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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생각] 모차르트의 희가극 ‘코지 판 투테’
모차르트의 희가극 ‘코지 판 투테’ 로열오페라하우스 공연 장면
모차르트의 희가극 ‘코지 판 투테’ 로열오페라하우스 공연 장면ⓒ스틸컷

1.
어느 선술집에서 젊은 장교 페르난도와 굴리엘모는 그들의 약혼녀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의 정조를 칭송하다가 이를 비웃는 “반백의” 철학자 돈 알폰소와 논쟁을 시작한다. 논쟁이 격해져서 혈투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철학자는 꾀를 내어 내기를 제안한다. 그녀들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당장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두 청년은 즉석에서 판돈을 묻고 내기를 성사시킨다.

철학자는 계략을 세운다. 일단 거짓 동원령을 선포하여 두 장교를 사지로 떠나게 한 뒤, 두 자매가 실의에 빠졌을 때 변장을 하고 나타난 두 장교가 그녀들을 유혹하게 한다는 전략이다. 철학자는 확고한 승리를 위해 두 자매의 하녀 데스피나도 매수해 두었다.

철학자는 열심히 두 청년을 포기시키고 하녀는 열심히 두 자매를 포기시킨다. 낯선(?) 사내들은 자살 소동까지 벌이며 결국 두 자매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두 자매는 크게 뉘우치며 다시 자기 연인과의 사랑을 이어간다.

모차르트의 희가극 ‘코지 판 투테’(1790)는 잘 다듬어진 여섯 명의 등장인물이 인간의 감정과 도덕을 걸고 벌이는 화끈한 내기 한 판을 무대 위에서 재현한다.

2.
‘코지 판 투테’의 대본은 ‘점 하나’의 차이로 상대방을 알아봤다 못 알아봤다 한다는 악명 높은 막장 드라마와 많이 닮아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구성을 복잡 미묘한 인간 감정의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이다. 사실 모차르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언제나 다층적이다. 그런데 이 다층성은 대본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드러난다. 대사 밑에서 흐르는 오케스트라가 그 대사가 직설인지, 가정인지, 농담인지, 진담인지를 드러내면서 인물의 내면과 무대의 상황을 다층적으로 채색한다는 말이다.

‘코지 판 투테’의 한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터키인으로 변장한 두 장교가 갑자기 두 자매에게 사랑을 구하자 두 자매는 이를 강하게 거부한다. 이때 피오르딜리지가 독창을 한다. “바위가 바람과 폭풍에 맞서 움직이지 않듯 언제나 이 마음 확고하다오(Come scoglio...).” 처음에 오케스트라는 군대의 행진곡을 방불케 하는 힘찬 분위기로 시작하여 의지가 불타오르듯 저음에서 고음으로 계속 치솟아 오른다. 하지만 같은 가사가 한 번 더 반복될 때 오케스트라는 갑자기 어두운 색조를 띄고 잠시 불안정한 심장의 고동 소리를 낸 뒤 앞부분과는 대조적으로 고음에서 저음으로 무너져 내린다. 똑같은 가사가 반복되는 동안 오케스트라는 인물의 감정 변화를 관객에게 들려주고 극의 전개상 중대한 변화를 예고한다.

3.
‘코지 판 투테(Così Fan Tutte)’는 종종 여성을 비하한다는 비판 받는다. “여자는 다 그래”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무대에 올라가는 것도 한몫한다. 이런 번역은 실제 극의 내용과 일치하는가? 원제를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이러하다. “그녀들 모두가(tutte) 그렇게(così) 한다(fan[no]).” 여기서 “그렇게”란 정확히 드라마 내부의 어떤 행위를 가리키는가? 그녀들은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한다는 말인가?

“바위가 바람과 폭풍에 맞서 움직이지 않듯 언제나 이 마음 확고하다오(Come scoglio immoto resta...)”라는 가사가 반복되지만, 위에서는 음표들이 힘차게 상승하고 있고 아래에서는 격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악보는 1809년에 출간된 바이트코프 판에서.
“바위가 바람과 폭풍에 맞서 움직이지 않듯 언제나 이 마음 확고하다오(Come scoglio immoto resta...)”라는 가사가 반복되지만, 위에서는 음표들이 힘차게 상승하고 있고 아래에서는 격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악보는 1809년에 출간된 바이트코프 판에서.ⓒ기타

두 자매는 두 장교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새로이 구혼을 받았을 때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했으며, 새로운 사랑에 빠졌을 때 진심을 다해 사랑했고, 옛 사랑이 돌아오자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다시 새로운 사랑을 이어갔다. 두 장교는 자기 애인들의 진심을 믿지 못하고 철학자의 계책에 빠져 자신들의 명예도 모자라 애인들의 것까지 모두 걸었다. 자살 소동 이후 우연히 파트너가 바뀌어 상황이 진행되자 두 장교는 경쟁이라도 하듯 더욱 거세게 구애를 했고 막상 성공하자 그녀들이 자신을 속였다고 괴로워하며 그녀들을 비난한다.

이제 다시 물어보자. 매 순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한번 결정을 내린 이후로는 언제나 진심을 다했던 그녀들을 비난할 것인가? 아니면 서푼짜리 오페라를 위해 애인들을 시험에 빠뜨리고 이후 사태를 바로잡을 기회가 숱하게 있었지만 그저 흘러가는대로 방치한 두 얼간이들을 비난할 것인가?

이렇게 한 쌍의 여자와 한 쌍의 남자를 구분하는 시선은 오케스트라에서 잘 드러난다. 두 장교들의 구애 행각에는 우스꽝스러운, 심지어 이들을 비웃는 듯한 악상이 덧붙는다. 반면에 여인들이 자신의 감정과 세상의 관습을 마주하여 희열이나 고통에 휩싸이는 때에는 모차르트 역시 깊은 공감에 들어간다. 대본에서뿐 아니라 음악에서 볼 때에도 이 극의 주인공은 이성의 간계에 놀아나는 두 남자가 아니라 매번 솔직하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두 여자이다. “그녀들은 모두 그렇게 한다.” 그러나 ‘그남들’은 모두 그렇게 하지 못한다.

4.
18세기는 혁명의 시대였다. ‘코지 판 투테’가 초연된 1790년은 귀족과 평민을 막론하고 모두가 경쟁적으로 더 많은 애인을 가지려 했던 절대왕정의 풍습과 사랑을 결혼에 묶어놓고 순결 혹은 정절을 강요하는 청교도-부르주아의 관습이 혼재하던 시기이다. 이 (극의 부제인) “연인들의 학교(La Scuola degli Amanti)”에서 모차르트는 돈 알폰소를 통해 두 남자의 고정 관념을 흔들어놓고 데스피나를 통해 두 여성의 성적 억압을 해방시킨다. 그 결과 기만과 진실, 내로와 남불의 이분법은 무너지고 지식과 관습을 벗어던진, 오직 순수한 감정만이 무대 위에 남는다. 자유정신의 화신, 혁명가 모차르트는 어쩌면 이 솔직함 위에서 새 시대의 관습과 정치를 꿈꾸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자신의 ‘마술 피리’(1791)로 건너간 것은 아닐까?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광주오페라단의 45회 정기공연 ‘코지 판 투테’ 입장권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광주오페라단의 45회 정기공연 ‘코지 판 투테’ 입장권ⓒ양진호 제공

5.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광주문화예술회관에는 광주오페라단의 45회 정기공연 ‘코지 판 투테’가 막을 올렸다. 나는 첫날 공연장을 찾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철저한 방역 규칙에 따라 극장이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아직 극장에서의 감염 사례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징검징검 마련된 객석은 오히려 공연감상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40인조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서곡을 시작하자 나는 까막귀인 주제에 무슨 흠집이라도 잡겠다는 듯이 다리를 꼬고 앉아 귀를 쫑긋거리며 오케스트라와 무대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 알폰소보다 더 시니컬한 이런 태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풀어지고 말았다. 1막 1장에서 연출된 어느 한 장면 때문이었다. 두 장교는 내기 제안에 응한 뒤 나머지 대사를 소화하고 퇴장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두 배우가 의상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마스크를 꺼내어 쓰고 퇴장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극으로부터 배우와 연출이 튀어나오는 순간이었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 들었고 그제서야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상당수의 현악주자들은 마스크를 쓴 채로, 관악주자 전원은 마스크 없이 감염의 위험을 무릅쓴 채로 연주를 하고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아, 이들도 관객과 함께 감염병 시대의 고통을 나누고 연대하고 있구나! 그걸 관객에게 알리고 싶었구나!’ 그렇게 무장 해제된 나는 막이 내릴 때까지 이들과 함께 그저 울며 웃으며 오직 ‘순수한 감정’을 마주하는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다.

귀갓길 운전을 하다가 잉에보르크 바흐만의 ‘말리나’(남정애 옮김)에서 한 구절이 떠올라 집에 오자마자 뒤적거렸다. “지금 우리가 접어드는 이 순환도로 위를 지나가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으면 좋겠다. 우리는 정체 구간에 들어서서 그곳을 비집고 나아간다. 오른편으로 내가 다녔던 대학이 보인다. 이제는 더 이상 예전 같지도 않고, 위압적이지도 않다. 궁정 극장, 시청 그리고 의회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파묻힌다. 이 음악은 절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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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철학자, 인문학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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