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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정직한 슬픔과 울분으로 기록한 디아스포라의 삶

온라인 음악서비스 사이트 바이브(VIBE)에서 ‘이지상’을 검색해본다. 젊고 트렌디한 스타일의 록 뮤지션 이지상이 뜬다. 아니다. 내가 찾는 이지상이 아니다. 스크롤을 내려본다. 앨범 메뉴에 이지상의 새 음반 [나의 늙은 애인아]가 있다. 맞다. 이 ‘이지상’이다. 뮤지션 소개 사진이 없는 이지상. 바로 음악을 시작한지 30년이 된 싱어송라이터 이지상이다.

예전에 다른 뮤지션에게 썼던 표현을 한 번 더 쓴다면, 세상은 이지상의 노래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대학가를 강타했던 조국과청춘의 노래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과 ‘통일은 됐어’가 그의 노래인 탓이다. 양희은의 노래를 빠짐없이 들었다면, 2001년 발매한 양희은 30주년 기념 음반 속 절창 ‘사랑-당신을 위한 기도’와 35주년 음반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가 그의 노래임을 알 것이다. 만약 노래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지상이 1998년부터 지금까지 다섯 장의 음반을 내놓은 중견 싱어송라이터이며, 전대협노래단 건준위와 조국과청춘, 노래마을 등의 노래패와 한국민족음악인협회, 시노래모임 나팔꽃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가 쓴 에세이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2010)와 여행기 ‘스파시바 시베리아’(2014),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2019)을 읽었을 수도 있다. 혹은 페이스북에서 그의 날렵한 축구 솜씨와 맛깔스러운 음식 솜씨를 맛보았을 지도 모른다. 지역 시민사회 활동가이자, 대학에선 강의평가 1위를 지키는 선생님이며, 근사한 붓글씨를 써내려가기도 하는 그는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예술가이다.

싱어송라이터 이지상
싱어송라이터 이지상ⓒ사진 = 이지상

그럼에도 그의 본업이 뮤지션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2020년 발표한 새 음반 [나의 늙은 애인아]가 그 증거이다. 10곡의 새 노래를 담은 이번 음반에서 이지상은 언제나 그래왔듯 곡을 쓰고 편곡해 노래를 불렀다. 늘 그의 음악을 채운 박우진, 송기정, 정은주, 조성우는 이번에도 그의 곁을 지켰다. 이번에는 김진경, 도종환, 박일환, 최광임, 채광석의 시가 노래로 탈바꿈했다. 여전히 어눌하고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목소리엔 어느새 세월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이번 음반에서도 그의 시선은 오래전부터 응시했던 사람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지상은 민중가요 진영에서 활동하면서도 한 번도 이래야 한다거나 저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다. 그는 당위와 선언을 노래하지 않았다. 신념과 낙관을 전시하지 않았다. 다만 역사에 의해 상처받고 밀려난 사람들 곁으로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들 곁에서 귀 기울여 들은 이야기를 노래로 옮기거나, 차마 시선을 뗄 수 없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가슴을 쓸어내린 이야기로 고운 노래를 만들었다. 그것이 그의 30년 노래 인생이었다.

이번 음반에서도 이지상은 우리 사회의 디아스포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기차는 그 새벽을 떠났다’, ‘저 나무’, ‘윤치호에게 쫓겨난 소녀’로 이어지는 세 곡의 노래는 노래로 쓴 독립운동사 3부작이며, 디아스포라의 노래이다. 이지상이 김 알렉산드리아와 계봉우, 한창걸을 거쳐 박일리아, 이인순, 이상설, 김규면, 박진순과 한형권, 최재형, 오하묵, 이용의 이름을 하나씩 읊조릴 때, 우리는 우리가 잊어버렸거나 차마 잊어버렸다는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심했던 시간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 시간은 독립운동의 빛나는 역사만이 아니다. 이념으로 갈라져 외면했던 한국현대사의 비극이며,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숨을 거둬야 했던 이들의 한과 설움의 시간이다. 민족을 강조하는 이들도 외면했던 역사이고, 민족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아예 기억하려 하지 않는 역사를 이지상은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첫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에 담은 ‘사이판에 가면’과 2집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에 담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베트남에서 온 편지’, 3집 [위로하다, 위로받다]에 담은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를 비롯한 노래들에서 그의 시선은 항상 한반도의 울타리를 넘어섰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지상의 노래는 현대 한국인의 삶과 역사에 비로소 근접했다. 다큐멘터리/영화, 문학의 영역에서 주로 수행했을 뿐, 대중음악의 영역에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은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삶과 역사를 자신의 노래로 꾸역꾸역 기록하며 이지상은 ‘우리’의 실체를 마주할 기회를 만들었다.

이지상 6집 앨법 나의 늙은 애인
이지상 6집 앨법 나의 늙은 애인ⓒ민중의소리

기쁘거나 신나기 어려운 이 노래들엔 깊은 우수가 묻어난다. 러시안 포크 스타일로 ‘ㄹ’발음을 강조하며 부른 ‘기차는 그 새벽을 떠났다’에서나 맑은 피아노 연주 위에서 속울음을 삼키며 담담하게 노래한 ‘저 나무’에서 이지상의 목소리는 떠난 이들 앞에 고개를 숙인다. 세상 모든 문제를 다 노래할 수 없고, 그 노래들을 다 듣지도 않을 세상에서 이지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래를 더할 뿐이다.

하모니카 연주에 “병아리 똥 같은 눈물”을 감춘 ‘윤치호에게 쫓겨난 소녀’에서 이지상의 목소리는 울분을 누른 채 노래하지만, 듣는 이들이 그 울분을 모를 수 없다. 노래 가사와 멜로디, 편곡의 사운드로 재현하는 노래의 핵심이 단지 누군가의 이름이나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노래들의 핵심은 슬픔이며 울분이다. 알아야 할 것들을 모르는 세상,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역사의 공과(功過)가 여전히 묻혀있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이 가능한 부조리와 불평등과 무능으로 인한 슬픔과 울분이다.

다른 곡들에서도 이지상은 슬픔과 울분의 세계를 직조한다. 그것이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고, 그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 정상의 만남을 감격적으로 노래한 ‘두근두근 그 노루’에서도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다. “생의 미련이 다하는 그날까진 서툰 나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고 우직하게 다짐하는 ‘흐린 눈빛으로는’과 평화와 통일을 꿈꾸는 ‘새의 날개는 대신 달아주지 않는다’에서조차 이지상의 목소리는 쓸쓸함과 처연함을 지우지 않는다.

아직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슬픔은 지금껏 해낸 것 앞에서 섣불리 웃음 짓지 않는다. 아직 해내지 못한 일,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삶, 계속 흐르는 눈물방울을 가리킬 뿐이다. 슬픔은 그만큼 정직하다. 슬픔은 우리를 정직하게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 쇳물 부어 그 공장 정문에 세워두라”고 노래하는 ‘그 쇳물 쓰지마라’에서도 이지상은 민주주의와 방역을 다 성공시킨 나라라고 우쭐대지 않는다. “젊은 청춘의 뼈를 녹인 쇳물”의 잔인함 앞에서 이지상은 “아무것도 만들지 마라”고 노래할 뿐이다. 이지상의 슬픔은 거울 같다. 어느새 외면하고 잊어버린 한국인의 자화상을 비추는 거울 같은 노래는 우리의 흐린 눈과 마음을 씻는다.

노래의 무게만큼 경쾌하거나 무거운 멜로디, 절대로 넘치지 않는 연주는 음반으로 드러내는 이지상의 성실하고 치열한 태도를 오롯이 전달한다. 첫 곡 ‘나의 늙은 애인아’부터 마지막 곡 ‘새의 날개는 대신 달아주지 않는다’까지 이지상의 노래는 내내 서정적이고 다채롭다. 그럼에도 노래 곳곳이 다소 고루하게 들린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뮤지션의 연배와 세대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러다보니 이 음반의 노래들이 다른 세대와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얼마나 확장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오래도록 이지상의 노래를 들어왔고 좋아했던 사람, 그리고 그와 같은 태도로 살아왔던 사람들만 호평하는 노래가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때, 민중가요가 오늘의 노래로 더 생생하게 살아있지 않을까.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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