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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친일을 바라보는 아홉가지 시선 ‘권리장전2020친일탐구’의 첫 시작, 연극 ‘준생’
‘권리장전2020친일탐구’의 첫 시작, 연극 ‘준생’
‘권리장전2020친일탐구’의 첫 시작, 연극 ‘준생’ⓒ기타

세상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로 숨을 죽였고 사상초유 개학도 미뤄지고 선거를 치룰 수 있을까 우려와 걱정이 넘쳐났다. 그래도 3월의 광화문은 여전히 분주했다. 시청 글판에는 ‘나를 잊으셨나요?’란 문구와 소녀상이 새겨졌다. 곳곳에 안중근 의사의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요 몇 년은 광화문에도 그날처럼 태극기가 휘날렸다. 아주 많이. 물론 그 날의 그 태극기는 아니었지만.

3월의 어느 날, 지인과 광화문에서 만나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자기는 일제 때 살았다면 독립운동 했을 것 같아?”
“응, 난 했을 것 같아.”
지인의 답은 한치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무서워서 못했을 거야. 그냥 쥐죽은 듯 살았을 거야.”
“그래?”
“그냥 살아남느라 급급했을 것 같아. 비겁하게 살았을 것 같아.”

그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분명 어디에도 나서지 않고 쥐죽은듯 살았을 것이다. 나같은 사람은 감히 독립운동의 'ㄷ'자도 소리내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랑할만한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내 비겁함을 드러내며 그랬을까. 아마 그런 비겁한 모습이 나만은 아닐 것이란 작은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뜬금없이 그 시절 내가 어떤 삶을 살았을 지가 궁금해진 것은 안중근 의사의 잘린 손가락이 선명한 포스터와 광화문에 휘날린 낯선 태극기때문이었을 것이다.

매년 사회 정치에 관한 주제를 밀도있게 다뤄 온 권리장전이 올해 '친일'이란 주제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권리장전2020친일탐구’는 국립극단이 반일감정을 이유로 연극 '빙하' 공연을 취소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과 더불어, '친일'이란 표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복잡다난한 맥락 솟에서 비평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매 시즌 사전강연과 토론, 모니터링의 과정을 함께 하며 입체적인 연극제를 이끌어 오고 있다.

연극 ‘준생’은 ‘권리장전2020친일탐구’의 첫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때는 안중근 장군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하루 전날이다. 안중근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 남자는 안중근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하나하나 알려준다. 그는 자신이 안중근의 둘째 아들 ‘준생’이라 밝히며 거사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어떤 일에도 거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안중근에게 준생은 충격적인 사실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여순감옥에서의 안중근 의사 모습.
여순감옥에서의 안중근 의사 모습.ⓒ국가보훈처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죽이고 처형된다는 것, 조선은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다는 것, 그리고 안중근의 거사로 7살 첫째 아들은 독살된다는 것, 둘째 준생의 비참한 미래와 어머니의 고된 삶 등을 알려준다. 안중근의 거사에도 조선은 해방이 되어도 전쟁으로 또다시 비극이 이어지고 남은 가족들에겐 불행만이 이어진다는 준생의 절규 앞에 안중근은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물론 그 결말은 우리 모두가 안다. 너무나 정확하게. 그럼에도 이 연극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만큼이나, 살기 위해 친일을 선택한 준생의 삶도 분명한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만든다.

역사적 사실에 창작자의 상상이 더해진 이 작품은과거와 미래가 만난다는 흥미로운 설정으로 시작한다. 과학의 측면에서 보는 것은 능력밖이라 차치하고 여전히 과거와 현재가 충돌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날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포기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래도 역사는 그대로였을까. 안중근 의사가 지킨 가족은 무사하고 평화롭게 살아남았을까. 살기 위해 아버지를 부정한 준생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우리는 그것을 평가할 만큼 떳떳하기는 한걸까. 아버지를 만류하는 준생과 그럼에도 죽음의 길을 나서는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모습은 많은 물음표와 함께 짙은 여운을 남긴다.

‘권리장전2020 친일탐구’는 2020년 7월 1일 연극 ‘준생’을 시작으로 9월 6일까지 3개월 여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저울단’의 <경부특급 京釜特級>7월 8일-12일 ▽‘연극집단 공외’의 <아버지의 이름>7월 15일-19일 ▽‘프로젝트 여기에서 저기로’의 <웰컴 투 원더랜드>7월22일-26일 ▽‘추동력’의 <패드립>7월 29일-2일 ▽‘극단 사개탐사’의 <뇌 까리다>8월 5일-9일 ▽‘산수유, 철학극장’의 <총독의 시간:국민적 인간의 생산>8월 12일-16일 ▽‘플레이바쏘’의 <1984>8월 19일-23일 ▽‘권리장전 2020친일탐구 축제위원회’의 <(가제)어느 친일파의 하루>8월 26일-30일 ▽‘루씨드드림 문화예술협동조합’의 <알츠, 하이! 뭐?>9월 2일-6일 총 10편의 작품들이 마침표를 찍는 날, 우리는 친일은 어떻게 해석하고 새롭게 정의하게 될 지 궁금하다.

연극 <준생>

공연날짜:2020년 7월 1일-7월 5일
공연장소:연우소극장
공연시간:80분
작:정세혁, 임기정
연출:정세혁
조연출:방무현
조명디자인:김재경
출연 및 스태프:임기정, 김도은, 장우정, 곽유평, 홍기준, 이아름, 최병철, 우두연, 정승원, 나영아, 이시연, 오수빈, 이예슬, 신지철, 김영재, 나미리, 이주혁, 임현모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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