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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세상읽기]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다, 러시아의 ‘바실리 베레시챠긴’

해마다 6월 하순이면 여전히 아물지 않은 우리의 상처 때문에 모래를 씹은 듯이 입안이 서걱거립니다. 수백만 명이 죽거나 다쳤던 전쟁의 흔적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담은 그림들이 많지만,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화가로 활동하다가 실제로 전쟁에 참가했던 러시아의 바실리 베레시챠긴(Vasily Vasilievich Vereshchagin, 1842~1904)의 작품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비정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어 우리의 가슴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전쟁의 화신 The Apotheosis of War 1871 onc 127x197
전쟁의 화신 The Apotheosis of War 1871 onc 127x197ⓒTretyakov Gallery

소름 끼치는 장면입니다. 쌓아 놓은 해골들이 작은 언덕을 이루었습니다. 까마귀들은 하늘에서, 해골 위에서 햇빛 아래 탈색되고 부서지는 해골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마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요? 그리고 몸은 다 어디에 가고 머리만 모여 있는 것일까요? 전쟁이 끝나고 미처 치우지 못한 주검들은 푸른 하늘 밑에서 풍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너무 맑은 날이어서, 너무 밝은 날이서 더 처참합니다. 전쟁은 살아있는 영(靈)을 파멸시키기도 하지만 죽은 혼(魂)도 비참하게 만드는 모양입니다.

전쟁의 야만성과
병사들의 죽음,
모든 전쟁의 파국적인 결과를
작품에 담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베레시챠긴은 당시 지주나 귀족들의 자제가 걸어갔던 길을 따라 사관학교에 입학하는데,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베레시챠긴은 재학 시 가장 뛰어난 학생이었고 때문에 앞으로 잘 나가는 장교가 될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운명은 순간에 길을 바꾸기도 합니다. 군사 미술에 관심을 보였던 그는 사관학교를 다니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미술아카데미 야간반에서 그림을 배웁니다. 열여덟 살 되던 해 베레시챠긴은 우등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상트페테르부르크미술아카데미 종일반에 입학합니다.

시프카 고개의 전쟁터   Battlefield at the Shipka Pass 1878 oil on canvas 147cm x 299cm
시프카 고개의 전쟁터 Battlefield at the Shipka Pass 1878 oil on canvas 147cm x 299cmⓒTretyakov Gallery

불가리아에 있는 시프카 고개는 발칸산맥을 넘는 고개로 러시아와 터키 전쟁 당시 격전지였습니다. 전투 중에 죽은 병사들의 모습이 처참합니다. 푸른색 옷과 밝은색 옷을 입은 주검들의 얼굴이 하늘을 향하고 있거나 눈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죽은 병사들은 살아서는 적이었지만 죽고 난 뒤의 모습은 똑같습니다. 동료들의 시신 앞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은 환성을 지르고 있지만, 눈 쌓인 고개에서 젊은 나이를 마감한 혼들은 아득한 산 너머를 향하고 있겠지요. 혼들이 넘어가는 산을 올려 보았습니다. 산 전체가 흘러내릴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안타까움이 극에 달하면 산도 흘러내릴 수 있을까요?

1867년, 스물다섯의 베레시챠긴은 투르키스탄에 있는 러시아 군대에 지원합니다. 그리고 사마르칸트 방어전에서 영웅적인 활동으로 그는 러시아 최고의 훈장을 받게 됩니다. 이때 참전했던 내용을 그림으로 제작합니다. 전쟁을 묘사한 베레시챠긴의 작품은 그에게 상당한 명예와 함께 그의 이름이 러시아 상류 사회에 알려지는 기회를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러시아를 떠날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전쟁의 참상과 러시아 병사들의 비극적인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죠. 그의 몇 몇 작품은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2년간 러시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야만성과 병사들의 죽음, 그리고 모든 전쟁의 파국적인 결과에 대해 그는 깊은 인상을 받았고 철학적인 고민이 그의 작품에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망자들을 위한 의식  Service for the Dead 1878~1879 oil on canvas 179cm x 300cm
망자들을 위한 의식 Service for the Dead 1878~1879 oil on canvas 179cm x 300cmⓒTretyakov Gallery

망자를 위해 사제는 향을 피워 흔들고 있습니다. 군인이 되기 전에 각자의 삶이 있었겠지만 세상을 떠나는 순간은 모두 군인이었습니다. 편안한 어딘 가에 앉아서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이 사람들을 전장으로 몰아낸 그 사람들은 이 광경을, 이 느낌을 알 수 있을까요? 하늘은 온통 회색입니다.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내리는 빛은 망자들이 하늘로 오르는 길처럼 보입니다. 전쟁은 인간의 본능일까요? 정말 그렇다면 신께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본능은 필요 없으니까 거두어 달라고 말입니다.

예순 둘에
러일 전쟁의 전장에서
전투함과 함께
생을 마감한 베레시챠킨

처음 전쟁에 참여 한 10년 뒤, 베레시챠긴은 러시아-터키 전쟁에 다시 참여합니다. 전쟁에는 반대했지만, 전쟁의 참상은 꼼꼼하게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지요. 러시아-터키 전쟁을 주제로 한 베레시챠긴의 작품들에는 무능하고 무모한 러시아 장군들이 묘사되었습니다. 결국 러시아 정부와 갈등이 생겼고 알렉산더 2세는 그를 가리켜 ‘인간 쓰레기가 아니면 미친 놈’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시 러시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1890년이 넘어서야 베레시챠긴은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화가가 아니라 군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러일 전쟁 중 그는 러시아 해군 함대의 기함 페테로 파블로프스키호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쏜 어뢰에 의해 이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 앉았습니다. 예순 둘의 나이였습니다. 전쟁을 증오했지만 두 번이나 전쟁에 참여했고, 전투함과 생을 마감한 그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그의 몸속에는 화가의 피가 더 강했을까요? 아니면 군인? 오직 그만이 알겠지요.

선동기 미술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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