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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쓴 맛 단 맛 다 본 언니의 따뜻한 노래

음악은 창작자가 만난 사실과 사실이 자아내는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창작자가 누구인지, 당사자의 국가/계급/민족/이데올로기/인종/젠더/지역에 따라 만나는 사실은 달라진다. 사실에 대한 생각과 감정도 달라진다. 그렇다면 싱어송라이터 오소영이 세 번째 정규음반 [어디로 가나요]에서 만난 사실과 생각과 감정은 무엇일까. 11년만에 발표한 새 정규음반에서 오소영의 노래 10곡은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향해 흘러가면서 하나의 태도에 안착한다.

싱어송라이터 오소영의 정규 3집 앨범 '어디로 가나요' 커버 이미지
싱어송라이터 오소영의 정규 3집 앨범 '어디로 가나요' 커버 이미지ⓒ사진 = 애프터눈레코드

첫 번째 곡 ‘홀가분’은 “매일 매일 그렇게 되고 싶다고 바라고 바라도/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단 걸 이제 알아”라고 단념과 포기를 노래한다. 그런데 미디엄 템포로 노래하는 곡에 절망스러운 목소리는 없다. ‘홀가분’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오소영은 삶에 대한 의지와 욕구, 그리고 그와 대척되는 절망과 좌절 너머에 있다. 오소영은 “힘들게 붙들고 있던 꿈들”과 “그래도 놓을 수 없던 희망”에 안녕을 고하고, “어떻게든 될 거야/걱정하지 마”라고 홀가분하게 노래한다. 적지 않은 노력과 좌절을 거치지 않으면 건넬 수 없는 이야기에는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라는 사실과, 그 사실을 인정하며 단련된 성찰이 묻어난다.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 일렉트릭 기타의 자연스러운 포크 록 사운드는 이 성찰을 담담하게 전해주는데 주력한다. 특히 건반 연주는 정해진 리듬을 따라가며 편안하게 부르는 노래가 자연스러워지기 위해 필요했을 시간과 마음의 생채기를 감싸며 이 음반이 삶에 대한 성숙한 태도의 결과물임을 맨 먼저 드러낸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곡 ‘살아있었다’에서 오소영은 “마음을 적은 짧은 유서 한 장 없이/그렇게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 했”던 그녀의 죽음 앞에서 소리 내 울지 않는다. 경쾌한 리듬과 어쿠스틱 기타/하모니카/퍼커션으로 만든 곡의 사운드는 산책을 노래하듯 투명하다. 그러나 노래의 투명하고 가벼운 톤은 듣는 이를 슬픔으로 몰아세우지 않으면서 한 사람의 비극을 역설적으로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슬픔을 전달하는 노래의 다른 방법은 오소영이 다른 이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노래를 듣는 이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면서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해 고심한 예술가임을 보여준다. 단순한 관찰자의 위치에만 서지 않고 기록자이자 증언자로 분투하는 오소영의 노래는 비극을 비극으로 복원할 뿐 아니라, 떠난 이가 남긴 이야기까지 놓치지 않는다. 삶에 대한 경험과 속울음으로 삭힌 인내,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이해의 태도가 쌓이지 않았다면 부를 수 없는 노래이다.

세 번째 곡 ‘멍멍멍’에는 반려동물에 대한 배려가 가득하다. 굳이 반려동물에 국한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단순하지만 보편적인 행복의 가치를 노래하는 곡에서도 사운드는 경쾌하다. 에스닉한 피리 연주를 실은 어쿠스틱 사운드는 과장도 허세도 없이 스며든다. 오늘의 솔직한 기쁨을 향해 달려가는 노래는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징하게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컨트리와 요들 스타일로 노래하는 ‘즐거운 밤의 노래’ 역시 지금 만날 수 있는 행복에 몰두한다. 지나간 날들의 고통이나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의 두려움을 노래하지 않는 노랫말은 2박자의 리듬감에 요들의 신명을 더해 행복감을 발산한다. 관악기들의 협연은 곡의 낙관적인 태도를 소리로 주도하는 주역이다.

하지만 벤조 연주에 맞춰 차분하게 노래하는 타이틀곡 ‘어디로 가나요’는 “뭘 쓸지 잊어버린 소설가”이고, “뭘 쫒는지 모르는 사냥꾼”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모습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소영은 “이제 그만/그 어둡고 외로운 길에서 도망쳐요”라고 과감하게 조언한다. “차가운 물속에 몸을 뉘어/파도가 치는 대로 몸을 맡겨/너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모험가”라고 노래를 이어가는 오소영의 목소리에는 피할 수 없다면 아예 떠나버리라는 담대한 충고가 빛난다. 이렇게 적확하고 사려 깊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오소영의 세 번째 정규음반에 11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한편 “내 곁에서 멀리 떠나가지마”라고 노래하는 ‘떠나가지 마’는 어쿠스틱하게 시작한 연주에서 사이키델릭한 연주로 톤을 바꾼다. 음반의 전반부와 다른 어법을 선보이는 이 곡은 오소영이 들려줄 수 있는 사운드의 세계가 결코 평이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가장 단순한 가사와 대조되는 연주의 풍성한 파노라마는 이 음반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 중 가장 돋보인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모르겠습니다”라고 노래하는 ‘난 바보가 되었습니다’는 오소영에게 한 번도 예상하지 못한 트로트의 사운드가 이채롭다. 그러나 오소영의 트로트는 신파적이거나 향락적이기보다는 능청스럽고 여유롭다. 내 마음은 무너진다고 노래하지만 이쯤은 충분히 견디거나 즐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어나오는 곡이다.

이 곡의 자신감은 “뾰족한 사람 나를 찔러도/난 당신의 모서리가 좋아요”라고 말하는 노래, ‘당신의 모서리’의 넉넉한 배려와 필연적으로 이어진다. “당신의 모서리를 안을 수 있게/나를 조금만 잘라낼게요”라고 말할 줄 아는 이라면 상대의 마음이 자기 같지 않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마음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기보다는 계속 만나고 헤어지며 단단해지고 결국 부드러워진 마음일 가능성이 높다. 슬로우 템포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맞춘 오소영의 보컬 역시 따뜻하고 환하다. 간주 부분에 더한 클라리넷 연주와 코러스는 곡에 깃든 마음의 온도를 더 부드럽게 맞춰준다.

싱어송라이터 오소영
싱어송라이터 오소영ⓒ사진 = 애프터눈레코드

그렇다고 오소영의 모든 노래가 자신감에 차 있는 것은 아니다. ‘난 알맹이가 없어’에서는 깊이가 없고 넓이가 없는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곡을 완성하는 비트와 사운드는 자신을 아는 이의 담담함을 부각시킨다. 자신을 알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자신과 화해하고 존중하는 첫 걸음이자 핵심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날들”과 “그 사람”, “반짝이던 기억들”을 그리워하는 마지막 곡 ‘그 사람’은 현경과 영애의 옛 노래처럼 순수한 목소리가 아련하다. 하지만 이 노래에서도 오소영은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그리워할 뿐, 애써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후회하지도 않는다. 세월의 강 건너편에서 지켜보고 노래할 뿐이다. 그렇게 그 모든 지난 일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목소리는 어느새 깊어진 인간의 초상을 완성한다.

상실감으로 오래도록 잠 못 들던 밤을 건너 누군가는 어른이 되었고 다른 이들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지금 잠 못 드는 이들, 아직도 잠 못 드는 이들, 그리고 그 언젠가 잠 못 들던 날들을 함께 견디던 이들과 함께 듣고 싶은 음반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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