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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20년 4월이 음악이 되다

예술작품 속 자아나 주인공이 반드시 예술가 자신은 아니다. 예술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술작품은 자주 작가의 상상이다. 예술가가 창조한 또 다른 세계이다. 그러나 이따금 작가와 작품은 한없이 가까워 분리할 수 없다. 너무 큰 감정의 동요를 만났을 때, 예술가는 예술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다. 자신을 감옥처럼 가둔 사건을 창살처럼 부여잡고 끙끙 앓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고통과 고민을 작품으로 옮기며 비로소 탈옥한다.

고통이 크고 고민이 깊어야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작품의 길과 삶의 길이 항상 일치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길이 만날 때, 우리는 각자의 삶을 작품에 비춰볼 수 있다. 경험한 일이든, 경험하지 못한 일이든 작품에 삶을 비춰보며 우리는 비로소 거리를 확보한다. 너무 가까워 제대로 볼 수 없고, 너무 멀어 만날 수 없었던 일들을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 작품은 내용과 형식만으로 말하지 않는다. 작품과 작가와 현실 사이의 거리로도 말한다.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사진 출처 = www.bradmehldau.com

재즈 피아니스트 브래드 멜다우(Brad Mehldau)의 신작 [Suite:April 2020]은 뮤지션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드문 기록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네덜란드에 머물러야 했던 시간의 기록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브래드 멜다우는 이 음반에 수록한 15곡 대부분을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게 구성했다. 잠에서 깨고, 밖으로 나가고, 거리를 두고, 멈춰서고, 듣는다. 그리고 이 모든 일 이전을 기억한다. 불확실성, 하루의 흐름, 갈망, 기다림, 부엌에서, 가족 하모니, 자장가 등으로 이어지는 곡들에 대한 모든 설명은 ‘2020년 4월’이라는 음반 제목이 대신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도 가까웠던 세계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완전히 하나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브래드 멜다우의 건반으로 옮겨진 이야기는 코로나19만이 아니다. 조지 플로이드의 억울한 죽음 이후, 세계를 연결한 슬픔과 분노 역시 브래드 멜다우의 2020년 4월이 되었다. 국경과 인종과 민족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계에서 브래드 멜다우는 곡을 쓰고 연주하고 녹음했다.

그렇다고 브래드 멜다우가 왜 이렇게 코로나19가 확산되었는지 묻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어렵고 부당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사실 그 이야기는 지금 누구도 단언할 수 없는 이야기다. 브래드 멜다우는 자신이 보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의 삶과 인종 차별의 비극을 기록할 뿐이다. 예술이 멈추고, 여행이 멈추고, 산업이 멈춘 세계에서 브래드 멜다우는 가장 빠른 음악의 기록으로 현실을 확인시킨다. 그가 기록한 세상이 한없이 넓을 수는 없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세상에서 브래드 멜다우 역시 묶여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지만, 동시에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을 상기시키듯 브래드 멜다우는 혼자 연주한다.

브래드 멜다우의 신보 'Suite:April 2020'
브래드 멜다우의 신보 'Suite:April 2020'ⓒ사진 출처 = www.bradmehldau.com

그런데 쉽게 움직이기 힘든 현실은 역으로 일상적이었던 순간들을 새롭게 명명한다. 이제 잠에서 깨고, 밖으로 나가고, 기억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은 각별해진다. 더 이상 일상은 아무렇지 않게 숨쉬게 해주는 공기처럼 당연하지 않다. 그렇게 간절해지고 특별해진 순간을, 간절하고 특별하게 대하게 된 마음을 브래드 멜다우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옮겼다.

대체로 길지 않은 곡들은 연주의 속도와 온기를 달리하며 제목에 담은 의미를 구현한다. 첫 곡 ‘waking up’이 느린 템포의 띄엄띄엄 이어지는 짧은 연주로 잠 깬 순간의 고요함을 직시한다면, ‘stepping outside’는 졸졸 흐르는 연주로 바깥 세상을 향해 흐르는 발걸음을 촬영하듯 보여준다. 거리를 두는 곡 ‘keeping distance’는 당연하게도 차분하지만 냉랭하지 않다.

이 곡을 비롯한 여러 곡에서 소박하게 표출한 멜로디의 아름다움은 코로나19의 공포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라는 비극 앞에서도 섣불리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공포와 비극을 마주하면서도 반드시 아름다움을 통해 말을 건네는 예술가와 작품의 존재는 인간에 대해 절망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근거다. 특히 ‘remembering before all this’의 멜로디와 ‘uncertainty’ 연주로 빚어낸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고난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향유하는 인간의 능력과 예술가의 소중함을 새삼 확인시킨다.

그렇다고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거라 하지만,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당한 임금이나 일자리, 평등한 권리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밥이 되지 못하고, 집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희망이며 완성이다. 도무지 알 수 없고 불확실한 오늘, 음악의 아름다움은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이고, 끝까지 지향하고 실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웅변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로 감응하게 한다. 이것이 음악이 세상에 응답하는 방법이다.

음악은 드물게 거대한 세상과 사람들의 질문에 스스로 답한다. 하지만 브래드 멜다우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그가 연주하는 ‘yearning’와 ‘waiting’은 지금 많은 이들의 갈망과 기다림에 겹쳐져 파도처럼 이어진다. 느리고 차분한 연주에 배인 갈망과 기다림은 한 뮤지션의 간절함이며, 온 세계의 간절함이다. 그래서 부엌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가족들과 삶의 화음을 만들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일상의 즐거움을 그리는 곡들은 역으로 그 기쁨을 앗아간 질병과 미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반문이 된다. 누군가는 더 이상 이 기쁨을 누릴 수 없는 세상에대해 브래드 멜다우는 음악으로 기록하고 증언하며 질문한다.

이윽고 음악이 끝났을 때, 우리는 질문을 이어받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왜 누군가의 일상은 이리도 쉽게 부서져버렸는지, 그리고 자신을 끌어내리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 멈춰 서서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때다. 좋은 음악은 대화의 시작이며, 연대의 씨앗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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