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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가장 스타일리쉬한 크로스오버 수궁가

베이스 기타 연주로 시작한다. 이날치의 [수궁가] 음반은 베이스 기타가 튕기는 펑키하고 그루브한 리듬에서 출발한다. 고수는 없다. 소리북도 없다. 대신 이철희의 드럼이 있다. 장영규와 정중엽이 연주하는 두 대의 베이스 기타가 있다. 두 뮤지션은 키보드 연주까지 맡았다. 베이스 기타 소리에서 음악을 시작하고, 베이스 기타를 두 명이나 편성했다는 사실은 이 음반 어디에도 국악기가 없다는 사실만큼 의미심장하다. 이날치는 악조와 장단이 끌고 가는 판소리를 다시 노래하면서 화성보다 장단에 집중하려는 의지를 일찌감치 내비친다.

판소리 ‘수궁가’는 한국인들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이야기다. 이날치는 그 판소리 수궁가 가운데 11소절을 뽑았다. 음반에 담은 11곡은 수궁가의 순서를 따라가지 않는다. 다 아는 이야기를 모두 전달하려 애쓰지 않는다. 이야기 순서는 섞이고, 판소리 사설은 자주 줄어들거나 반복된다.

특히 흥미로운 화법은 후렴구를 넣었다는 점이다. ‘범 내려온다’에서는 “범 내려온다/범이 내려온다”는 후렴구를 반복하고,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에선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라고 수차례 노래한다. ‘신의 고향’도 “신의 고향 세상이요. 신의 고향 세상이라”를 후렴으로 만들었다. ‘호랑이 뒷다리’에서는 “나 나나나”를 훅처럼 활용하고,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에서도 제목이 된 노랫말을 계속 부른다. ‘약일레라’도 마찬가지이다. 사설을 편집하고 후렴을 더한 노래는 지금의 노래처럼 흥얼거리고 싶어진다.

7인조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
7인조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사진 = 이날치

이날치가 수궁가를 오늘로 데려오는 방식은 그뿐만이 아니다. 네 소리꾼 - 권송희, 신유진, 안이호, 이나래는 판소리를 완창하는 소리꾼의 발성보다 무게를 덜어낸다. 묵직하고 질박한 대신 날렵하고 경쾌해진 발성은 수궁가의 해학과 능청을 배가시킨다. 동시에 수궁가에 쌓인 전통의 고색창연함을 털어낸다.

또 네 명의 소리꾼들은 노래를 부를 때 자주 역할을 나누어 등장한다. 이들은 단순하게 주고 받는 방식만 사용하지 않고, 보컬을 겹치거나 뒷받침하고 치고 빠지면서 소리의 드라마를 입체적으로 연출한다. 남/녀의 성별과 무관하게 역할을 설정하고, 독창과 합창을 불규칙하게 편성했다. 아울러 후렴을 반복하는 방식은 고수 한 사람과 소리꾼 한 사람만 등장하는 전통 판소리에 비해 재미있다. 한자어가 많고 지금 쓰는 말투가 아닌 판소리 사설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쓰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이야기에 더 빠져들 수 있다.

이날치의 연주자 세 명은 엇모리, 자진모리, 중중모리 등의 장단으로 노래했던 원곡에 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 연주를 얹어 틉틉하고 복고적인 사운드의 세계로 이동시킨다. 신스 팝과 뉴웨이브의 방법론으로 매만진 곡들은 2020년 신스 팝과 뉴웨이브, 일렉트로닉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낡고 해묵은 소리의 쾌감으로 수궁가의 전통성을 복원한다.

이날치 앨범 '수궁가 ' 커버 이미지
이날치 앨범 '수궁가 ' 커버 이미지ⓒ사진 = 이날치

이날치는 전통음악 원본을 똑같이 복제하거나 유사하게 재현하지 않는다. 지금 쓴 멜로디를 얹어 해사하게 성형하지 않는다. 다만 원곡의 전통 장단과 유사한 맥락의 리듬을 지금의 악기로 연주해 음악의 틀을 바꾼다. 리듬이 달라지고, 리듬을 만드는 사운드가 달라지면서 다른 노래가 탄생한다. 외형적인 변화를 자연스럽게 하는 힘은 리듬의 찰기와 매력에서 나온다. 가령 ‘범 내려온다’에서 두 베이스 기타가 연주하는 그루브는 잘 뽑은 리프처럼 곡 전체를 끌고 간다.

모든 소리꾼이 항상 함께 등장하지 않듯, 모든 악기들이 늘 동시에 연주하지는 않는다. ‘범 내려온다’의 간주 부분에 등장하는 키보드 연주는 뿅뿅 거리는 소리와 드라마틱한 전개를 더해 전통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노래로 마감한다. 이 같은 방식은 얼마나 많은 악기를 동원하거나 얼마나 대중적인 멜로디와 사운드를 만들어내는지가 전통음악의 리메이크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원곡에 담은 감정과 에너지를 온전히 포착하는 일, 그리고 그 힘을 지금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리메이크의 관건이다. 그런데 리메이크에서는 보편성만큼 특수성이 완성도를 좌우한다. 많은 사람들이 교감할 수 있게 하면서, 다른 음악에서 생성하지 않았던 사운드의 새로움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리메이크이다. 이날치가 [수궁가]에서 해낸 일이다.

‘좌우나졸’에서 이날치는 베이스 기타와 드럼 연주로 원곡의 자진모리 장단을 펑키하게 다시 썼을 뿐 아니라 키보드 연주로 끈적하게 감싼다. 원곡의 질박한 흥과 긴장감은 연주와 노래의 협연으로 충만하게 살아난다. 그루브하고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내뿜는 ‘어류도감’에서도 사운드는 두터워 신명뿐인 원곡보다 더 많은 메타포를 안겨준다. ‘약성가’는 우조였던 원곡의 악조를 베이스 기타의 저음과 나른한 키보드 연주의 몽롱한 사운드로 재해석했다. 이 곡 역시 자진모리 장단을 따라가는 원곡보다 풍부한 현재의 밴드 음악이 되었다.

한편 계면조의 정서를 몽환적으로 탈바꿈시킨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는 세련되고 깔끔하다. 원곡의 기운을 전복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감각을 불어넣는 연주는 소리꾼들의 노래가 다르게 들리게 하는 원동력이다. 고풍스럽고 끈끈한 사운드로 치장한 ‘신의 고향’, 코믹하고 유쾌한 한 판 놀이로 이어가는 ‘호랑이 뒷다리’에서도 예스러움과 새로움의 균형이 팽팽하다.

사이키델릭함과 펑키함을 연결해 청산유수 같은 별주부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일개 한퇴’는 은근하게 버라이어티하다. 중중모리 장단을 더 리드미컬하게 끌어올린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는 후렴의 중독성과 쩍쩍 붙는 리듬이 농염하다. 게다가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재현하는 소리꾼들의 호연은 능청과 충성을 대변하는 두 주인공의 갈등을 흥미진진하게 되살린다. 토끼의 간교하고 능청스러운 아니리를 현란한 사운드로 재구성한 ‘의사줌치’도 판소리의 고유한 재미를 잃지 않는다. 엇모리의 신명을 이어가는 ‘약일레라’는 다시 펑키한 사운드로 음반을 마무리한다.

이날치는 돌연한 위기와 재치 있는 극복이라는 수궁가의 맛을 이날치만의 소리로 다시 뽑아냈다. 원본의 메시지를 현재의 관점으로 전복시키지 않았지만, 극과 소리의 재미를 2020년의 음악으로 번안해낸 감각은 직관적으로 마음을 움직일 만큼 스타일리쉬하다. 바로 이 그루브하고 스타일리쉬한 감각이 이날치의 음악에 현재의 젊음이 반응하는 이유일 것이다. 모처럼 등장한 힙한 크로스오버다. 한국의 크로스오버 음악은 이보다 힙해질 수 있을까.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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