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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언젠가 한없이 그립고 간절했던 마음

싱어송라이터 신해경이 3년만에 새 음반을 발표했다. 신해경의 첫 번째 정규 음반이기도 한 음반의 제목은 [속꿈, 속꿈]. 사실 속꿈이라는 말은 없다. 아마도 꿈 중에서 유독 깊은 꿈이라는 의미이거나, 꿈속이라는 단어를 거꾸로 쓴 것이지 않을까. 9곡의 노래를 담은 음반에는 제목부터 꿈을 담은 노래가 두 곡 있고(‘접몽’, ‘그대의 꿈결’), 노랫말에도 꿈을 지칭하는 묘사가 적지 않다.

그런데 신해경의 [속꿈, 속꿈] 음반은 백일몽이나 악몽, 혹은 예지몽 같은 꿈을 기록하지 않았다. 신해경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접목해 무의식을 분석하지 않았고, 사이키델릭한 세계를 재현하는데 몰두하지 않았다. 첫 곡 ‘회상’에서 “아무것도 믿을 수 없고/어떤 말도 바꿀 수 없는 우린/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이라고 노래할 때, 신해경은 이 음반이 이별에 대한 기록임을 넌지시 내비친다. 이 음반은 이별 후의 기록이다. 만남의 사연이 다른 것처럼 이별 후를 살아가는 이야기도 똑같지 않다. 신해경의 노래에서는 이별 후의 날들이 그리움과 슬픔으로 채워진다. 노래 속 주인공에게 꿈은 헤어진 사람을 초대하고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다.

신해경의 첫 번째 정규 음반  앨범 표지
신해경의 첫 번째 정규 음반 앨범 표지ⓒ앨범 디자인 : 하혜리

동시에 꿈은 헤어진 후의 모든 시간이기도 하다. 그이는 이별 이후의 현실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함께 했던 과거와 함께 하지 못하는 오늘이 수시로 섞인다. 게다가 과거의 기억은 갈수록 희미해진다. 이러한 상황은 꿈과 꿈 아닌 순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그 모호한 의식은 꿈에 다름 아니다. 신해경은 꿈과 꿈 아닌 순간을 엄밀하게 나누지 않음으로써 이별 후를 사는 이의 내면과 이별 자체에 근접한다.

깨어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꿈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이의 의식을 명료한 사운드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신해경은 자신의 보컬부터 몽롱하고 흐리게 물들인다. 진성 대신 가성을 사용하는 발성과 리버브를 잔뜩 불어넣은 사운드 메이킹, 보컬을 겹치는 코러스는 꿈의 세계를 직조하는데 필수적이다. 일렉트릭 기타와 신시사이저도 보컬의 앞과 뒤에서 나른하거나 강렬한 사운드를 오가며 연주해 꿈의 세계로 함께 출렁이며 나아간다. 음악의 템포는 자주 느리고, 가끔씩만 들뜬다.

전작에서 이어지는 첫 번째 곡 ‘회상’을 시작하는 소리는 풀벌레 소리이다. 저녁이거나 새벽임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는 노래를 비롯한 모든 음악의 시간이 들뜨기보다 가라앉을 것임을 예고한다. 추억과 아련함, 아득함을 노래하는 노래 ‘그 후’ 역시 전작의 흐름을 이으며 ‘회상’ 이후의 시간을 노래한다. 하지만 신해경의 노래가 슬로우 템포로 고요하게만 이어지지는 않는다. 신해경은 자신이 연주한 일렉트릭 기타를 영롱하게 터트리며 추억이 되어버린 날들을 돌아본다. 레퍼런스가 된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연주는 노랫말과 보컬, 멜로디를 이으며 여전히 아찔한 마음의 생채기를 드러낸다.

반면 뮤지션 어떤날을 연상시키는 중의적인 노랫말을 제목으로 삼은 ‘어떤날’은 비트를 앞세우고 기타를 내리친다. 보컬의 차이는 없지만, 좀 더 날이 선 연주는 희망과 기대로 오락가락하는 마음을 대변한다. -테요로 끝나는 가사의 종결어미도 과거를 바라보는 노랫말의 정서와 일치한다. 한편 타이틀곡인 ‘그대는 총천연색’은 깊어진 밤, 잊음으로써 만나려는 역설적인 욕망을 드라마틱한 구성과 연주로 표출한다. 혼곤함에서 강렬함으로 나아가는 노래의 흐름은 곡의 중반 어룽어룽 퍼지는 기타 연주로 만개한다. 감성을 충실하게 대변하는 멜로디의 힘을 부풀려 온 사방에 가득 차도록 터트리는 힘은 신해경 음악의 매혹을 대표한다. 이 곡은 신해경의 절창이다.

‘독백’ 역시 멜랑콜리한 정서를 숨기지 않고 이어간다. 보컬을 몽실몽실 띄우고 기타는 뒤따른다. 반면 연주곡 ‘접몽’은 가장 록킹한 사운드로 꿈의 세계를 유영한다. 벌레소리에서 새소리로 바뀐 사운드는 시간의 변화를 가리킨다. ‘그대는 총천연색’과 함께 음반을 대표하는 곡 ‘그대의 꿈결’은 슬로우 템포로 신해경의 음악 미학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준다. 헤어짐을 인정하기 때문에 더 그리운 마음을 신해경은 이 곡에서도 일렉트릭 기타와 몽환적인 보컬의 공간감으로 재현한다. 숨을 죽이다 간절함을 토해내는 보컬 아래에서 차근차근 영롱하게 빛나는 연주는 꿈의 감각으로 녹아든다. 현실이거나 현실의 일부인 꿈의 실체에 육박하는 모든 소리는 꿈과 그리움이라는 언어로는 불러일으킬 수 없는 시공간의 감각과 감정의 파장을 음악으로 온전히 그려낸다. 그 결과 신해경의 노래는 사랑이 끝난 후에도 끝낼 수 없는 간절한 마음에 담은 진심의 가치를 생생하게 살려낸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빨리 잊거나 단념하는 일이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금세 그렇게 올바르거나 성숙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예술은 올바름과 최선을 보여주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이든 취하게 되는 반응과 태도를 깊게 들여다보고 충실하게 대변함으로써 그 안에 담겨 있는 마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성찰하게 하는 일. 그럼으로써 나는 어떠했고, 너는 어떠했는지 이해하게 하는 일. 인간을 조금이라도 더 납득하고 공감하게 하는 일. 그것이 예술의 역할이다. 불행한 사랑으로 고통받다 꽃이 된 크로코스의 신화 앞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이 인간이다.

싱어송라이터 신해경
싱어송라이터 신해경ⓒ하혜리

소박한 연주에 맞춰 음반의 후반부 하강곡선을 그리는 ‘크로커스’는 잔잔한 소품이고, 담담하게 현실을 응시하는 ‘꽃 피는 계절처럼’은 음반의 마지막 곡으로 정확하게 마침표를 찍는다. 먼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는 마음은 수많은 마음들을 다 버리지 않고 인정하며 수용한다. 이것이 속꿈을 꾸고 꿈과 현실을 나누지 못한 채 살았던 시간의 결과일까. 자신의 바람과 욕망을 속이지 않고 숨기지 않은 나르시시트 같은 누군가는 찬란한 음악으로 꿈을 꽃피웠다. 우리는 언젠가 그렇게 한없이 그리워했고 누군가는 나의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이 아찔한 음악에 취해 오래 잊었던 그리움으로 돌아간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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