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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환의 역사로 생각하기] 통일을 전제로 한 남북관계, 다른 상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없음

“꼭 통일을 염두에 두고 남북관계를 생각해야 하나요?”

토크 콘서트 중에 30대 초중반 직장인이 조심스럽게 한 질문이었다. 함께 계셨던 선배 역사학자께서는 질문 자체가 ‘반헌법적이라고 규정’하셨다. 맞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는 규정이 명확하게 적시되어 있다. 현실적으로는 휴전선 이남의 부속도서겠지만 언젠가는 한반도 전체가 하나의 나라여야 한다는 헌법의 명령이자 민족의 대숙원이다. ‘방향’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과정’ 또한 그래왔다. 1972년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5차례 극비로 평양을 오가면서 박정희-김일성 간에 체결된 남북공동성명에는 자주적이며, 평화적인 과정을 통한 ‘민족대단결’이 명문화되어 있다. 1991년 노태우 정부 당시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한은 여타의 국가대 국가의 관계가 아닌 ‘특수관계’라고 규정되어 있고 이 후 어떤 정권에서도 ‘통일지향의 남북관계’ 자체를 문제시하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북진통일론이든, 북한붕괴론이든 아니면 햇볕정책이든, 평화번영정책이든 ‘한 민족의 통일’이라는 아젠다는 근본적으로 의심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민족통일을 부르짖던 북한이 1950년 6.25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부총리를 포함해 각료 17명이 희생된 아웅산테러사건도 남북불가침선언이 포함된 72년의 7.4공동성명 이 후였습니다. 그 밖에도 87년의 KAL기 폭파사건 역시 불가침선언에는 분명히 위배되는 행위였습니다.”

1991년 12월 22일 경향신문에 나온 강영훈 대한적십자가 총재의 인터뷰 중 일부이다. 강영훈은 실향민 출신으로 5.16군사쿠데타 당시 육사 교장이었는데 생도들의 군사혁명 지지활동을 반대하다 고초를 겪었다. 이후 미국, 영국 등에서 정치학 등을 공부하였고 노태우정권 초기 국무총리를 역임한 인물인데 ‘온건한 보수주의자’의 전형 정도로 보면 된다. 그는 통일이라는 민족적 대의를 열망하며 동시에 북한의 이중성을 극도로 경계하였다. ‘통일과 반공’이라는 이중성 가운데 ‘점진적 과정’을 통해 평화적 통일로 나아가길 원하지만 북한의 행태에 대해서는 언제나 예민한 안보주의자다. 강영훈의 이런 태도는 현재까지도 정치적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통일은 당장 짧은 기간 안에 독일식으로 흡수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체제를 인정하고 여러 수준의 교류, 통합 과정이 진행되는 장기 공존단계를 거쳐 평화적 통일로 가는 것이 가장 희생을 줄이면서 겨레의 염원을 실현하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994년 6월 30일, 김영삼 정권 당시 [냉전종식 ‘코리안 독트린’ 만들자]라는 특집 기사에서 최장집의 말이다. 당시 통일부장관을 역임한 한완상과의 대화였는데 ‘과거 얘기하면 개선 불가능’, ‘냉전보수세력 반격 경계해야’ 식의 부제가 덧붙여진 글이다. 진보 정치학자의 주장이기도 하지만 소위 개혁진보진영의 오랜 아젠다이기도 하다. 남북의 교류를 강조하고 오랜 기간 공존하는 가운데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통일의 염원을 이루어가자는 주장이다. 여기서 핵심은 ‘상대체제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인데 보수주의자들과 그간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온 부분이다.

보수의 안보논리, 진보의 평화논리
결국은 하나의 대전제가 있었기 때문인데

남한에서 이 두 가지 생각은 정권을 주고받으면 조금씩 변해왔다. 한쪽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만 한다면’이라는 전제조건을 달고 대북강경정책을 실험하기도 했고, 다른 한 편에서는 ‘경제협력 대박론’을 들고 나와 남북교류를 심화시키는 정책을 현실화하기도 했다. 전혀 다른 생각처럼 보이지만 보수주의자들은 ‘상대체제’를 무너뜨리지 못했고, 개혁진보주의자들 역시 자본주의적 우월성에 힘입어 남북교류의 주도권을 놓치려 하지 않았다. 이보다 근본적인 지점, 하나의 민족, 통일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는 점에서는 결국 남한의 두 세력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확신을 공유해왔다.

“남북 통일을 원하는 사람?”

한 해 전 10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통일캠프에서 이런 질문을 해보았다. 놀랍게도 손을 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원하지 않느냐’라고 물어보니 대부분 단숨에 손을 들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 따지고 보면 남북교류를 위한 정치적 노력은 수 십 년째 뻔한 공전뿐이었고 그 사이 시간이 많이 흘렀다. 통일의 대의는커녕 신라가 발해를 느낄 수준으로 이미 내적 상황은 변화했는지도 모른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

올해 1월 1일 북한 조선중앙TV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나흘째 회의가 지난 12월31일에 계속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올해 1월 1일 북한 조선중앙TV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나흘째 회의가 지난 12월31일에 계속 진행됐다고 보도했다.ⓒ뉴시스

지난 수년간 문재인 정부는 ‘북미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파의 입을 막고 핵문제와 남북경제협력이라는 너무나 늘어져버린 문제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코자 하였다. 하지만 무르익지 않은 현실에서 획기적인 성공은 대부분 환상이듯 최근의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방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듯하다.

따져보자. 독일 통일? 독일이 언제 가혹한 전쟁은커녕 이토록 완벽한 단절을 경험했던 적이 있을까? 베트남? 예멘? 비교조차 어려운 통일 모델이다. 지극히 역사적인 기준으로 볼 때 현재의 남북한 관계는 ‘전례가 없는’, ‘예외적인’, 조금 순화시킨다면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다. 안 해 본 것이 있다면 자율적이며 독자적이고 지속적인 민간 교류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 것은 핵무기와 폐쇄된 개성공단의 추억만이 아닐 것이다.

차라리 한 민족과 통일이라는 거창한 담론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그저 두 나라가 정상적으로 평화롭게 잘살기 위한 교류와 협력으로 방향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은 어떨까. 펄쩍 뛸 소리인가? 아니면 새로운 이야기가 내외에서 흘러나와야 할 만큼 절박한 때일까.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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