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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국제적 명성 얻은 최초의 미 흑인 화가 헨리 오사와 타나

최근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피의자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인종 차별의 문제는 역사가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끝없이 진행되고 있는 만행이자 좀처럼 없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번에 다룰 화가는 미국에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최초의 흑인 화가 헨리 오사와 타나 (Henry Ossawa Tanner/1859~1937)입니다.

백파이프 수업  The Bagpipe Lesson, 114.3cm x 174.6cm, oil on canvas, 1892~1893
백파이프 수업 The Bagpipe Lesson, 114.3cm x 174.6cm, oil on canvas, 1892~1893ⓒHampton University Museum

그렇지, 그렇게 부는 거야! 아랫배에 힘을 더 주고! 있는 힘껏 백파이프의 가죽 주머니에 숨을 불어 넣고 있는 청년의 뺨이 커질 대로 커졌습니다. 리드를 물고 있는 입과 눈, 그리고 온 힘을 주고 있는 것이 역력해 보이는 두 다리의 모습을 보니 지금 얼마나 힘든 줄 알겠습니다. 그런 청년을 옆에 있는 노인들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표정을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놀리는 듯한 모습도 보이거든요. 시간이 흐르고 노력이 더 해지면 스스로 요령을 터득할 수 있지요. 아마 노인들은 그 순간까지 청년을 이런 식으로 응원할 겁니다. 훗날 청년도 고생이 없는 성취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요. 꽃잎이 눈처럼 떨어진 길 위로 거친 청년의 숨소리와 노인들 웃음소리가 흐르고 있습니다.

타나는 미국의 피츠버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감리교회 목사였는데, 노예해방론자였던 프레데릭 더글라스의 친구이자 후원자였고 행동가였습니다. 어머니는 미국 남부에서 노예로 태어났지만, 북부로 몰래 도망을 친 사람이었습니다. 남북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남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비밀 통로가 있어서 많은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북부로 왔습니다. 목숨을 건 그런 움직임들이 있었기에 노예해방이 선포될 수 있었겠지요. 미술을 독학한 타나는 스무 살이 되던 1879년, 펜실베니아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당시 흑인 학생을 받아들이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입학은 미국 미술 교육기관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입학하기 얼마 전, 그곳의 교수로 부임한 토마스 애킨스 때문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모델을 그리게 하고 시체 해부를 통해서 인체를 이해하게 하는 교육 방법으로 당대에 말도 많았던 애킨스였지만,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고 그의 교육 태도는 타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밴조 수업 The Banjo Lesson, 124.5cm x 90.2cm , oil on canvas, 1893
밴조 수업 The Banjo Lesson, 124.5cm x 90.2cm , oil on canvas, 1893ⓒHampton University Museum

자 이렇게 코드를 잡고 이 줄을 튕기는 거란다.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은 아이는 자신의 키만큼 큰 밴조를 잡고 연주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양쪽에서 들어 온 빛은 할아버지와 손자의 얼굴에 미묘한 그늘을 남겼습니다. 손자의 손을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인 할아버지의 얼굴은 검게, 자신의 손을 바라 보는 소년의 얼굴은 밝게 묘사되었습니다. 고단한 시대가 가고 보다 밝은 시대가 온 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또 다른 사람들은 양쪽에서 들어 오는 빛 속에 앉은 할아버지가 과거의 생활 무대였던 미국과 새롭게 찾은 거주지 프랑스 사이에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던 음악만이 위안이 되는 순간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겠지요. 파리에 머물던 그가 잠깐 미국에 들렀을 때 그린 작품이었고 타나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애킨스의 타나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던 것 같습니다. 최초의 흑인 학생이라는 것 이상의 것이 그에게 있었겠지요. 타나가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애킨스는 타나의 초상화를 제작합니다. 애킨스가 그린 몇 안 되는 제자의 초상화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타나는 자신의 작품을 그려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대로 명성도 얻고 작품도 팔리기는 했지만 타나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인종주의자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당시는 오죽했을까 싶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에게 위안이 되었지만 지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타나에게 고통이었습니다. 잠깐 동안 사진관을 열었지만 그 것도 실패하자 타나는 중대한 결심을 합니다.

감사를 드리는 가난한 사람들   The Thankful Poor, 1894, oil on canvas, 90.2cm x112.4cm
감사를 드리는 가난한 사람들 The Thankful Poor, 1894, oil on canvas, 90.2cm x112.4cmⓒ개인소장

식탁에는 빈 접시 두 개와 컵, 그리고 음식이 담긴 그릇 하나가 전부입니다. 할아버지는 식사 전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소년은 마지못해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식탁에 오른 음식은 당연한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들고 보니 한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군요. 누구의 정성이 담겼느냐가 아니라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1891년, 서른 두 살이 되던 해 타나는 파리로 건너가 줄리앙 아카데미에 입학합니다. 이미 화가로서 확실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였지만, 낯선 땅에서의 인연이 필요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곧 아카데미 줄리앙의 교수들의 지도 아래 타나는 파리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인종에 대한 차별이 없었기 때문에 타나는 파리에서 환영을 받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1895년 파리 살롱전에 ‘사자 굴의 다니엘’이라는 작품을 출품을 했고 뒤 이어 ‘라자로의 부활’ 이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게 됩니다. 타나는 파리 화단의 유망주가 되었고 그는 종교화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이후 중동 여행을 후원 받으면서 성경 속에 등장하는 장소를 방문하고 현지인들을 그리면서 이후 제작 되는 종교화를 위한 기반을 닦게 됩니다. 1899년, 마흔이 되던 해 타나는 스웨덴 출신의 미국 오페라 가수인 제시와 결혼합니다. 재능이 뛰어난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서 인종 주의자들은 말이 많았지만 둘은 행복했습니다.

기적적인 어획량 Miraculous Haul of Fishes, 1913~1914
기적적인 어획량 Miraculous Haul of Fishes, 1913~1914ⓒNational Academy of Design New York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베드로가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박 되어 있는 배 두 척 가운데에서 베드로의 배에 올라 뭍에 있은 사람에게 설교한 예수께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시지만, 베드로는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 예수님의 말을 따라 그물을 내리고 난 후 엄청난 양의 고기를 건져 올리게 됩니다. 이때 예수께서 아주 멋진 말씀을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1차 대전이 일어나자 타나는 적십자 정보본부 소속으로 전선의 모습을 그림에 담습니다. 흑인 병사들이 전쟁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그림에 담은 것은 드문 일이었지요. 1925년, 아내가 세상을 떠납니다. 그리고 12년 뒤, 타나는 일흔 여덟의 나이로 평화롭게 아내 옆에 묻힙니다.

모래 언덕 위의 일몰, 아틀랜틱  Sand Dunes at Sunset, Atlantic City, c.1885, oil on canvas, 76.7cm x 151cm
모래 언덕 위의 일몰, 아틀랜틱 Sand Dunes at Sunset, Atlantic City, c.1885, oil on canvas, 76.7cm x 151cmⓒWhite House

클린턴 정부 시절, 타나의 작품 한 점이 백악관에 걸립니다. 1885년도 작품으로 추정되는 ‘모래 언덕 위의 일몰, 아틀랜틱’이라는 작품인데, 미국 흑인 화가 작품으로는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이 소식을 타나가 들었다면 한마디 했을 것 같습니다. 백악관에 내 그림이 걸리기는 했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입맛이 쓰군!

선동기 미술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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