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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20주년 특별기획] 누가 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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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2000년 5월 15일 첫걸음을 뗀 민중의소리가 창간 20주년을 맞았습니다. 독자와 후원인들의 성원과 격려로 민중의소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며 자주평화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진보언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창간 20주년 특별기획으로 각계 원로, 전문가, 신진인사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릴레이 기고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코로나 사태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정상으로 통하던 기준을 뒤엎고 새로운 기준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개혁’을 일으키고 있다. 사망도 낳고, 실업도 양산한 COVID-19는 백퍼센트 나쁜 것만 가져오지 않았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처음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된 정부재난지원금은 다종다양한 분야에서 국민의 권리 의식을 눈뜨게 할 것이며, 지지부진했던 기본소득 논의를 더욱 활성화할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 사태는 주제 사마라구의『눈먼 자들의 도시』(해냄,19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콜레라 시대의 사랑』(민음사,2004)과 같은, 재난을 주제로 한 몇몇 소설을 주목하게 하거나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그 가운데 알베르 까뮈의『페스트』(1947)는 가장 높은 특수(特需)를 누렸다. 이 작품에는 페스트와 같은 한계상황에서 볼 수 있는 세 가지 인간형이 잘 묘사되어 있어 그 유형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다. 논술고사의 모범답안을 연상시키는 세 가지 인간형은, ①도피형(랑베르 기자) ②초월형(파늘루 신부) ③저항형(리외 의사, 타루)이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스틸컷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스틸컷ⓒ스틸컷

페스트로 봉쇄된 도시에서 암거래로 돈을 버는 코타르는 그 어느 유형에도 들지 않는 인물이다. 이웃의 한계상황을 이용해 사욕을 채우는 이런 인물을 굳이 명명하면 ④재난 이용형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이 사용 지역과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것을 이용하여 생필품 가격을 슬그머니 올린 자영업자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실제로 내가 자주 가는 마트에서 즐겨 샀던 4,500원짜리 매운탕 재료는 7,800원으로 무려 3,300원이 올랐다(재난지원금이 지급되던 주에 3분의 1이나 양이 줄더니, 2주일 만에 전격적으로 값이 올랐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의 얌체 짓보다 더 뻔뻔한 재난 이용형은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과 같은 대기업이다. 두 항공사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영 악화를 핑계로 각기 1조 7,000억과 1조 2,000억이나 되는 긴급 지원금을 수혜했다. 이들이 챙긴 국가 지원금은 기획재정부가 온갖 난색과 생색을 부리며 국민 전체에게 지원했던 3조원이라는 액수와 맞먹는다. 대한민국은 누구의 것이며, 국민은 누구를 위해 세금을 내는가? 재난 이용형인 코타르의 다른 이름은 쇼크 독트린(Shock Doctrine:대참사를 이용해 실시되는 과격한 시장 원리주의 개혁)이다.


얌체 자영업자보다 뻔뻔한 재난 이용형 자본
위험 속에서도 묵묵히 맡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
대한민국은 누구의 것이며, 누구를 위해 세금을 내는가


『지붕 위의 기병』(문예출판사,1995)은『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생태주의 소설로 유명한 장 지오노가 1946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1951년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코로나 시대에 이 작품이 다시 발견되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1832년 여름, 콜레라가 창궐했던 프로방스 지역을 무대로 한 이 소설에서 지오노는 리외 의사나 타루와 비슷한 제③형의 인물 앙젤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계상황에서도 얼마든지 고귀해 질 수 있는 인간을 탐구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앙젤로는 이탈리아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스물다섯 살 난 카르보나리(Carbonari) 당원으로, 오스트리아 스파이 쉬바르츠 남작을 결투 끝에 죽이고 프랑스로 도주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제공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이미지. 이 바이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코로나19)을 일으키는 병원체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제공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이미지. 이 바이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코로나19)을 일으키는 병원체이다.ⓒAP/뉴시스

국경을 넘자마자 콜레라와 맞닥뜨린 앙젤로는 한 마을과 도시의 주민이 몰살하는 환란의 복판에서 콜레라 환자를 찾아다니며 돌보는 젊은 의사를 만난다. 일명 ‘불쌍한 작은 프랑스인’으로 불리는 그는 환자를 돌보는 중에 죽게 되고, 앙젤로는 젊은 의사의 헌신에서 ‘용기’와 ‘희생’에 바탕한 “절대적 이타심”을 본다. 이후 앙젤로는 또 다른 마을에서 피난도 가지 않고, 콜레라로 죽은 환자의 시체를 씻어 주는 늙은 수녀를 만난다. 이름이 나오지도 않았던 그녀는 거리에 버려진 시체를 깨끗하게 닦는 일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허벅지에 똥이 묻은 채 일어날 때, 주님 앞에서 내가 어떤 얼굴이겠어? 주님이 내게 말씀하실 거다. ‘너는 거기 있었고, 이 일을 알고 있었다. 왜 이들을 씻겨주지 않았는가?’하고. 나는 청소부야. 난 내 일을 하는 거지.”

절대적 이타심의 반대편에 재앙을 틈타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려는 “천박한 족속”과, 전염병 때문에 발광 상태에 이른 군중의 “공포”가 있다. 천박한 족속은 고작 돈을 갈취하지만, 공포에 이성을 빼앗긴 군중은 마을을 찾아온 이방인을 ‘샘에 독을 타는 자’로 몰아 죽인다. 지오노는 1832년 프로방스 지역을 휩쓴 콜레라를 통해 막 끝난 지난 전쟁에 대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콜레라가 그렇게 쉽사리 번지고, 동료들이 말하듯 ‘격렬한 전염성’을 갖고 있는 건, 계속되는 죽음의 현존 앞에서 콜레라가 모든 사람 내부에 있는 예의 타고난 이기주의를 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이기주의로 죽는 거요.”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대목이라면, 앙젤로가 어느 종교집회에서 한 여자가 휴대용 오르간으로 신부의 말에 묵묵히 반주를 넣고 있는 것을 보고서 떠올린 생각일 것이다. 그는 신부의 설교에 묵묵히 반주를 넣는 여자 오르간 연주자를 예찬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건 당연히 어떤 비결이 될 거다. 정치에 있어서도, 이와 비슷한 것을 발견해야 할 거다. 아직 없다면 만들어 내야 한다.”

장정일 소설가
장정일 소설가ⓒ자료사진

재난을 극복하거나 거기에 저항하기 위해 반드시 영웅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휴직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었던 숱한 노동자들, 일선의 방역 공무원들, 간호사들, 그리고 과로를 피할 수 없었던 택배 직원들. 이들이야말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영웅적인 저항자들이다. COVID-19는 시장에 의해 각이 허물어진 국가의 역할이 얼마나 위중한가를 새삼 가르쳐준 동시에, 묵묵히 자기 맡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야말로 국가라고 말해준다.

[창간20주년 특별기획]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모아보기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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