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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첫 소설집 ‘자연사 박물관’ 낸 이수경 소설가…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

“왜 손발을 그리지 않는거야?” 낮에 재이에게 물었을 때 재이는, “그게 없으면 힘들지 않을테니깐, 실수도 안 할 테니까……”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기, 공장, 방글라데시 사람이라는데, 앤과 내가 어릴 때 들었어. 숲에서 놀 때. 그거, 기계에 손이 들어가서, 손가락이 네 개나, 그게 실수였나? 그래서 자기 나라로 쫒겨날까 봐, 그 방글라데시가 목을…… 손이 없었으면…… 재이가 두려운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내게 해준 이야기는 몇 년 전에 있었던 폐자재 공장의 방글라데시 노동자 ‘아불’의 일이었다. 남편의 삶을 바꾸고 재이의 그림 속 소녀들의 손목을 잘라간 그 아불의 죽음.
-소설 ‘재이(在以)’ 중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 아불의 죽음은 노동자들의 노조 건설로 이어졌지만, 노동자들은 해고돼 굴뚝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아픔은 아이의 그림 속 인물들의 손목까지 잘라내며 상처를 입히고 있다. 노동자를 둘러싼 여러 삶의 굴레와 아픔을 ‘실수’라고 쉽게 치부해버리지만, ‘실수’ 아닌 ‘실수’가 반복되고. 그 ‘실수’가 결국은 모두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라면 그건 어쩌면 ‘운명’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이수경 소설가의 첫 소설집인 ‘자연사박물관’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가족들의 불안한 삶의 현실을 통해 극단과 파멸이 일상이 되어버린 21세기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의 운명 아닌 운명을 다루고 있다.

소설집 자연사박물관 발표한 이수경 작가가 29일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6.29
소설집 자연사박물관 발표한 이수경 작가가 29일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6.29ⓒ김철수 기자

노동의 문제가, 노동운동이,
과거의 일, 후일담으로 말해지는
경향에 대한 일종의 문제의식이
이 소설들의 출발점이었다.

지난달 29일 이수경 소설가를 만나 그의 첫 소설집 ‘자연사박물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첫 소설집인 ‘자연사박물관’엔 지난 201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던 ‘자연사박물관’을 시작으로 ‘크라운 공장 노동자 가족’, ‘인생 이야기’, ‘노블카운티’, ‘고흐의 빛’, ‘재이(在以)’, ‘카티클란-온 마을이 빛으로 연결된’까지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돼 있다. 소설들은 서로 완벽하게 스토리가 이어지기도 하고, 때론 등장인물이나 상황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라는 틀 속에서 연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의 소설 속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노동운동은 ‘그땐 그랬지’하는 회고담이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다. 이수경 소설가는 “노동의 문제가, 노동운동이, 과거의 일, 후일담으로 말해지는 경향에 대한 일종의 문제의식이 이 소설들의 출발점이었다”면서 “제가 지난 시절을 살아가며 경험한 일들을 다룰 수도 있었겠지만, 과거로 끝났다는 어떤 문장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오늘의 이야기로 다루려 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광장도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1987년의 광장이 아니라 오늘의 광장이다. 광장에선 싸움이 끝나지 않았고, 누군가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이수경 소설가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는데, 나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더 현재형으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세희 작가의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자료사진)
조세희 작가의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자료사진)ⓒ뉴시스

“부조리한 시대와의
반목과 대결로
태어난 ‘난장이 연작’과 같은
소설이 있었기에,
나도 소설가가 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을 담담한 문체로 담아낸 그의 오늘의 증언은 과거의 증언과 이어진다. 바로 난장이네 가족 이야기를 통해 1970년대 도시 빈민층의 좌절과 애환을 담아 낸 1978년작 조세희 소설가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이다. 연작이란 소설의 형식과 담담하게 풀어낸 문체까지 두 작품은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자연사박물관’ 해설을 쓴 김영찬 문학평론가(계명대 교수)는 “한 노동자 가족이 맞닥뜨린 노동의 현실과 생존의 싸움을 중심으로 연작의 사슬을 구축해가는 ‘자연사박물관’의 세계는, 큰틀에서 보면 그 내용과 형식의 조합에서 ‘난쏘공’을 연상시키는 바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순원 소설가도 “이수경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지금도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새롭게 읽는 느낌”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작가 자신도 ‘작가의 말’을 통해 “부조리한 시대와의 반목과 대결로 태어난 ‘난장이 연작’과 같은 소설이 있었기에, 나도 소설가가 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이수경 소설가는 자신의 작품이 ‘난쏘공’과 견줄 수 없고, 그렇게 말해지는 것조차 부끄럽다면서도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이번 작품을 쓰게 된 가장 강한 동기 가운데 하나가 ‘난쏘공’이었다고 강조했다. “워낙 ‘난쏘공’을 좋아했다. ‘난쏘공’은 노동을 주제로 다루면서도 기존의 노동소설과 달랐다. 정서도 형식도, 방식도 달랐기에 매혹적으로 느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구나 느꼈다.”

사실 그는 노동을 주제로 현재의 이야기를 담아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연작을 구상하진 않았다고 한다. 첫 작품인 자연사박물관을 쓰고 못 담은 말들이 남아 계속 쓰다보니 모두 연결된 이야기였고, 아예 연작으로 해보자는 생각에 수정을 거쳐 이번 소설집으로 탄생시켰다. 문장이 간결하게 단문이 된 건, 최대한 주장을 배제하고 솔직한 감정을 담기 위한 시도였다. “문체도 주장한다거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최대한 배제하고, 그냥 일반 노동자 서민들 속에서 나올법한 이야기, 대사, 감정을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이수경 작가 연작 소설집 '자연사 박물관'
이수경 작가 연작 소설집 '자연사 박물관'ⓒ사진 출처 = 알라딘

“80년대를 살아간 60년대 세대에
관해 쓰고 싶다.
이미 많은 이들이 후일담으로
쓰긴 했지만, 이미 끝난 게 아니라,
그 삶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

그는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 ‘자연사박물관’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될 당시에 벌써 쉰을 넘은 나이였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했고, 백일장에 나가 상도 탔던 그였지만, 대학에 가고, 학생운동과 공장 취업, 단체활동, 결혼 등으로 글을 쓰는 건 잊힌 꿈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 문학카페에 가입하면서 잊고 있던 꿈이 다시 살아났다. “저는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카페를 찾아간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무의식이 저를 이끈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문학 카페 운영자께서 제가 올린 글을 보고,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해주셨고, 자신이 듣고 있던 송기원 선생님(소설가) 수업에 저를 소개해 주셔서 소설을 배울 수 있게 됐다. 글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하셨는데, 제 글을 보자마자 너무 좋아하셨어요. 그리고 나서도 등단하기까진 10년이나 걸렸습니다.”

이번 소설집이 발표된 이후 언론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목소리가 담긴 소설이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지금 준비중인 장편도 그런 이야기다. “80년대를 살아간 60년대 세대에 관해 쓰고 싶다. 이미 많은 이들이 후일담으로 쓰긴 했지만, 이미 끝난 게 아니라, 그 삶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져 왔고,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쓰고 싶다. 마치 그 시대의 사람들이 다 정치권에 들어가 586세대, 86세대가 된 듯 말하고, 그들만이 그 세대를 대변하는 듯 보여지는 게 싫다. 그들만 있는 건 아닌데, 그런 모습만 있는 게 아닌데, 곳곳에서 그때의 삶이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아울러 그 세대의 아이들이 1990년대 생들이다. 그들도 어려운 세대다. 그들의 이야기로도 확장 가능하지 않을까 계속 구상하고 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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