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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일하다 다치면 구급차도 제 돈으로 불러요”

6월 15일,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 중 낙상사고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났다. 3일 전 스태프 1명이 무대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지만, 후속 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을 계속했다. 그러다 결국 출연자가 방송 도중 사고를 당해 팔이 골절된 것이다. 화려한 방송 무대 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지난 주에 만난 한 드라마 스태프는 몇 년 전 기억을 꺼냈다. 업계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라고 했다. 새로운 작품에 합류하게 된 첫 날이었다. 방송계에서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흔치 않다. 그도 특별히 ‘사인하는 과정’ 없이 바로 일에 투입되어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고를 불렀다. 높은 곳에 장비를 설치하고, 뛰어내렸는데 하필 바닥에 웅덩이가 있었다. 한 쪽 발이 끼면서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발을 움직일 수도 없어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갔는데, 응급실 비용도, 구급차 비용도 본인이 부담했다. 이후 수술과 재활 치료 비용은 그의 몫이었던 것은 물론이다.

사고 당일엔 정신이 없어 비용이니 산재니 생각도 못 했다고 한다. 수술 끝나고 수개월 간 재활하는 동안 일을 할 수 없어 경제적 타격이 컸단다. ‘산재가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문의했지만, 드라마 제작사에서 돌아온 것은 ‘첫날이라 계약서에 사인하기도 전에 사고가 났으니, 산재 보상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답변이었다. 주변에서는 ‘안타까운 일이고, 네 사정도 알고, 네 맘도 이해하고 하지만, 다친 사람이 잘못이다’ 하는 반응이었다.

촬영중 스태프 1명과 출연자 1명이 다친 Mnet 프로그램 ‘아이랜드’
촬영중 스태프 1명과 출연자 1명이 다친 Mnet 프로그램 ‘아이랜드’ⓒ사진 = Mnet

고용노동부는 2018년, 2019년 근로감독을 통해 근로계약을 작성하지 않고 일하는 방송스태프도 노동자라고 했다. 일부 팀장급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계약서를 ‘아직’ 쓰지 않았다고 노동자가 아니라든지, 산업재해보상 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틀렸다는 얘기다.

게다가 원래 산재 보상은 노동자의 과실을 따지지 않는다. 산재보험이 생기기 전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보상 책임이 개별 재판으로 결정되던 때와는 다른 논리다. 노동자가 실수를 해서 발생한 사고든, 옆 자리 동료 노동자가 실수를 해서 발생한 사고든 관계 없이 보상한다. 내가 만난 방송 스태프의 경우는 명백한 업무상 사고로, 치료비는 물론 재활 기간 동안 일을 못 한 데 대한 휴업 급여도 받고 맘 편히 재활에 집중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게 산재보험의 취지다.

방송 현장에 이런 경험은 ‘널려’ 있다. 또 다른 드라마 스태프는 후배 얘기를 털어놓았다. 좁은 세트 안에서 이동하다가, 바닥에 놓인 물품을 잘못 밟는 바람에 넘어졌다고 한다. 운 나쁘게도 후배는 골절되어, 수술과 입원이 필요했고 당장 그날부터 작업에서 빠지게 됐단다. 앞선 사고보다 최근의 일이라 달라진 게 있다면, 첫날 병원비는 제작사에서 내줬다는 점 정도? 그 외 어떤 보상도 없었다는 점은 같다. 오랜 기간 일을 못 하면, 치료비나 생활비 부담이 크지만, 관행은 따로 없다. 건마다 다르다. 다만 드라마 제작사가 보상해주지 않는다는 것, 산재신청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것만 공통된다.

방송미디어노동자 산재 신청 프로젝트
방송미디어노동자 산재 신청 프로젝트ⓒ사진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그래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함께 ‘방송미디어노동자 산재 신청 프로젝트’ 를 시작했다. 방송 일을 하다 다쳤는데 산재 신청도 못 해봤던 노동자, 병원비만 받았거나 병원비도 못 받았던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을 지원하고, 이 과정에서 방송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 다시 묻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터뷰에 참여한 두 명의 방송 스태프 모두 이제라도 산재를 신청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업계가 너무 좁아서, 같이 일하는 다른 팀원들에게 해를 끼칠까봐, 당일 병원비조차 주지 않던 제작사에 기대할 게 없어서 굳이 나서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실 노동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산재 신청하세요, 당신에게는 치료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조할 권리 보장도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중요하다.

10년 전만 해도,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은 산재를 신청해도 불승인이 더 많았다. 늘 하던 ‘밥짓는 일’ 하고 돈 벌지 않느냐, 방학 때는 쉬지 않느냐, 중년 여성은 누구나 어딘가 아프다는 논리를 들며 급식 노동자들의 노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인색했다. 그래도 노동자들은 지치지 않고 자신들의 노동 과정을 증언하고, 노동강도와 근골격계 부담을 조사하고,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업무는 대표적인 근골격계 부담작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자들이 서로 모여 조직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그래서 기다린다. 방송 일하다 다치거나 병이 났는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 했던 방송노동자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이런 움직임이 방송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조직되는 것으로 이어지기를. 조직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구체적인 활동으로 엮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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