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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이 나이에 그림책?’ 막상 보면 더 좋다
없음

어린이가 긴 글을 보면 ‘똘똘하다’ 추켜올리는데, 어른이 그림책을 읽으면 ‘뒤떨어진다’고 보는 편견이 있다.

대부분의 서점도 그림책을 어른의 읽을거리에서 멀리 배치한다. 그림책을 독립된 장르로 구축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일렁였지만 그림책은 여전히 아동의 것으로만 분류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그림책에 ‘다시 빠졌다’고 말하는 어른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책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는데 사람은 책에 어울릴 만한 고유의 연령대를 인위적으로 구별하기에 성급했다.

서울 금호동에 위치한 파란 지붕의 ‘카모메 그림책방’은 자신 있게 어른을 위한, 어른에게 선물하고 싶은 그림책을 소개한다. 4년 전 이곳을 차린 책방지기 정해심 대표 또한 어른이 된 뒤 그림책과 사랑에 빠진 사람 중 한 명이다.

‘카모메 그림책방’ 정해심 대표가 30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 카모메 그림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6.30
‘카모메 그림책방’ 정해심 대표가 30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 카모메 그림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6.30ⓒ김철수 기자

‘이 나이에 그림책이라니’ 정면 돌파
아이에게 읽어주다 빠져버린 그림책, 위로 그 이상의 의미

최근 ‘카모메 그림책방’을 방문해 해심 씨를 만났다. 그림책에 둘러싸인 해심 씨와 책방의 손님들이 “어서 들어오라”며 기자를 맞아주었다. 사방에 빼곡한, 알록달록 색의 그림책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해심 씨는 자녀를 키우면서 그림책과 가까워졌다고 한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아이보다 더 그림책에 빠지게 된 것이다. 과거 문헌정보학을 전공했고 2년 정도 초등학교 사서 경험을 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지금만큼 그림책에 관심이 깊지 않았다고 한다.

해심 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많이 읽었고 더 많이 알게 됐다”며 “그런 어른들이 상당히 많다”고 밝혔다. 특히 “글과 그림의 조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며 “저 역시도 마음을 많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위로의 의미가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제 삶에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준 것 같다”며 “상당히 철학적인 그림책이 많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든지 ‘이렇게 살고 싶다’든지 거울 같은 그림책이 많아서 방향성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후 그는 그림책을 함께 읽고 경험을 나누는 ‘어린이책 시민연대’ 활동에 참여했다. 전업주부 생활을 10여 년 하는 중 인상 깊게 읽은 23권의 그림책과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인 ‘이 나이에 그림책이라니’ 책도 틈틈이 썼고 3년 전 공식 출간했다. 태어나서 해심 씨의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첫 책이었다. 자유롭지 못한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가 아닌, 그림책을 통해 온전히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관찰·처방한 기록을 담았다.

해심 씨는 처음엔 ‘책방을 하고 싶다’는 꿈은 막연히 꾸었지만, 이를 추진할 용기는 쉽게 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됐다”며 “책으로 쓸 정도로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림책방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모든 감정은 느닷없이 찾아왔지만 당시의 시점에 충실했던 건 해심 씨 추진에 큰 원동력이 됐다. 책방을 여는 장소는 앞서 터를 차린 이웃 독립서점 ‘프루스트의 서재’가 있고, 자신의 거주지이기도 한 금호동을 택했다.

2017년 11월 지금의 책방을 열던 날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주제로 책방을 연다 했을 때 주변에서 “그러면 안 된다”고 핀잔주는 이도 있었지만, 아이보다 내가 더 좋아하니 ‘편견을 깨보자’고 다짐했다.

전국 곳곳에서 ‘보이지 않게 그림책을 좋아하던 마니아’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생긴 날, 생각보다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를 상기하던 해심 씨는 나지막이 “저도 놀랐다”고 말했다.

‘카모메 그림책방’ 정해심 대표가 30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 카모메 그림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6.30
‘카모메 그림책방’ 정해심 대표가 30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 카모메 그림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6.30ⓒ김철수 기자

수많은 어른과 함께 향유하고픈 그림책
“어른이 읽으면 더 좋은 것들”

‘카모메 그림책방’을 가득 채운 도서를 고르는 기준에는 해심 씨의 깊은 배려가 녹아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그림책을 자유롭고 즐겁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발달단계인 유아에게 필요한 책은 최대한 배제했다고 한다.

해심 씨는 “아이가 읽어도 좋지만 어른이 읽으면 더 좋을 만한 책을 선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특히 “어른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심리 문제를 품고 있는 그림책, 그런 것을 기술해줄 수 있는 그림책을 유심히 보는 편”이라며 “그림도 중요하고 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둘의 조화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하는 책을 추천한다. 철학적인 질문을 갖고 있는가도 본다. 이런 것을 시사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도 관찰한다”고 부연했다.

그는 최근 나온 3권의 그림책을 추천해줬다. ‘여름날, 바다에서 (파울라 카르보넬 지음)’, ‘여름 (이소영 지음)’, ‘뭉게뭉게 구름을 잡으면 (미카엘 에스코피에)’. 해심 씨는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그는 “워낙 좋은 책이 쏟아지고 있다. 매대 위 책이 3개월에 한 번씩 완전히 바뀔 정도”라며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엄청나게 좋은 그림책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 점이 기쁘다”고 강조했다.

해심 씨는 그림책을 ‘0세부터 100세까지 읽는 책’이라고 표현하는 문화계의 지향과 달리 아직 그림책을 독립된 장르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정말 좋은 책이 많은데 이제야 막 알려지는 과정인 것 같다”며 “그림책의 카테고리가 유아가 아닌 독립된 것으로 실현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다행히 최근 동네 책방 내에서도 그림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고, 그림책 협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림책을 즐길 수 있도록 장르의 독립성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카모메 그림책방’ 정해심 대표가 30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 카모메 그림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6.30
‘카모메 그림책방’ 정해심 대표가 30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 카모메 그림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6.30ⓒ김철수 기자

타로 상담 매개체로 필요한 그림책 추천
그림책에서 ‘글’만 읽고 마는 어른들에게 알려주는 ‘그림책 문법’

‘카모메 그림책방’의 또 다른 특색은 타로 상담을 병행한다는 점이다. 결혼 전 타로를 오랫동안 공부한 해심 씨가 자신이 좋아하는 두 가지를 연결시켰다. 해심 씨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책을 추천하는 매개체로 타로가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며 “타로도 역시 그림이다. 그림의 상징을 풀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타로와 그림책 모두 그림의 중요성이 부각된다”고 설명했다.

또 “타로 상담을 통해 내담자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을 중심으로 그림책을 추천한다”며 “의식에서는 알 수 없는, 무의식적인 것들을 건드릴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을 추천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해심 씨는 그림책의 접근을 어려워하는 어른들에게 ‘그림책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설명해줬다. 우선 “그림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른들은 그림책을 읽으면 글만 읽는데, 그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고 삽화 개념으로만 그림을 인식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림책의 그림은 글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다. 그림책의 문법은 ‘그림이 많은 내용을 이야기해서 글이 짧은 것’”이라며 “글이 했던 이야기를 그림이 반복하지는 않는다. 글보다 ‘그림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카모메 그림책방’ 정해심 대표가 30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 카모메 그림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6.30
‘카모메 그림책방’ 정해심 대표가 30일 서울 성동구 금호동 카모메 그림책방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6.30ⓒ김철수 기자

그림책방을 차리기 전과 후, “하고 싶은 일이 중심이 된 삶”

해심 씨는 그림책방을 통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책방 이름 ‘카모메’에도 그러한 의미가 담겨있다. 해심 씨는 “제가 ‘카모메 식당’이라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손님 마사코가 주인 사치에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아 보인다’고 말할 때, 사치에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짤막이 답한다. 그게 저에겐 강력히 와 닿았다”고 밝혔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한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하기 싫은 일은 ‘해야 하는 것’이고, 무조건 이것도 잘해야 하고 저것도 잘해야 하는 줄 알았던 삶에 응원이 됐다.

그러다 문뜩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심 씨는 밝혔다. 지금의 그림책방으로 그 상상을 실현했다.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생긴 것에 대한 만족감은 점점 더 부풀어 오르고 있다.

이전까지 10여 년을 전업주부로 살던 해심 씨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삶의 중심이 되니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해도 괜찮은 삶이 돼 버렸다며”며 “이제 더 하고 싶은 것이 없다. 책방 외에 다른 것을 찾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책방을 시작해 아이가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제게 의미가 없다. 아이는 벌써 중학생이 됐다”며 “제가 (시간적) 자유를 줬으니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해심 씨는 자신의 이름을 건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림책방에서의 경험을 풀어 쓸 예정이다. 책방 운영이 최근 주춤하긴 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여러 가지 기획들도 주저 없이 펼칠 예정이다. 책방 모임의 꽃인 낭독 소모임은 꾸준히 유지하고 싶은 것 중 하나다. 해심 씨는 “그림책은 낭독해야만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혼자 읽을 때와 타인인 누군가가 읽어줄 때 그 결이 많이 다르다”며 낭독모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림책 구매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해심 씨는 책을 너무 비싸게만 생각하고, 책을 직접 구매하는 것을 부담스럽게만 여기는 분위기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책의 가치를 글자 개수, 두께로 따져 ‘그림책은 돈 주고 사기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는 “책 파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것 같다. 대단한 용기가 아니면 안 될 것이라 생각되는데 저도 책방지기이지만 다른 책방지기들을 존경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책방을 통해 이득을 보겠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이 일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해심 씨는 “기쁨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책방지기를, 그들의 삶을 존경한다”고 표현했다.

아울러 책방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책을 너무 귀한 명품가방 보듯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독립책방에 방문했다면 책 한 권을 구매할 수 있는 여유, 똑똑한 소비에 대해 좀 더 넓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흔히 책방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곳’이라고 많이 얘기한다. 동네 책방이 주는 문화적 혜택을 소멸시키지 말고 같이 활용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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