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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보도연맹원 학살’ 희생자 2명 70년 만에 무죄 선고받았다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당한 피해자의 유골
보도연맹 사건으로 학살당한 피해자의 유골ⓒ민중의소리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원으로 내몰려 불법 체포·감금당했다가 처형당한 2명이 부산에서 재심으로 70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부산 지역 보도연맹 사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부산지법 형사5부(권기철 부장판사)와 형사6부(최진곤 부장판사)는 지난 29일 열린 국방경비법 위반(이적행위)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1950년 9월 8일 사형당한 부산지역 보도연맹원 박태구(당시 28세) 씨와 정동룡(당시 22세) 씨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판결문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근거가 없다”며 공소사실로 범죄를 증명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1950년 한국전쟁 발생 이후 ‘보도연맹원은 부산 공설운동장에 집결하라’는 소집 명령을 받고 나갔다가 영장 없이 연행돼 부산형무소에 수감됐다가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당했다. 정 씨도 같은 해 7~8월경 군특무대에 의해 영장 없이 체포돼 부산형무소에 수감된 뒤 군법회의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한국전쟁 발생 이후 이승만 정권이 보도연맹에 가입한 민간인들을 무차별 학한 사건이다. 1948년 12월 국가보안법 시행에 따라 ‘좌익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정부 차원에서 보도연맹원을 대거 가입시켰고, 전쟁 초기 ‘보도연맹원들이 조선인민군에 협조할 것’이라는 막연한 의심에 근거해 전국 각지에서 예비검속 및 구금으로 무차별적으로 연맹원들을 체포, 사실상 즉결처형 형식으로 무차별 학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희생자는 전국적으로 최소 10만명에서 최대 3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50년 7~9월 부산형무소에서 학살당한 보도연맹원과 재소자가 최소 1천500명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들 중 신원이 확인된 이는 148명에 불과했으며, 박 씨와 정 씨가 여기에 포함됐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 두 희생자 유족은 2013년 5월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이듬해 1월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져 재심을 거쳐 명예를 회복하기에 이르렀다.

강경훈 기자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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