행으로부터 “환율이 곧 곤두박질쳐 물건 수출해봤자 이익률이 2~3%밖에 나지 않을 것”이라며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키코’상품에 가입하라고 권유받았다.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수수료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은행의 설명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키코 상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소기업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일 때는 약정한 환율로 약정한 금액을 팔아 기업에 유리한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환율이 약정범위 상한선보다 높아지면(Knock-in) 시장 환율보다 싼 가격에 외화를 팔아야 하고, 하한선보다 낮아지면(Knock-out) 통화옵션 계약이 무효화돼 환율하락 위험을 기업이 부담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수출기업 사장 A 씨가 환율 구간대 1달러당 800~1000원, 약정환율 960원, 약정금액 2억달러로 정해 키코 계약을 체결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시장환율이 800~1000원 사이인 850원이었다면, A 사장은 850원에 2억달러를 사서 약정환율 960원에 팔 수 있기 때문에 1달러당 110원의 환차익(환율 변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환율 구간이 약정했떤 1000원을 뚫고 1200원까지 치솟게 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A 사장은 1200원에 2억달러를 사서 960원에 팔기 때문에 1달러당 240원의 환차손((환율 변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을 입게 된다. 환율이 치솟으면 치솟을수록 A 사장의 손해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반면 은행은 환율이 하한선 아래로 내려갈 때 계약을 무효화 시키는 옵션을 마련해 안전장치를 뒀다.

조 대표의 경우 2007년 11월 약정 환율 920원에 월 70만 달러 규모로 키코에 가입했다. 계약기간은 3년에 달했다. 3년간 환율이 치솟을 때마다 손해를 보는 것이다.

조봉구(왼쪽 두번째) 키코(KIKO) 공동대책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면담을 마친 후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조봉구(왼쪽 두번째) 키코(KIKO) 공동대책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면담을 마친 후 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제공 = 뉴시스

키코 계약을 맺고 바로 다음 달인 12월부터 문제가 생겼다. 환율이 950원대로 치솟으며 손실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해를 넘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들이닥쳐 환율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통상 환율이 치솟으면 정부는 저환율 정책을 쓰기 마련인데, 이명박 정부는 ‘이상하게도’ 고환율 정책을 고수했다.

조 대표는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달라고 은행에 호소했다. 은행은 키코상품 추가 계약을 권유했다. 약정 환율 960원, 990원의 추가 약정을 맺어 신규 계약에서 이익을 보면 기존 키코 계약으로 난 손실을 줄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환율은 1,000원를 돌파해 1,400원을 넘나드는 수준에 이르렀다. 코막중공업이 당시 입은 손실만 180억원에 달했다. 해외 사업장 붕괴 등을 합치면 총 손실은 350억원을 넘어섰다.

조 대표는 “키코는 처음부터 상호간 대가관계가 불균형하게 설계된 상품이었고 환율이 오를수록 은행이 막대한 폭리를 취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라며 “은행들은 금융 공학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키코가 자신들에게 유리할 대로 유리한 상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은행은 높은 수익을 올렸지만, 중소기업은 키코로 인해 줄줄이 쓰러져갔다. 키코는 정확한 피해 기업 수를 산정하기 어렵다. ‘갑’인 은행의 눈총을 받을까 싶어 ‘피해를 받았다’고 밝히지 못하는 중소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2012년 금감원은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키코 피해기업 수를 776개사로 봤으며 이 중 폐업·부도·법정관리·워크아웃 등 부실화된 기업은 은행 집계로만 110개사에 달했다.

키코 사태가 터지고 2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코막중공업 협력업체 60곳의 줄도산이 시작됐다. 어떤 사장은 ‘같이 죽자’고 칼을 들고 찾아왔고, 또 다른 사장은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찾아왔다. 협력업체 60곳 모두 코막중공업에 전량 납품했기 때문에 함께 키코 사태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조 대표는 “저는 그들의 분노를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이 기업들이 살아남도록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협력업체들의 연쇄 부도를 막으려 정부와 매칭 펀드로 조성한 연구 개발 출연기금 일부를 사용했다가 공금 횡령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가슴 깊이 담아두는 이름들이 있다. ‘원진기계’, ‘거영정밀’, ‘동원연마’, ‘미레텍’ 그리고 페인트 공급업체 K사다. 이들은 키코사태로 인해 문을 닫은 코막중공업 협력업체들이다.

“아픈 기억일수록 잊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다지만, 나는 이들의 이름을 가슴에 새겨놓고 시시때때로 꺼내봅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나쁜 사장으로만 남아야 했던 비탄함과 절망감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조 대표도 상처가 깊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로 체중이 갑작스레 불어 100kg을 넘었고, 불면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키코사태로 인해 조 대표는 가족과도 잠시 생이별을 했다.

키코 피해자들이 집회에서 들고 나온 손피켓
키코 피해자들이 집회에서 들고 나온 손피켓ⓒ제공 : 뉴시스

주저 앉을 순 없었다. 금융위기 당시 정부는 금융회사들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급히 회수하지 않도록 기존 대출 만기를 연장하거나, 신규 자금을 빌려주는 등 ‘패스트트랙’ 제도를 실시했다. 코막중공업은 급히 20억원을 빌려 키코 대금을 청산했다.

키코 대금을 청산하고 나니, 신용등급이 한 번 더 발목을 잡았다. 키코 대금을 갚느라 100억원이 넘는 자산을 매각한 것이 장부상 부채 비율을 높였다. 신용등급도 덩달아 낮아져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최악은 계속됐다. 무역금융마저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수출기업은 통상 제품을 해외 수입보내고 대금이 결제되기 전까지 수출대금을 담보로 수출환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한다. 그러나 은행이 키코 손실을 이유로 수출환어음 매입을 거부했다. 결국 코막중공업은 워크아웃을 거쳐 2012년 4월 13일부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조 대표는 굴하지 않고 싸우기로 했다. 은행의 부도덕, 은행의 탐욕을 방기한 정부 시스템, 피해 사건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세력들 모두 조 대표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었다. 싸움을 위한 첫번째 걸음이 바로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키코 공대위)였다. 그 뒤에도 조 대표는 ‘금융소비자협회’(현 금융정의연대),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한국재도전연합회’ 등을 창립했다. 이 많은 단체를 만들기까지 조 대표는 수도 없이 거리로 나가 메가폰을 들었다. “탐욕스런 금융자본을 규제하고 불공정한 경제구조를 개혁하자”고 외치는 조 대표를 보수신문에서는 ‘좌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KIKO 사태 재조사 요구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KIKO 사태 재조사 요구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제공 = 뉴시스

키코가 ‘불완전판매’를 인정받기까지
금융소비자가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조봉구 대표의 꿈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 나서기 전 공정위에 가봤지만 ‘불공정 거래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받았고, 당시 금감원은 아예 은행 제재를 유보해버렸다. 소송밖에 길이 없었다.

2008년 11월 키코 공대위 소속 124개 피해기업은 은행을 상대로 손해 배상 및 채무부존재 확인 민사소송을 먼저 제기했다. 또 2010년 2월에는 140개 피해 기업이 은행을 상대로 특가법상 사기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조 대표를 포함한 키코 피해 기업이 행동에 나서자 금감원은 2010년 8월에서야 은행 임직원 징계를 결정했다. 이마저도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자, ‘법원 판단을 지켜보자’며 또 다시 발을 뺐다.

5년여간 길고 긴 소송이 이어졌다. 그 결과, 대법원은 2013년 9월 26일 키코가 정상상품이므로 은행이 상품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경우 피해 책임은 원칙적으로 가입자가 져야 하고, ‘키코는 불공정거래행위가 아니다’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길고 긴 싸움 중 반가운 일도 생겼다. 금융소비자 보호란 기치를 높이 든 진보적 학자 윤석헌 금감원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금감원은 2019년 키코 판매 은행들의 불완전판매를 인정하고 손해액의 15~41%를 배상하도록 권고했다.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150억,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등이다. 이 중 우리은행만 유일하게 피해기업 2곳에 배상했다.

소중한 인연도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이 조 대표에게 ‘식사 한 끼 하자’고 제안해온 것이다. 이 자리에서 박 의원은 ‘금융당국을 압박해 키코 피해 기업을 살리는 데 힘 쓰겠다’고 말했다. 그 뒤, 박 의원은 2011년 징벌적손해배상제 도입, 금융소비자보호를 전담으로 하는 독립 조직을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이 발의되기까지 박 의원과 조 대표가 수시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거듭했다고 한다.

8년을 계류하던 금소법도 올해 3월 마침내 통과됐다. 하지만 조 대표는 못내 아쉽다. 금소법의 핵심인 징벌적손해배상제가 쏙 빠졌기 때문이다. 징벌적손해배상은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다.

국회는 논의를 거치면서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빼고, 판매·자문업자들이 불완전판매 행위로 얻은 수입의 50%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또 설명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경우에만 금융회사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입증할 책임이 생긴다. 원안에 비하면 처벌규정 등이 턱없이 낮아진 것이다.

조 대표는 “금소법에는 ‘징벌적손해배상제’가 들어가도록 개정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판매사들도 피해자가 생기는 상품을 아예 만들 생각을 못할 것이고, 판매할 상품은 좀 더 꼼꼼하게 설계를 할 것 이라고 봅니다”라고 강조했다.

요즘 조 대표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금융피해자구제재단을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했다.

“중소기업인들이 금융사기를 당했을 때 가장 시급한 것이 당장 급한 돈을 지원받는 것입니다. 금융사기 피해자에 대해서 먼저 재단이 돈을 지급하고, 차후에 정부가 해당 금융회사에 구상권을 제기하도록 한다면 중소기업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금융소비자가 안전한 나라’를 꿈꾸는 조 대표의 눈이 반짝 빛났다.

장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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