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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 100세 시대, 고령자의 삶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다. 이 익숙한 말이 어디서 연유했는지는 몰라도, 미래를 위해서 젊었을 때 고생을 마다하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젊었을 때의 고생을 사지는 않았으나 피하지 않았던 고령자들을 기다리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저녁 없는 삶을 포기하면서 성실하게 일한 사람들은 은퇴 후 어떤 취미를 향유하며 살 수 있을까? 100세 시대를 대비하여 제 2인생 준비하자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희망의 노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분홍빛 전망과 달리, 은퇴 후 고령자 대다수는 노동시장에 재진입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젊을 때 상상하지 못한 고된 노동이 기다린다. 임계장,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 된다. 은퇴고령자가 어렵사리 얻은 일자리는 단순노무직일 가능성이 크고, 보통 임금은 노동적령기에 비해 낮다. 최저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는 하늘에 별 따기와 같다. “내가 전에 다니던 공기업을 세상 사람들은 신의 직장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말이 월급은 많고 일은 적다고 비난하는 소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퇴직 후 경비원 일을 해보니 신의 직장이란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임계장 이야기)

보통 65세 이상을 고령자, 노인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은 OECD 회원 국가 중 여성은 1위고, 남성은 2위를 차지한다. 이렇게 높은 이유는 고령자의 소득빈곤율과 관련이 있는데, 소득빈곤율이 OECD 회원 국가 중 1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 청소년, 성인의 소득빈곤율에 비해 고령자의 소득빈곤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 특징이다.(OECD 통계에서 나타난 한국 노인의 삶과 시사점, 2019.3. 국회입법처)

15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한 어르신이 폐지 담은 리어카 끌고 이동하는 길에 은행나무 낙엽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15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한 어르신이 폐지 담은 리어카 끌고 이동하는 길에 은행나무 낙엽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는 은퇴 후 준비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 우리나라의 실제 은퇴연령은 평균 57세이다. 그러나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유효은퇴연령은 71.9세이다. 이 의미는 은퇴 준비 부족으로 상당한 시간을 더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임상범, 혐로사회) “고령자가 되어도 돈이 필요해서 일을 해야 하는 노인층, 과로노인이 되기 쉽다. 한국은 일본보다 고령자 생활이 더 어렵다. 일본의 상대적 빈곤율은 19.4%인데, 한국은 49.6%나 된다.”(후지다 다카노리, 과로노인)

인간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가 결코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재앙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젊었을 때는 은퇴 후 제 2의 인생을 꿈꾸었으나, 그 꿈은 포기된 지 오래다. 가난에 노환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로 한국의 고령자 상당수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제는 고령자에게 가난과 노동이 변수가 아니라 상수가 되었다. 이들은 과로노인이 되어 하류노인으로 전락한다. “하류노인은 4苦를 견디어야 한다. 빈고貧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 병고病苦이다.” (임상범, 혐로사회)

과로노인, 이들이 바로 노회찬 의원이 말하는 6411번 버스 승객이다. “아직 동트지 않은 거리로 나오는 첫차의 승객들은 항상 똑같다. 이 도시의 새벽을 깨우는 경비원 할아버지들, 미화원 할머니들이다. 매일 마주치니까 서로 얼굴을 안다. 그래도 인사를 건네지는 않는다. 내면 깊숙이 할 말은 많아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다. 고단함은 나눌 수 없는 것이다.”(임계장 이야기)

노동의 최하단, 고령자 비정규직

“나도 젊었을 때 이런 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지금은 견뎌 낸다. 육체적 고단함도, 정신적 학대도, 나이를 먹으니 견딜 수 있게 됐다. 나이에는 그런 힘이 있다. 나이가 들면 견뎌야 하는 일이 늘어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고령자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을 더 주신 걸까. 그러나 견뎌야 할 것들은 참 많았다.” (조정진, 임계장 이야기)

젊은이가 못 견디는 일을 노인들은 견뎌낸다. 견딜 만해서가 아니다.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늙은 소처럼 불평이 없다. 그런데 생계를 위해 견뎌야 하는 일이 늘어나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 고령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죽이는 삶을 살고 있다. 과로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져 취약해진 육신을 가지고 또 과로를 하며 산다. 매일매일 죽은 사람으로 숨을 쉬고 있다. 임계장은 의사가 더 이상 일하는 것은 자해라고 막는데도 불구하고, 자해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아파서 곧 쓰러진다면 몰라도 두 발로 땅을 딛고 일할 수 있는 한 내 몸뚱이 하나 돌보는 데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임계장 이야기)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지 경로사회가 아니라 노인 학대사회가 되어 버렸다. 새로 지은 아파트 주민들은 젊은 경비원을 선호한다. 고령층은 낡은 아파트로 밀린다. 거기서 그들은 경비 업무만이 각종 심부름을 하는 노예가 된다. 그러나 고령자들의 노동은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여러분은 고령자가 일하는 모범사례이십니다. 집에서 따분하게 노는 것보다 일을 하시니 건강에도 좋고 용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임계장 이야기)

단지 내 주차 문제를 시작으로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에게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행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사건은 지난달 21일 오전 한 입주민이 아파트 주차장에 이중 주차된 자신의 차량을 미는 경비원에게 폭언을 퍼부었고 며칠 뒤 경비초소로 끌고 가 폭행을 가했다. 결국 모멸감에 시달러딘 경비원은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사진은 12일 해당 아파트의 경비실이 비좁고 열악한 환경을 보이는 내부 모습. 2020.5.12
단지 내 주차 문제를 시작으로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에게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행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사건은 지난달 21일 오전 한 입주민이 아파트 주차장에 이중 주차된 자신의 차량을 미는 경비원에게 폭언을 퍼부었고 며칠 뒤 경비초소로 끌고 가 폭행을 가했다. 결국 모멸감에 시달러딘 경비원은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사진은 12일 해당 아파트의 경비실이 비좁고 열악한 환경을 보이는 내부 모습. 2020.5.12ⓒ뉴스1

고령자의 일자리는 단 시간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아니다. 상시 정규적 일자리가 많다. 그러나 고령자라는 이유 하나로 이들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 위치한 시급노동자가 된다. 일과 관련된 상해도, 작업 중 발생한 질환도 개인적 사유, 노환으로 처리한다. 그리고 너무 쉽게 잘린다. 임계장이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은 ‘잘못했습니다’일 것이다. 자연재해로 사고가 나도, 길고양이 때문에 사고가 나도 원인은 경비원들의 감시 업무 태만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자른다”이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쉬운’ 고령자 비정규직이다. 위험을 혼자 감당하고 책임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간극은 커지고, 불행하게도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처우에 대하여 정규직들은 무관심하거나 냉담하다. 결국 고령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중삼중의 차별과 부당함을 견디어야 한다.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임계장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저자의 목소리, “전태일 시대의 가혹한 노동은 현 시대에 단기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 시대의 비정규직이 없어지려면 또 얼마나 많은 전태일이 스스로를 태워야 하는 것일까?” 오늘도 전태일이 죽음을 선택했다. 청년 전태일이 아니라 중장년 전태일이 죽음을 선택했다. 중장년의 죽음에는 비정규직이 겪어야 하는 차별에 보태어 고령자에 대한 혐오 의식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고령자들은 젊었을 때의 고생이 미래에 답할 것이란 꿈을 꾸며 살아왔다. 그러나 고생은 과거와 현재의 일이며, 미래에는 멈출 것이란 희망이 없다. 그 시련에 인격 살인적 성질이 포함되면, 이들은 인간임을 나타내기 위해, 저항으로 죽음을 선택한다. 오늘 많은 사람이 죽음의 앞에 서있다. 이들을 긴급하게 죽음 앞에서 구하는 대책을 현실화해야 할 시간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순간,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누군가 말해야 한다. 임계장 이야기의 서사가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믿고 싶은 우리가, 이웃이, 사회가 말해야 한다.

“더 이상 좋은 것을 취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 때,
그들은 왜 노인이 미쳐야만 하는지 알리라.”
-예이츠, 왜 노인들은 미치면 안 되는가. -

김애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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