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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의 삶과 문학] ‘아이는 아직 목숨이 붙어 있었다.’
소설가 이태준
소설가 이태준ⓒ기타

“살면서 그런 가난은 처음이었어, 죽을 힘으로 버텼어.”

누군가에게 고백하듯 들려준 이야기였는지, 혼잣말이었는지, 단지 생각이었을 뿐인지, 언젠가 그런 말을(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살면서 처음 겪었던 최악의 가난이었을까.

아이들의 아빠가 오랫동안 다니던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든 뒤였다. 두 아이는 어렸고, 아이들의 아빠는 노조를 만든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동료들과 함께 해고를 당했다. 과정에서 불가피한 충돌이 있었지만 적법한 조합 활동조차 고소고발을 당하며 소송과 복직 싸움으로 3년을 보냈다. 부당했기 때문에 그가 싸우는 동안, 나는 전부터 해온 과외수업으로 두 아이와 살아갔다. ‘요즘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사람들이 믿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어떻게 '그 지경이' 될 수 있는지 상상하지 못한 삶이었다.

쟁의활동과 해고에 대한 소송에서 조합 측이 모두 승소했지만 사측의 항소로 대법원 판결을 앞둔, 그러니까 3년이 지났을 때, 우리는 결국 포기했다. 우리에게는 부모에게 물려받아 매달 갚아야 할 빚이 있었고, 어린 두 아이를 키워야 했다. 한겨울에 가스가 끊어진 집에서 드라이어 바람으로 아이들의 몸을 녹여주는 것도, 주말마다 책을 조금씩 팔아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사는 것도, 무엇보다 얼어붙은 집에 두 아이를 두고 수업을 하러 갔을 때, 그 따뜻한 집에서 혼자만 몇 시간을 있어야 하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머리카락이라도 팔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것도 팔고 싶었고, 더 많은 노동을 하지 못하는 것에 끝없는 죄책감을 느꼈지만 거기까지였다.

더는 삶을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복직도 노동조합도 포기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에게는 그때보다 더 한 빈곤의 시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직 내게 아이가 없었을 때. 내 아이들과 함께 겪은 것이었기에 그때의 가난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고통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그 시기 아이들에게 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막막한 빈곤 속에 아이들만 남겨졌더다면.

<밤길>은 작가 이태준(1904~미상)이 1940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쓰고 발표한 소설로, 품을 팔아 살아가는 하층민 황서방과 그의 가족이 겪는 비극과 비애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의 셋방에 아내와 어린 두 딸, 갓 백일이 지난 아들을 두고 돈을 모으기 위해 인천 월미도로 가서 모군꾼으로 품삯을 받고 집짓는 일을 하던 황서방은 연일 계속되는 장마로 모아둔 돈마저 까먹으며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돈 십 원이나 마련되면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군밤 장사라도 해 볼 요량으로. 하지만 황서방의 처는 아이들을 버려두고 집을 나가 무소식이었고, 비 내리는 밤, 그의 어린 두 딸과 젖먹이 아들이 셋방의 주인인 '양복쟁이'의 손에 이끌려 황서방을 찾아온다. 에미 젖을 먹지 못한 아기는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며 숨이 꺼져가고 있었다.

‘아이는 아직 목숨이 붙어 있었다.’

황서방은 주인집에 함께 얹혀 사는 동료 권서방과 ‘그 밤을 넘기지 못할’ 그러나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아기를 안고 묻을 곳을 찾아 비오는 밤길을 걷는다. 끊어질 듯 목숨을 놓지 못하는 젖먹이 아들을 권서방이 삽으로 파낸 땅 속 물구덩이에 내려놓고 들여다보니 그때서야 ‘틀림없이 죽은 것’ 같았다.

“내 이년을 그예 찾아 한 구뎅이에 처박구 말 테여.”
“황서방 진정해요.”
“놓으래두……”
“아, 딸년들은 또 어떻게 되라구?”
황서방은 그만 길 가운데 철벅 주저앉아 버린다.
-<밤길>

가장이 무너지고 가정이 파괴되는 빈곤과 질병과 모든 사회적 불안은 힘없고 약한 존재들을 먼저 무너뜨린다. 우리들은, 이 사회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겪는 불행에 가장 민감한 '잠수함 속의 토끼들'이 아니었나. 그들은 우리의 운명과 함께 하고, 온전히 우리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짧은 소설 <밤길>이 유난히 섬뜩한 슬픔을 주는 이유는 한 가정의(혹은 사회의) 몰락을 아직 세상을 살아보지도 못한 젖먹이 아기가 가장 앞서 받아내야 했기 때문이리라.

그때, 내 아이들만 남겨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태준

호는 ‘상허’, 1933년 박태원 이효석 등과 구인회를 결성해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대표작으로 <달밤> <해방전후> 등이 있고, 문장론에 관한 저서 <문장강화>가 있다. 해방 후 1946년에 월북하였다.

소설가 이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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