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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7개 에피소드와 일곱가지 맛이 그려낸 인생만찬, 연극 ‘궁극의 맛’
(홍보사진)두산아트센터_연극_궁극의 맛_자정의 요리
(홍보사진)두산아트센터_연극_궁극의 맛_자정의 요리ⓒ두산아트센터

어떤 음식이 기억으로 남을 때는 반드시 연결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추억이라 해도 좋고 사연이라 해도 되겠다. 그 음식을 먹던 날 일어난 일이라거나 함께 먹은 사람과 공유한 기억들이 음식을 통해 우리 오감에 각인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버지가 이것저것을 섞어 무심히 비벼낸 비빔밥이 재료는 기억에 없고 그저 진한 이미지로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아 평소 말을 섞지도 않았으면서 아버지의 비빔밥을 얻어먹을 때만큼은 옆에 붙어앉아 “한번만”을 반복했던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도장처럼 남아있으니 말이다. 음식이 단순히 음식이 아님을 생각하게 하는 이 영특한 시리즈극들은 오랜만에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연극의 일곱 개 에피소드는 연작으로 이어져 있다. 모든 이야기의 배경은 교도소다. 특히 여성 재소자들이 주인공이다. 치매걸린 시어머니와 아픈 딸 아들을 부양하며 힘겨운 삶을 견뎌오던 엄마는 아이들에게 약을 먹이고 집에 불을 지른다. 말도 잃고 맛도 잃은 채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던 엄마에게 아들의 편지가 도착한다. 사고가 남긴 몸과 마음의 상처, 엄마에 대한 증오와 그리움은 엄마가 끓여준 밍밍한 뭇국에 대한 기억으로 옮겨간다.

국회의원 보좌관 K씨는 자신이 모시는 국회의원의 죗값을 대신 치르고 있다. K씨는 의원을 따라 평소 좋아하지 않던 선지해장국을 먹게 된다. 자신을 버리지 않고 지켜줄 거란 의원을 향한 믿음이 조금씩 닳아가고 있을 때쯤 그날의 뭉근했던 선지해장국이 떠오른다.

(홍보사진)두산아트센터_연극_궁극의 맛_왕족발
(홍보사진)두산아트센터_연극_궁극의 맛_왕족발ⓒ두산아트센터

모두가 잠들어야 할 자정의 교도소, 그것도 조리실에 자해를 시도한 재소자와 교도관이 영양사에게 먹을 것을 주문한다. 세상이 주목하고 있다는 재소자다. 여자는 자신의 어린 딸을 성폭행한 범인이 출소하는 날 그를 죽이고 교도소로 들어왔다. 여자는 영양사에게 밀가루반죽으로 문어를 만들어 라면에 넣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어린 딸과 함께 먹으러 가자고 약속한 라면이었단다. 여자는 그 라면을 죽은 아이의 생일상으로 대신하고 싶었던 것이다.

탈북민 펑펑이 아줌마는 늦은 밤 몰래 펑펑이떡을 만들고 있다. 옥수수가루에 물을 조금씩 붓고 치대면 펑펑이떡이 만들어진다. 다 만들어지면 콩고물에 묻혀먹으면 고소하고 꿀에 찍어 먹으면 달달한 맛이 난다. 그 맛난 고향음식을 가정부일하던 집 주인에게도 만들어 주었다. 하필 까탈스럽고 폭력적인 주인이 제 성질에 못이겨 떡을 먹고 죽게 된다. 아줌마는 그 죽음의 원인 제공자로 교도소에 들어왔다.

음식에 얽힌 사연이 구구절절 목 메이고 가슴 지릿지릿하다. 교도소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위로와 위안으로 기억되는 추억들은 각각의 맛으로 살아난다. 상견례를 하러 온 예비 신부와 신랑이 가져온 왕족발은 관계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미술심리치료실에 모인 재소자들은 구토를 통해 몸속 음식들을 비워낸다. 다 비워내고 나니 허기가 찾아온다. 이들의 이야기를 다 겪고나면 관객들에게도 허기가 찾아온다. 다 비워내고 나면 채워야 한다는 것, 고통도 아픔도 추억도 기억도 다 비워내고 나면 다시 시작할 힘을 얻듯.

연극은 아주 최소한의 무대에서 이루어진다. 정확하게 무대가 객석이고 객석이 무대이다. 모든 에피소드는 이 엇갈린 삼각무대이자 객석에서 펼쳐진다. 바로 옆에 앉은 배우들이 연기하고 관객과 코앞에서 마주한 채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한다. 하나의 에피소드는 음식의 흔적을 남기고 다음 이야기는 또다른 흔적을 남긴다. 남겨진 음식들 속에서 관객은 매순간이 연극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성 재소자들의 이야기는 여성들의 이야기로 되돌아와 객석 사이사이 빈 공간을 묵직하게 채운다.

연극 ‘궁극의 맛’
공연날짜:2020년 6월 2일-6월 20일
공연장소:두신아트센터 Space111
공연시간:화수목금 8시/토일 3시
러닝타임:120분
원작 츠치야마 시게루 「고쿠도메시」
제작진:연출 신유청/각색 황정은 진주 최보영/드라마터그 윤성호
출연진:강애심, 이수미, 이주영, 이봉련, 김신혜, 신윤지, 송광일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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