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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가 ‘세습’되는 사회서 ‘죄인’은 아버지뿐이었다
4일 오전 광주 북구 오룡동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 마련된 청년노동자 故김재순씨 분향소를 찾은 김용균 어머니가 조화를 놓고있다.2020.6.4
4일 오전 광주 북구 오룡동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 마련된 청년노동자 故김재순씨 분향소를 찾은 김용균 어머니가 조화를 놓고있다.2020.6.4ⓒ뉴스1

청년 장애인 노동자 김재순(27) 씨가 지난달 22일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숨졌다. 사업주는 ‘김 씨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다가 죽었다’라며 김 씨의 과실이라고 말했다. 김 씨 아버지 김선양 씨는 위험한 노동 환경이 부른 참사라고 확신했다. 목수로 일했던 그 역시 2002년 산재 피해로 손가락을 잃어 장애인이 됐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김 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이 사건 진상규명에 뛰어든 이유다.

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최로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김재순 장애인, 청년, 노동자 사회적 타살 규탄 기자회견:30년 장애인 일자리 정책 사망선고’가 열렸다. 김선양 씨는 “못난 아비로서 이 자리에 서서 발언한다는 것 자체가 죄송스럽고 송구하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배우자와 일찍 이혼한 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아들이다. 산업재해가 아버지에서 아들로 세습되는 사회에서 ‘죄인’은 아버지뿐이었다.

4일 오전 광주 북구 오룡동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청년노동자 故김재순 산재사망 사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씨의 아버지가 발언을 하고 있다.2020.6.4
4일 오전 광주 북구 오룡동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청년노동자 故김재순 산재사망 사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씨의 아버지가 발언을 하고 있다.2020.6.4ⓒ뉴스1

고 김재순 씨의 사망은 ‘예견된 인재’였다. ‘고 김재순 노동시민대책위원회’ 진상조사단은 지난 2일 중간보고서를 통해 이렇게 결론 내렸다. 김 씨는 지난달 22일 오전 7시 45분경 조선우드 공장에 출근해 굴착기로 파쇄작업장을 정리했다. 이어 수지 파쇄기 시험가동 및 점검을 하던 중 오전 9시 45분경 폐기물이 파쇄기에 걸려 이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가 미끄러져 파쇄기에 빨려 들어갔다.

조사단은 고위험 작업에 지적장애인을 단독 작업하게 한 것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 조사단은 “회사는 위험성이 큰 수지 파쇄기 사전가동 및 점검작업을, 지적장애인인 김 씨 혼자 수행하는 것에 대해 묵인하거나 지시했다”라며 ‘사수가 없는 상태에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라는 회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2인 1조 작업을 준수하지 않은 점,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인 비상정지 리모컨과 덮개 등이 없었던 점 등도 원인이 됐다.

6년 전 해당 사업장에서 똑같은 사고가 있었다. 2014년 1월 한 노동자가 목재 파쇄기에 옷이 감겨 압박사했다. 김 씨 사건처럼 노동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덮개, 비상정지장치 등 안전장치가 설치돼있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참사였다. 노동부의 개선 명령이 있었지만, 지켜지지 않은 채 공장은 가동됐다. 조사단은 “전반적으로 사고의 위험성을 많이 안고 있어 언제든 사고가 날 열악한 작업환경”이라고 지적했다.

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최로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김재순 장애인, 청년, 노동자 사회적 타살 규탄 기자회견:30년 장애인 일자리 정책 사망선고’가 열렸다.
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최로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김재순 장애인, 청년, 노동자 사회적 타살 규탄 기자회견:30년 장애인 일자리 정책 사망선고’가 열렸다.ⓒ민중의소리

김재순 씨는 지난해 4월 일을 그만뒀었다. 일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고 유족 측은 전했다. 그러나 김 씨는 3개월 만에 돌아와야 했다. 이기풍 전장연 조직국장은 “중증장애인을 받아주는 산업현장은 아무 데도 없다. 김 씨에겐 위험천만했던 이곳이 유일하게 허락된 일자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장 취약한 이들이 가장 위험한 노동을 강요받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선양 씨는 누구보다 아들의 고충을 이해했다. 김 씨는 “장애인인 사실을 숨기고 이력서를 내면 취업이 되는데, 장애인이라고 하면 사업주들이 싫어한다”라며 장애인이 노동시장에서 겪는 편견과 차별을 고발했다. 그는 가장 최근 직장에서도 장애인이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김 씨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평등하게 대우받으면서 함께 어울려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아들의 실수로 사고를 축소한 사업주의 말을 듣고 김선양 씨는 “어처구니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건설현장에서 안전구호로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를 외친다. 이걸 안전구호라고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산업현장의 안전은 노동자와 사업주, 노동부와 국가가 함께 지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두 번 다시 젊은 청춘들이 소리 없이 죽고, 억울하게 죽어가선 안 된다”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고 김용균 씨 사망 사고 때도 사업주는 ‘가지 말라는 곳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라며 책임을 김 씨에게 전가했다. 청년노동자들의 죽음 행렬이 멈추지 않는 이유다. 권명숙 서울진보연대 집행위원장은 “김용균 씨와 김재순 씨처럼 경력 없고, 가진 것 없는 20대 청년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사업장은 저임금 고위험 사업장이다. 청년들을 이런 곳으로 내모는 사회는 잘못됐다”라고 비판했다.

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최로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김재순 장애인, 청년, 노동자 사회적 타살 규탄 기자회견:30년 장애인 일자리 정책 사망선고’가 열렸다.
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최로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고 김재순 장애인, 청년, 노동자 사회적 타살 규탄 기자회견:30년 장애인 일자리 정책 사망선고’가 열렸다.ⓒ민중의소리

중증장애인의 일자리 부족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 활동가는 “중증장애인에게 안전하게 일할 일자리가 있었다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장애인 고용현황에 따르면 장애인 의무고용 업체 2만9천여 곳의 장애인 노동자는 22만여 명으로 전체 장애인 250만여 명의 1/10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중증장애인 고용을 위축하는 정책을 펼쳐 비판을 받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4월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시행령 일부 개정을 입법 예고했다. 장애인 노동자가 재정지원 대상이 되는 경우 장애인 고용장려금의 지급을 제한하겠다는 취지다. 이기풍 조직국장은 “고용장려금은 사업자에게 지원하는 것이고, 재정지원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것”이라며 중증장애인의 공공일자리 환경을 파괴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장애인 일자리 정책이 만들어진 지 30년이다. 그동안 무엇이 좋아지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시장에 겨우 들어간 장애인은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말도 못 한다. 경쟁 속에서 차별받고 안전할 권리조차 말도 못 하면서 잘릴까 봐 찍소리도 못하면서 일하다가 죽었을 뿐이다”라고 질타했다.

이날 전장연은 ‘고 김재순 사회적타살 장애·노동·시민서울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이재갑 노동부 장관 사과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장애인고용법 전면 개정 ▲장애인고용사업장 장애유형 편의제공 및 안전실태 전면조사 실시 ▲중증장애인 지원 근로지원인 예산확대 ▲중장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 폐지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1만 개 보장 등을 관철하겠다고 밝혔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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