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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7년 동안 생활동반자법 위해 ‘피 땀 눈물’ 흘린 보좌관의 ‘뚝심’
없음

혼자 살 때 가장 서러웠던 점을 꼽으라면 대부분 아팠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 간호해줄 사람은 없고, 터덜터덜 편의점으로 향해 통조림 죽을 사 먹는데 그렇게 서글플 때가 없었다. 그때 난 깨달았다. 혼자 살 수는 없겠구나.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때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결혼을 하는 게 정답일까. 여기서부터 막힌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의 삶은 준비가 안 됐을뿐더러 그럴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출구 없는 도돌이표 고민이 계속되던 때, 나에게 해답 같은 문구가 눈에 띄었다.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책 '외롭지 않을 권리'의 부제인 이 문구를 보자마자 무릎을 탁 쳤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말 그대로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였다.

생활동반자법이 생긴다면?
발의조차 되지 못했던 생활동반자법, 그러나…

황두영 보좌관이 자신이 집필한 책 '외롭지 않을 권리'를 들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황두영 보좌관이 자신이 집필한 책 '외롭지 않을 권리'를 들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시사IN

'외롭지 않을 권리'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에서 일했던 황두영 보좌관이 쓴 책으로, 의원실 인턴 시절부터 연구해 왔던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담았다.

프랑스에서는 함께 사는 성인들이 협약을 맺을 경우 결혼한 부부와 유사한 수준의 권리·의무를 부여하는 제도(PACS, 시민연대협약)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를 본뜬 법안이 바로 생활동반자법이다. 혈연이나 혼인으로 이뤄진 가족이 아니라도 두 성인이 합의를 통해 함께 산다면 필요한 사회복지 혜택이나 제도적 권리를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에 대한 개념은 변하지만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가족의 유형은 너무나 제한적이다. 생활동반자법이 실제로 시행된다면, 동거하는 연인이나 함께 사는 친구도 생활동반자로서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정치학을 전공한 황 보좌관은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에서 시행된 PACS를 접하게 된 뒤부터 이러한 내용의 법안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2000년대 초반 여러 번역서를 통해 프랑스의 PACS를 접하게 되면서 이런 내용도 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구나라는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도 저런 내용의 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의원실에서 일하게 되고 생활동반자법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차에 당시 의원님과 뜻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의원실에서 근무를 시작한 뒤에는 생활동반자법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없던 법안의 유형이라 참고할 만한 법안도 없었기 때문이다. '법'에 관한 전문가인 변호사들이나 입법조사관들에게 물어봐도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결국 황 보좌관은 외국의 여러 법안을 참고해 초안을 만들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동시에 현행법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함께 살며 부양하는 다양한 이들을 만나 사례를 수집하거나 발의를 앞둔 시점에는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각종 토론회를 열어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보수 세력은 이를 동성혼과 연계해 비방하기 일쑤였고, 생활동반자법의 본래 취지는 알려지지 못한 채 잘못된 편견과 비합리적인 반대만 커졌다.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정치적 상황도 급변하면서 차분히 법안을 논의할 시간도 없었다. 탄핵 정국에 이어 대선 정국까지 굵직한 정치 일정들이 이어졌고 결국 생활동반자법은 19대에도, 20대에도 정식 발의가 되지 못한 채 황 보좌관의 컴퓨터에만 잠들어 있는 상황이다. 황 보좌관은 "참 아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9대 국회 당시 처음 발의하려 할 때는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동성혼을 조장한다는 편견만 있었어요. 이걸 어떻게 뚫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여론화를 한 뒤 (적당한 시기에) 발의하려 했는데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대선 정국으로 넘어가면서 이 법안을 심도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죠."

하지만 황 보좌관은 좌절하지 않는다.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한 이유를 담은 책을 내고, 이 법안이 필요한 이들에게 생활동반자법이라는 새로운 대안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알리는 중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게 황 보좌관의 생각이다.

"사회적 요구가 있는 상황에서 정부나 국회에서 정치적인 논리 때문에 계속 미루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이 법안을 잘 설명해 줄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에서 책을 내게 된 거에요.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결혼연령이 늦어질 뿐 언젠가는 다들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결혼해서 사는 게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결혼했다가 사별 혹은 이혼하는 분들도 많아져서, 이러한 삶에 대한 고민을 담은 정책적인 대안을 잘 담아내려고 했어요."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호소 지나쳤던 과거,
국감 질의와 법안 발의로 이어져
국회로 돌아온 황 보좌관, 앞으로 추진할 법안은?

지난 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 되자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0.05.20.
지난 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 되자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0.05.20.ⓒ뉴시스

황 보좌관이 생활동반자법만큼이나 많은 애를 쓴 법안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형제복지원 사건 등 과거 국가 인권유린 사건들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과거사법'이다. 황 보좌관은 새해 첫날 페이스북에 "20대 국회가 닫기 전에, 과거사기본법이 통과하는 것이 제 새해 소원입니다"라고 적을 정도로 과거사법의 통과를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 과거사법은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당시는 황 보좌관이 국회를 잠시 떠나있을 때였지만, 누구보다도 과거사법의 통과를 환영했고 기뻐했다. 황 보좌관이 유독 과거사법에 애착을 보인 이유는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었다.

"생활동반자법만큼이나 오래 관여했고, 어떻게든 통과시키고 싶었던 법안이 바로 과거사법이에요. 국회에 취업했을 때 한종선 선배님이 1인시위를 하는데 사실 잘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워낙 국회 앞에 많은 분들이 찾아오니까. 그러다 한종선 선배님이 쓴 책을 보게 됐고 그 책을 보면서 과거사법을 추진하게 됐던 거죠.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내 앞에서 한 이야기들인데, 내가 해결해야 하는 법적 과제들이었는데 처음에는 무시하고 지나쳤으니까요."

이러한 부채감은 국정감사 질의와 법안 발의로도 이어졌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2013년 당시 국정감사에서 유정복 안전행정부(지금의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형제복지원 사건의 대책 마련을 촉구할 수 있도록 질의서를 만든 것이다. 당시 의원실 내에서도 너무나 복잡한 사안이라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텐데 국정감사 질의로 적절하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문제 해결이 절실했던 황 보좌관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형제복지원 사건을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들은 계속됐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들의 생활 지원을 위한 법안을 만들었고, 진선미 의원은 이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인연으로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정문 앞에서 노숙 농성을 했던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은 진 의원을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됐다. 황 보좌관도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들을 부를 때마다 '선배님'이라고 칭한다.

책 집필을 위해 잠시 보좌관직에서 물러났던 그는 21대 국회가 시작되고 난 뒤 최근에서야 다시 민주당 소속 한 의원실로 돌아왔다. 그는 앞으로 또 어떤 사안에 관심을 보이고, 어떤 법안을 만들기 위해 분투할까. 황 보좌관은 아직 고민 중이라고 했다. 다만, 생활동반자법 추진을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

"같이 일하게 된 의원이 청년 의원이라 청년과 관련된 법안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 분야에 청년을 할당하거나 청년에게 특별한 돈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서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어요. 생활동반자법을 연구하면서 절실히 느꼈던 노인 문제에 대한 심각성도 풀어보고 싶고요.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생활동반자법 추진도 계속 노력할 겁니다."

황두영 보좌관. 자료사진.
황두영 보좌관. 자료사진.ⓒ시사인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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