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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집단따돌림 우울증 시달려도 ‘알아서 피해 다녀라’는 학교...방치된 피해자
B군이 작성한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위한 ‘학생 확인서’에는 “왕따 당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정말 원망스러웠다. 외롭고 우울했다. 난 늘 혼자였다”고 적혀있다. (자료사진)
B군이 작성한 학교폭력 사안 조사를 위한 ‘학생 확인서’에는 “왕따 당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정말 원망스러웠다. 외롭고 우울했다. 난 늘 혼자였다”고 적혀있다. (자료사진)ⓒpixabay

‘나 같은 아이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똑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되면 난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피해학생이 학교나 교육지원청, 경찰 등 관련 기관으로부터 실질적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면서 자퇴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A고등학교에 다니는 B군(18)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지난해 7월부터 같은 반 친구 15여 명으로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B군이 학교에 학폭을 알리면서 피해 사실을 작성한 '학생 확인서'에 따르면, 가해 학생들은 B군의 얼굴을 보며, 또는 뒤에서 수시로 욕설을 했다. B군 자리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B군의 옷을 빌려 간 뒤 음식물을 묻혀 돌려주기도 했다. “너 게이냐? 더럽게” 등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중학교 졸업 직전 수지구로 이사 온 B군은 처음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다. 친구들이 자신을 왜 따돌리고 외면하는지 이유를 몰라 답답했다. 따돌림을 당하면서 항상 혼자였던 그는 혼자 다니는 걸 쳐다보는 시선을 피하려 주로 화장실에 있었다. 또 친구들이 급식을 다 먹고 돌아오는 12시 50분쯤에야 배가 고파 급식실에 가서 혼자 밥을 먹은 적도 있었다. B군은 ‘냄새 나는 화장실이 내가 있는 곳인가 생각하면 너무 비참하고 부모님께 죄송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6개월이 넘도록 따돌림을 당하면서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에게 말하면 소문이 날 것 같았고, 부모님에게는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SNS로 고민상담을 할 뿐이었다. 그렇게 1학년을 마쳤다. 그런데 올해 2학년이 되면서 가해에 가담했던 3명과 다시 같은 반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두려움이 커졌다. 또다시 ‘벌레처럼 느껴졌던’ 고통을 다시 겪을 것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코로나19로 등교가 연기되던 지난 4월14일 저녁, B군은 부모님에게 괴롭힘 당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B군의 어머니는 바로 다음 날 학교에 이 사실을 알렸다. 4월18일 학교폭력 담당 부장 C씨와 면담하며 ‘15명을 모두 신고하면 조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해학생을 5명으로 축소해 신고했다. B군과 어머니는 ‘학교 폭력 사안 조사’를 위한 확인서를 작성했다. 학교는 검토 뒤 사안을 교육지원청으로 넘겼다. 올해부터 학교폭력 사안 심의 업무가 학교에서 전국 시·도교육청 산하 교육지원청으로 이관됐다. B군의 사건을 접수한 경기도용인교육지원청은 5월22일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심의위)를 6월1일에 개최한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B군은 학폭심의위가 열리기 전인 5월27일부터 단계적 등교 개학에 따라 학교에 나가야 했다. 가해학생들과 마주쳐야 했다. 그는 어머니와 찾은 정신과의원에서 ‘불안 및 우울병장애’ 진단을 받고 치료하고 있었으며, 가해 학생과 마주하는 것 자체가 두렵고 무서운 상황이었다.

B군이 지난 4월 25일 정신과의원에서 받은 진단서. 향후치료의견에 ‘가해 학생과는 되도록 같은 반에서 생활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적혀 있다.
B군이 지난 4월 25일 정신과의원에서 받은 진단서. 향후치료의견에 ‘가해 학생과는 되도록 같은 반에서 생활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적혀 있다.ⓒB군 측

이에 B군의 부모는 27일부터 학폭심의위가 열리기까지 나흘간 가해학생 5명 중 같은 반인 1명에 대해 ‘출석정지’를 원한다고 교육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 제17조 4항에 따라 학폭심의위가 열리기 전까지 학교장이 내릴 수 있는 긴급조치였다. 해당 민원을 접수한 용인교육지원청은 학교 측에 긴급조치를 할 수 있는 법 규정을 안내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명확한 증거가 없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 ‘가해자의 학습권도 있다’며 출석정지가 아닌, 접촉금지 조치만 내렸다.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정신과의원 담당 의사로부터 받은 ‘가해 학생과는 되도록 같은 반에서 생활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B군 부모는 ‘같은 반에서 접촉금지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항의했지만 학교장으로부터 ‘행정절차에 따라 할 뿐이다’, ‘B군이 가해자 쪽을 보지 않으면 된다’는 안일한 답변만 받았다.

결국 B군은 등교 첫날 ‘2차 피해’를 당했다. 가해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몰려와 큰소리로 웅성거리고 일부러 B군의 앞쪽으로 와서 쳐다봤다. 이에 그는 갑자기 땀이 나고 숨이 잘 안 쉬어져 엎드렸다. 당일 찾아간 정신과 의사는 일시적으로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A고등학교 교장 D씨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가해학생들에게 가지 말라고 지도했지만 피해학생은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학폭심의위 전에 가해학생을 ‘학폭 관련자’라고 하지 않고 ‘가해자’라 했다고 엄청 항의를 받았다. 아마 긴급조치로 가해학생에 대해 출석정지 조치를 했다면 소송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B군 부모에 따르면, 학폭 담당 부장 C씨는 ‘제가 모르는 사건이 또 터졌네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접촉금지 등 긴급조치를 지키지 않을 시 추가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학생이 2차 가해에 방치된 셈이다. B군은 등교 첫날 이후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B군 측은 경찰에 형사 고소도 했지만 경찰 측은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진술이 너무 다르고 정황증거만 있어 조사가 어렵다며 학폭심의위 결과를 기다려보자고 했다. 경찰 역시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1일 용인교육지원청이 주최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따른 조치결정 통보서 1쪽.
지난 1일 용인교육지원청이 주최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따른 조치결정 통보서 1쪽.ⓒB군 측
지난 1일 용인교육지원청이 주최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따른 조치결정 통보서 2쪽.
지난 1일 용인교육지원청이 주최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따른 조치결정 통보서 2쪽.ⓒB군 측

지난 4일 학폭심의위 결과를 받은 B군과 부모는 또 한 번 좌절했다. B군이 지목한 5명 중 4명에 대해서는 가해 사실을 인정했지만, ‘경미한 학폭’에 따른 조치 사항으로 분류되는 ▲서면사과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교내봉사 6시간 등 학폭법 제17조 1항의 1~3호의 조치를 내렸다.

나머지 1명은, 그동안 가해에 가담해오다가 체육시간에 농구를 하던 중 B군의 발을 걸어 무릎 부상을 당하게 한 학생이다. 그는 B군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오히려 다른 가해학생들과 속닥거리고, 무시하면서 지나쳤고 B군이 그 부상으로 6일간 입원치료를 하는 동안에도 한 번도 안부를 묻지 않았다. B군은 ‘다친 것도 서러운데 비웃고 비아냥거리는 그 눈빛이 악마 같다.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피해사실을 적었다. 그러나 학폭심의위는 가해 행위로 볼 증거가 없다며 ‘조치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결국, 학폭심의위 이후에도 피해학생 B군과 가해학생이 같은 반에서 지내야 하는 건 바뀌지 않았다. B군 측은 학폭심의위에 ‘가해 학생과 같은 반에서 생활하는 것이 두려움과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어 분리가 요구된다’는 취지의 정신과 진단서와 청소년상담사의 소견서도 제출했지만 소용없었다.

B군 어머니는 “B군이 전학간다고 해도 또 무슨 일을 당할 경우 지금과 같이 어떠한 보호조치를 받지 못할 것 같다”며 “B군은 가해학생과 분리된다면 학교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부모로서 방치된 상황에 놓이게 할 수는 없다. 자퇴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B군이 청소년상담사로부터 받은 소견서. ‘가해 학생들과 겹치는 공간에서 매일 생활하는 것이 두려움과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분리가 요구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B군이 청소년상담사로부터 받은 소견서. ‘가해 학생들과 겹치는 공간에서 매일 생활하는 것이 두려움과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분리가 요구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B군 측

이에 대해 교장 D씨는 “학폭심의위 전에 공황장애가 왔기 때문에 학폭심의위에서도 고려했을 것이다. 저희가 독립된 기관(교육지원청)에 뭐라고 할 수는 없다”며 “학교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 노력했다. 피해자나 가해자가 100%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측의 기계적 중립이 결과적으로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피해자만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피해학생을 위한 학교 차원의 보호조치’에 대해 묻자, D씨는 “교내 자리를 배치할 때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이 마주치지 않게 할 수밖에 없다. 학교에 나와서 수업을 듣는 게 곤란하면 상담실에 있거나 도서실, 보건실에 있으며 된다”며 “올해까지는 그럴 수밖에 없고 내년에 학급 분리를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B군 사건을 담당한 용인교육지원청 장학사는 “가해자 조치에서 ‘학급교체’는 7호다. 거기에 상응하는 점수가 나와야 7호 조치가 결정되는데 학폭심의위에서 결정했을 때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폭심의위에 이의가 있을 경우 불복절차로 행정심판, 행정소송을 하면 된다”며 “그 외에 교육지원청에서의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조치는 따로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통상 2개월이 소요되는 행정심판은 가해학생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운 피해학생에게 실질적으로 보호조치가 될 수 없다. 또한,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상담원에 따르면, 행정심판은 서면진행이 원칙이며 절차상의 문제나 위법적 문제 등에 대해 살펴보는 것으로 특별하게 앞의 기관이 잘못한 게 없다면 기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같이 학폭 피해학생이 어떠한 기관으로부터도 실질적인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학교폭력 피해학생 지원기관 ‘해맑음센터’의 한 관계자는 “현재 학폭법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해학생에게 내려진) 접촉금지 조치는 사실 학교 현장에서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명목상의 조치밖에 안 된다”며 “피해자 입장에서는 현재 현실적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학폭심의위에서는 가해사실이나 피해사실이 분명한 경우에만 점수를 매긴다. 심각성, 반성 정도 등 5가지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높은 점수가 아니면 1~3호에 해당하는 조치를 내린다”며 “이 경우 피해학생의 특수성은 고려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1~3호에 해당하는 경미한 학폭이라고 하더라도, B군과 같이 전문의의 진단이 있고 가해학생과 같은 반에 있기 어렵다고 호소할 경우에는 학교장 재량이나 학폭심의위에서 가해자에 대한 학급교체라든가 일정 기간의 출석정지를 내리는 강제 조항이 담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4월19일 헌법재판소는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출석정지’를 받은 뒤 ‘학습자유권을 침해받았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학교폭력에 대한 사후조치는 피해학생의 보호가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가해학생에 출석정지 징계를 내리는 것이 헌법상 학습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헌재는 이어 “가해학생의 학습의 자유를 덜 제한하면서 학교폭력에 구체적·탄력적으로 대처하고 피해학생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려는 목적을 달성할 입법적 대안이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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