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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문익환’이란 거목을 품었던 대지같은 삶 ‘봄길 박용길’
책 ‘봄길 박용길’
책 ‘봄길 박용길’ⓒ삼인

봄길 박용길 장로.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문익환 목사 부인’ 혹은 ‘배우 문성근의 어머니’ 등 우리나라 여성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남편과 자식의 이름이 수식어처럼 붙어있었다. 박 장로 생전에는 물론 그가 세상을 떠난 지난 2011년 이후에도 이런 수식어는 계속 붙어있다. 하지만, 박 장로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이던 지난 2009년 지난 2009년 문익환 목사 방북 20주년을 기념해 ‘통일의 집’에서 박 장로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수식어가 꼭 필요한 것일까 의문을 가지게 됐다.

당시 박 장로께선 “평양 갔다 올거야”라는 남편의 말을 미리 들었는데, 떠나기 전날 정세가 좋지 않아 연기를 고민하는 문 목사에게 “다른 사람들이 길까지 다 닦아 놓았는데,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떻게 되나”고 오히려 그를 독려했다고 1989년 방북 상황을 전했다. 또한 문 목사가 방북한 뒤 김일석 주석과 약속한 ‘겨레말 큰사전’ 편찬 작업이 속도가 붙지 못하는 것을 인터뷰 내내 안타까워하셨다. 어쩌면 ‘문익환’이라는 거목이 설 수 있었던 것은 박 장로의 대지같이 너른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강점기·해방·전쟁·민주화운동으로 점철된 20세기에서 21세기 초반에 이르는 한반도 역사를 기독교운동·민주화운동·통일운동의 최전선에서 살아낸 여성 박용길(1919~2011, 호 봄길)의 삶을 담은 전기 『봄길 박용길』이 나왔다.

박용길 장로가 남편 문익환 목사에게 보낸 편지
박용길 장로가 남편 문익환 목사에게 보낸 편지ⓒ문영미 문익환통일의집 상임이사 페이스북

목사이자 시인이자 사회운동가였던 남편 문익환이 59세에 처음 감옥에 들어가 77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섯 차례 수감된 기간을 전부 합치면 10년이 넘는다. 육십을 바라보는 때에 민주화운동에 발을 들여 감옥 안에서 더 많은 세월을 살았으면서도 글로써 행동으로써 생산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후반기를 일궈갈 수 있었던 것은, 감옥 밖에서 감옥 안의 그와 함께했던 박용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결정적이었지를 반증한다. 박용길은 남편 문익환이 감옥 안에 있는 동안, 가족 중심의 구속자석방운동을 벌인 동시에 감옥 안의 남편에게 거의 매일 손편지를 써 보냈다. 그녀가 남긴 3천여 통의 편지는 민주화와 통일의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 독려하며 여성의 몸으로, 마음으로 역사를 살아낸 궤적이다.

『봄길 박용길』은 한반도의 수난사를 운명처럼 짊어진 박용길의 93년 삶을 그녀가 남긴 기록과 대화를 기본 자료로 하여 쓰인, 한 인간의 삶을 중심에 두고 나열한 한국사로서, 60컷의 사진 자료를 포함했다. 교회 여성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 시대에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한 투사로서, 통일의 여성 사도로서 박용길의 위상을 자리 매기고자 한 이 전기는 총 4부로 구성되었다. 1부 ‘전쟁의 시대, 가족’에는 어린 시절과 요코하마신학교 유학 시절에 이어 문익환과의 결혼, 민족 동란으로 인한 피난 생활이 그려져 있다. 2부 ‘개척의 시대, 살림’에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임원이자 한빛교회 장로, 또한 기독교 여성·가정 전문지인 《새가정》의 운영위원으로 활약했던 모습이 펼쳐져 있다. 3부 ‘죽음의 시대, 편지’에서는 4.19 혁명의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여 인권과 민주화운동에 나서게 된 시기가 소개된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를 이끌며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여 1987년 6월의 함성에까지 치닫는 봄길의 발걸음을 따라갔다. 아울러 문익환에게 보낸 3천여 통의 편지와 그녀의 기도문 중 일부를 선별해 실었다. 마지막 4부 ‘손을 잡는 시대, 사랑’에서는 남편과 사별한 뒤 그와 같이했던 통일의 꿈을 이루고자 금기를 깨고 분단선을 넘은 일, 그리하여 양심수를 지원하던 이에서 스스로 양심수가 된 봄길의 행보를 담았다.

‘봄길 박용길’은 지치지 않고 샘솟는 영성의 힘을 현실운동으로 가져간 여성, 역사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한 여성의 삶인 동시에, 한국 기독교와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연결되었으며, 여성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연대와 사업들이 어떻게 실현되어갔는지, ‘어머니-가족-여성’의 ‘살림-기도-편지’ 정신이 어떻게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이끌어갔으며 어떤 가능성으로 나아갈지, 삼일운동에서 촛불혁명까지 이어지는 거리 평화시위의 토양을 더 굳게 다져간 과정을 바라보게 하는 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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