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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영의 마음산책] 에니어그램으로 본 성격 이야기 : 9유형 - 평화주의자

체격이 크지 않아도 곰을 연상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곰돌이, 곰순이, 곰탱이… 처진 눈매 선한 인상의 묵직한 9유형들은 평화주의자를 연상시킨다. 직접적인 동기가 무엇이었거나 간에 갈등과 마찰을 피하는 것이 삶의 목적인 듯 살아가는 그들에게 평화주의자라는 말은 매우 어울려 보인다.

대부분 여유 있고 너그러워 보이는 이들에게 이 행성은 유유자적하게 소풍 다니러 온 곳일지도 모르겠다. 애써 무엇인가를 쟁취하는 것에 관심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성취를 이루고 성공한 사람들 중에 9유형들이 적은 건 아니다.

게으름이 문제로 지적되지만 세세하게 개입하기보다 넓게 볼 줄 알고 영역을 뚝뚝 떼어줄 줄 알면서 자기 것을 챙기기보다 보상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래서 꼼꼼하게 챙겨야 할 일이 많은 아래 직급에 있을 때보다 넓은 영역을 책임지는 위 직급의 9유형들이 게으름이나 불분명한 의사소통 등을 보완할 때 편안하고 통 큰 지도자가 되어 인기를 끌기도 한다.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도 먼저 안부를 묻는 전화도 잘하지 않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9유형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왜일까.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고 욕심 없고 푸근해서일까, 있는 그대로 수용되는 것이 편안해서일까, 마치 마을 입구 커다란 고목의 넉넉한 그늘 밑으로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듯 어느덧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마을 입구 커다란 고목의 넉넉함을 지닌 9유형
마을 입구 커다란 고목의 넉넉함을 지닌 9유형ⓒpixabay

그들을 편안해 하면서도 자주 나오는 불만은 대체 그 속을 알 수 없고 신속하고 분명하게 의사를 알리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의뭉스럽다든지 크레물린 같다는 소리도 곧잘 듣는다. 9유형이 아무리 까다롭지 않기로 사람인데 기호가 없을까마는 그들이 간신히 입을 열어 보여준 선택은 ‘아무거나’가 될 때가 많다. 이는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기비하와도 관련이 있다.

자신이 소중하지 않으니 세상에 무엇이 그리 소중하랴. 자신이 세상에서 목소리를 낸다 한들 세상이 귀 기울일 것 같지 않은 체념이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어 자기 소리를 내지 않는 게 습관이 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무리 귀공자, 귀공녀로 키워졌어도 태생이 잘난 척과는 거리가 멀다. 9유형들은 소유에 대한 관심도 약해 자기 것을 챙기지 못하거나 심하면 ‘국민호구’ 소리를 들을 만큼 자기 것을 내어주는 것이 습성화돼 언뜻 도인 같아 보이기도 한다.

자기 의견을 주장 하지 않는 것 외에도 전반적으로 표현이 서툴고 더디다. 말보다 빙그레 웃거나 고개를 주억거리는 등 비언어적으로 말을 대체하는 경우나 신중하게 말을 아끼는 모습도 많아 언뜻 과묵하고 깊이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텔레파시로 통하는 세상은 아니다보니 분명한 언어 전달이 되지 않을 때 소통 대상뿐 아니라 자신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 게다가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충돌이나 갈등으로 이어질까 걱정하는 마음이 어우러져 자기의 의사를 뭉뚱그리는 버릇이 체질화되어 여러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분명한 소통이 필요한데 뭉뚱그리고 입을 들썩거리는 걸 귀찮아 해 오해도 생기고 더러는 상대에게 ‘언어폭력유발자’로 몰려도 적극 해명하거나 대응하려하지 않는다. 화가 날 때 입도 열지 않고 손 하나 까닥 안하면서 그저 버티는 모습으로 상대 복장을 터뜨리는 것은 일종의 수동적인 공격이다. 대부분 순응적이지만 이럴 때는 누구도 꺾지 못하는 황소고집장이가 되어 눈만 꿈벅꿈벅 하면서 버티다 보면 설득되기보다 지쳐 항복하는 건 대부분 상대들이다.

인내와 지구력, 수용성의 9유형
유사점, 분리보다는 통합, 충돌보다는 화합으로 이끄는 전령사
힘들어지면 혼수상태로 도피하는 것에서 벗어나 상황을 직면해야

자신은 사라진 채 타인만을 고려하는 오랜 습관, 거부하거나 주장하면 시끄러워질 것 같은 두려움에 혼수상태로 쉽게 빠져드는 오랜 습관을 직면하는 것은 이들의 성장에 필수적이다. 진정한 평화추구가 아닌 강박적으로 갈등과 충돌을 회피하는 데에 골몰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성장의 기회가 소진되는지 보다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욕구를 인식하고 지구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지구의 언어로 전달하는 훈련은 성장에 매우 큰 도움을 준다.

깊은 좌절과 자기비하를 벗어나 지구라는 행성이 자신이 살아도 되고 성취해도 되는 곳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이 잠들었던 거인은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잠재력을 일깨워 괴력에 가까운 힘을 발휘해 성취를 이룰 것이다. 그럴 때 더 없이 생산적이고 활기 있어지는 9유형은 그 자체로 생명력 덩어리이다. 물론 여전히 말수와 말주변은 없지만 자기 욕구와 의사를 표현하며 분노를 느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또한 인내와 지구력, 수용성은 9유형의 대표적 카리스마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어려워도 끝까지 버텨서 이기는 저력은 예의 멍한 상태가 아니라 깨어 활기 있는 상태에서 발휘할 수 있다. 건강한 9유형의 인내와 지구력은 불건강한 상태의 버티기나 뭉개기와는 다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상황을 명료하게 보고 차분하게 할 일을 하는 힘은 건강할 때라야 가능한 것이다.

조화와 연대, 협력
조화와 연대, 협력ⓒpixabay

또한 힘들어지면 혼수상태로 도피하는 것에서 벗어나 상황을 직면할 때 삶에 가장 큰 장애로 작용하는 게으름을 극복하며 자기를 하대하는 습관을 버리기 쉬워진다. 상황을 명료하게 보고 그 속에서 자기 선택과 실행을 미루지 않는 실천 속에서 자기 비하를 극복하고 자기 존중으로 나아가는 선순환 속에서 9유형은 평화라는 자기 본질을 드러내고 실현하게 된다.

에니어그램 상징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왕관 유형으로 꼽히는 이들은 ‘모든 것은 연결됨’ ‘우리는 하나임’을 알리는 미션의 전령사이다. 그래서 차이보다는 유사점, 분리보다는 통합, 충돌보다는 화합으로 이끌리기 마련이다. 그들이 이끄는 조직은 자연스레 ‘화합과 일치’의 기풍이 만들어지고 작은 차이로 싸우지 않는 풍토가 형성되기 쉽다.

코로나 이후 격변하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세상과 함께 내면의 고요한 평화가 더 없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9유형들의 깨어남을 따라 인류 모두가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격변하는 세상이 주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평화의 사도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신미영 열린학교상담아카데미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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