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홍천엄마의 그림일기] 마을에서 만난 그녀들의 회의방법

여자 넷이 회의를 하려고 모였다. 요즘 홍천 화동리에서 마을 여성들이 함께 창업을 하고 사업계획서를 쓰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리 네 명은 이렇게 저렇게 교집합이 있어서 처음 만난 사이라도 금방 서로 이해하고 공감을 했다. 보통 두 시간 정도 사업 계획 회의를 하면 한 시간 정도는 서로 사는 이야기, 집에서, 사람 관계에서 속상했던 일 등을 이야기한다. 사실 나는 사업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싶지만 봇물 터지듯 속내 이야기하는 이 여인들이 좋다. 나도 얼마 전에 고관절에 염증이 나서 오전 내내 통증으로 끙끙 앓다가 오후에 마음 편한 사람을 만나 말을 실컷 했더니 돌아오는 길에는 신기하게도 하나도 안 아픈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대화는 곧 치유라고 굳게 믿고 있다.

“우리 남편은 내가 우는 걸 싫어해요, 재수가 없대요.”
“허걱,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울면 달래줘야지”
“언니 남편도 그러는구나. 우리 남편도 그래요. 신혼 때 무슨 일이 있어서 속상해서 울었는데 보기 싫다고 집을 나가버렸어요. 한참 후에 돌아와서는 다 울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쯧쯧쯧. 못살아. 내 생각엔 남자들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울면 안 된다, 약하면 안 된다 이런 말을 듣고 자라서 그런가?”
“그르게 그르게. 그게 그렇게 교감이 안될까? 이 남자들 진짜 어쩌면 좋아”

세상에서 가장 잘 통하고, 가장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결혼 생활은 왜 이렇게 쉽지가 않은 걸까? 연애할 때는 그가, 그녀가 좋아 헤어지기 싫어서 그녀의 집 앞 놀이터에서 밤늦도록 그네 타며 이야기도 나누고, 한 시간도 넘게 통화하다가 아쉬워하며 겨우 수화기를 내려놓던 우리들이 아니던가.

우리도 그런 시절이
우리도 그런 시절이ⓒ박지선

어떻게 매일 웃고 즐거울 수만 있을까. 우리는 충만하고 고맙고 감미롭고 포근한 느낌 이외에도 걱정, 암담, 뒤숭숭한, 불안한, 난처한, 서글픔, 참담함, 애석한 등 수많은 이름의 느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우리는 자라면서 나에게 드는 느낌이 무엇인지 느낌의 이름을 알아내고 해결하는 과정을 별로 가져본 적도 없는 것 같다. 20대에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통틀어 ‘꿀꿀하다’고 이름을 붙였다. ‘나 기분이 꿀꿀해. 맛있는 거 먹자’ 하면서 말이다.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불편하고 무기력하고 낙담하는 느낌이 들었는지 알지 못하고 충족되지 않은 마음에 콸콸 술을 털어 넣었다. 나도 나랑 살기가 그렇게도 힘들었는데 결혼 생활이 웬말인가. 게다가 각자 뚜렷한 개성을 가진 자주 통제 안 되는 욕구 덩어리들인 아이들을 키우게 되면서 우리 삶은 폭발 지경으로 다다른다.

“남편이랑 큰 아이랑 너무 골이 깊어요. 이제 중 1인데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나를 한번 만나게 해줘 봐. 내가 아들 키우면서 너무 많이 겪었잖아. 아이는 그 문제를 풀 수 없고 아빠가 바뀌어야지. 내가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해줄게”

우리는 아름다운 아기들을 낳아 좋은 엄마,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러느라 최선을 다했는데 그것이 꼭 좋은 방향만은 아니었나 보다. 아이를 잘 가르치려고,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었으니 너는 겪지 말라고,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바로잡지 못할 것 같아 길이길이 기억나도록 호되게 혼을 내고, 감정을 실어 퍼부어 대며 아이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면 더 잘하지 못한 탓에 우리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회의를 빙자한 마음 나누기를 거듭하며 이렇게나 착하고 사랑스럽고 품이 넓은 여인들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더 많이 드러냈으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곳, 나의 감정, 나의 욕구에 좀 더 귀를 기울였으면. 우리는 가슴이 뻥 뚫리도록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눈물이 그렁그렁, 코가 빨개지도록 울어도 재수없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들의 대화법
그녀들의 대화법ⓒ박지선

“잘했어 잘했어 멋져요!”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했어!”,
“고생했어, 정말 힘드셨겠어요”
“그런 점은 나도 배우고 싶어요!”

작은 마을 공간에서 만난 홍천 엄마들은 이렇게 한판 개운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서로 에너지를 충전하며 또 다가올 일 이야기에 설레어하며 나아가고 있다.

박지선 마을활동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