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은 20여년 전 ‘산업연수생’이란 이름표를 달고 이 땅에 발을 딛을 때부터, 함부로 다뤄도 되는 싸구려 기계 취급을 받았다. 이들은 지금도 분절된 노동시장의 가장 하층에 존재한다.
최근 한국의 건설 현장, 폐기물처리장, 돼지농장, 갈치잡이 배는 이주노동자들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런데 그 모든 노동의 현장에서 자꾸 주검으로 귀향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5년 간 이주노동자의 재해율은 60% 이상 증가해 선주민노동자의 6배에 달한다. 2018년에만 136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사고로 사망하는 등, 전체 산재사고사망자 중 10%가 이주노동자인 상황이다. 한국에 체류하는 전체 이주민의 수가 240만명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산재사고로 사망한 이주노동자 수가 얼마나 많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산재사고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이들이 선주민이 취업을 꺼려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장시간 근로를 하기 때문이다. 또 불안한 체류 지위로 인해 사용자에게 예속된 상태라 무리한 작업 요구를 감내할 수 밖에 없는 점, 부족한 안전보건교육과 사용자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상 의무 미이행 등도 중요한 이유다. 이에 더해 산재 사고가 발생했을 시, 이주노동자의 배상금액이 턱없이 적은 것도 이들이 위험한 작업환경에 우선 투입되는 요인일 수 있다.
산재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용자의 책임을 묻고 처벌하도록 하는 산안법 규정에는 책임 범위와 처벌 정도에 대한 내용이 미흡하다. 이 때문에 지난 10년 간 산재사망사고에 대한 평균 벌금액은 400여 만원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재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용자에게 돌아가는 실질적인 불이익은 민사 배상 책임으로 귀결된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산재사망사고는 배상하면 되는 것이고, 비용과 편익의 문제인 것이다.
사용자의 민사배상책임은 '적극적 손해'와 '소극적 손해', '정신적 손해'로 나눌 수 있는데, 적극적 손해는 병원비나 장례비와 같이 사고로 인해 직접적으로 지출하는 비용을 말한다. 소극적 손해는 산재사고로 인한 노동자의 노동상실율과 노동자가 노동을 제공할 수 있는 가동기간에 따른 장래의 수입손해로 산정된다. 그외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가 책정된다.
소극적 손해의 경우, 같은 나이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했을 때 임금이 낮은 편이 더 낮은 배상액을 받게 된다. 이런 구조를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더 적은 책임을 져도 되는 노동자가 되는 셈이다.
이와 같은 구조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더욱 극적으로 적용 된다. 이주노동자의 민사배상액을 산정할 때는, 한국에서 그가 인정받은 체류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은 본국에서의 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3년의 체류기간을 인정받은 노동자가 있다면 3년 동안은 한국에서 받는 임금으로, 나머지 기간은 본국에서의 직업에 따른 임금, 특별히 종사하던 직업이 없다면 거주지역의 노동자 일용노임을 기준으로 임금을 산정한다. 실제 사례로 지난 2013년 강원도 철원에서 사다리차를 타고 전신주 공사를 하다 추락해 사망한 인도네시아 노동자는, 본인의 고향이던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의 일용노임인 12만원을 기준으로 민사배상을 받았다.
최저임금을 지급받는 선주민노동자에 비추어보더라도, 이주노동자의 소극적 손해에 대한 민사배상 책임금액은 그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산재사고가 민사배상의 문제 또는 보상금의 문제로 치환되는 현실에서, 사용자 입장에선 보상금을 덜 지급해도 되는 이주노동자를 위험한 노동현장에서 일하게 할 유인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산재사고가 보상금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산재사고가 발생한 원인을 규명하고, 사고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느 누가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더라도 사용자가 같은 무게의 책임을 짊어지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값싼 비용으로 치부되는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김기돈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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