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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자라는 아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했으면

-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후 여섯 시 정각, 퇴근 인사로 사무실의 적막을 깨고 가장 먼저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회사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실 바깥 공기를 맡는 것으로도 몹시 상쾌한데, 숨어있다가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의 사랑스러움에 기분이 날아갈 듯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그림책(곰팡이 인간이 주인공으로 나옴)을 어린이집 친구들과 같이 읽고 싶어 어린이집에 기증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이를 힘껏 안아주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내게 맡기고 일을 하러 갔습니다. 환한 저녁, 우리 둘은 작은 공원에서 소란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의 퇴근 행렬을 배경으로 우리 둘은 갖가지 놀이를 했습니다. 개미와 아기 새 관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붉은 보도블록만 밟고 달리기, 가위바위보 하나 빼기, 체육 기구 하나씩 해보기, 제자리 멀리뛰기 등 할 것이 많았습니다. 간간이 퀴즈 놀이도 하면서요. 공원 풀숲에 개똥이 보이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 이거 누구 똥이게?
- 새똥.

이런 식입니다. 나는 아이보다 바빴습니다. 아이의 귀엽고 즐거운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다 남겨야 했으니까요.

(다친 아기 새를 손으로 집으려 하며)  새 키우고 싶었는데 잘 됐다. 아빠, 나 얘 데려가서 가서 키울래!
(다친 아기 새를 손으로 집으려 하며) 새 키우고 싶었는데 잘 됐다. 아빠, 나 얘 데려가서 가서 키울래!ⓒ사진 = 오창열

아이가 사진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한 장 한 장 자신의 모습을 보며 좋아합니다. 직접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해 스마트폰을 건네줬습니다. 평소 아이의 스마트 기기 사용에 대해서는 엄격한 편입니다. 간혹 식당에서 만화영화를 보여줘야 할 상황에서도 틀어주기만 할 뿐, 만지지는 못하게 할 정도입니다. 스마트폰에 의존하지 않고 무료함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잘 노는 힘’이 생길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애초부터 스마트폰은 자신이 만질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다행히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마찰은 없습니다.

어째서 나는 사진 촬영에 대해서만은 예외적으로 스마트폰을 허용하게 되었을까요.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 삶 속으로 흘러 들어가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가 ‘사진’입니다.

돌이켜보면, 사는 동안 기록하지 않아 그대로 잊어버린 기억이 많았습니다. 즐거운 순간을 두 눈에 담고 꼭 기억하려 해도, 사진으로 남기지 않은 장면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찍혀있는 한 두 장의 옛날 사진을 볼 때, 사진 속 순간을 번쩍 떠오르며 아쉬웠습니다. 더 찍어놓을 걸 하고요. 젊은 날의 어머니를 더 많이 찍어둘 걸, 떠나온 고향 동네를 더 많이 찍을 걸. 그렇게 쌓인 아쉬움이 많습니다.

아쉬움을 동력으로 찍기 시작한 사진이 어느새 즐거운 습관이 되었습니다. 사진 찍는 자체가 재미있는 데다,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일상에서 감사함과 소중함을 발견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그날의 사진을 볼 때 하루를 의미 있게 매듭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찍지만, 어쩐지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도 나처럼 사진을 찍으며 자신만의 재미를 찾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차찰찰찰찰찰찰찰찰찰찰칵!)

아이는 촬영 버튼에서 작은 손가락을 떼지 못하고 수십장을 연사로 찍었습니다. 확인해보니 자신의 배를 잔뜩 찍어놨습니다. 너무 웃기고 귀엽습니다.

- 버튼은 한 번 눌렀다 바로 떼는 거야.
- 알겠어.

(차찰찰찰찰찰칵)

이번에는 모든 사진이 손가락에 가려져 있습니다. 아직은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하기에는 손이 작은 것 같습니다. 아이 손가락을 렌즈 바깥으로 옮겨주며 말했습니다.

-이건 렌즈라고 해. 렌즈는 카메라의 눈이야. 카메라가 뭘 보고 있는지는 이 화면을 보면 알 수 있어. 수현이가 찍고 싶은 거랑 카메라가 보고 있는 거랑 같다고 생각될 때 버튼을 누르면 돼. 손으로 눈을 가리면 안 보이는 것처럼 렌즈를 가리면 화면이 안 보여.

수현이가 직접 찍은 손가락 사진
수현이가 직접 찍은 손가락 사진ⓒ사진 = 오창열

아이는 제 설명을 듣더니 장난기가 발동해서는, 완전히 렌즈를 가린 채로 사진을 찍고는 자랑스럽게 보여줍니다.

- 와- 아빠, 색깔 정말 예쁘지 않아?
- 예쁘긴 한데... 렌즈를 가리면 이렇게 아무것도 안 찍히는데?
- 난 이렇게 찍는 게 좋아. (차찰찰찰칵)

아이 말처럼 예쁜 붉은 색이 찍혀있습니다. 아이의 집게손가락 끝을 통과한 빛이라는 생각이 드니 특별하게 보였습니다. 렌즈를 막고 찍는 것이 좋다는 아이를 따라 해봤습니다. 덕분에 렌즈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빨간 사진이, 살살 누르면 살구색 사진이 나온다는 걸 오늘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 역시 자신만의 취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계획이 떠올랐습니다. 거실 한쪽 벽에 커튼 와이어를 설치해 아이가 찍은 사진들을 멋있게 걸어두는 것입니다. 사진 전시 그 자체로도 좋을 것이고, 아이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빠 역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 자신의 사진 작품이 한쪽 공간을 채워갈수록, 아빠로부터 공감과 존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요? 사진을 본 손님들의 반응을 보며 흡족하거나 뿌듯해하지 않을까요?

손가락이 나오지 않는 사진 찍기 성공!
손가락이 나오지 않는 사진 찍기 성공!ⓒ사진 = 오창열

집에 돌아와 이런저런 기대감에 커튼 와이어를 인터넷 쇼핑 장바구니에 넣으며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 여기부터 여기까지 줄을 매달아서 네가 찍은 사진을 걸려고 해. 어때?
- 싫은데?
- 싫다고? 이유가 뭐야?
- (양손으로 엑스 표시를 그리며) 싫으니까 싫은 거지!

잉? 사진 전시를 원치 않는다고? 다시 물어도 아이의 대답은 똑같습니다.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맙소사, 혹시 여섯 살은 다 이런가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도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 가지 조건과 짝을 이뤄야 온전할 것 같습니다. 아이 생각을 존중할 것. 아이는 사진 찍기만 좋아하지, 전시는 원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된 하루입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활동은 무수히 많겠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 겹쳐서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아무튼, 아이의 삶에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하기를!

오창열 정신건강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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