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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엄마의 그림일기] 살구나무 아래 이한순 할머니

올해 아흔 살이 되신 이한순 할머니는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화동리에서 태어나셨다. 1930년 ‘왜정’ 때 태어나 열여섯이 되었을 때 같은 동네 열여덟 살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 후 바로 남편의 일가를 따라 시부모님, 남편의 두 형 내외, 형들의 자식들까지 대식구가 화동리에서 좀 더 들어가서 현재 자연환경연구공원이 위치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부쳐 먹을 땅이 없으니 산으로 들어가서 묵밭이라도 해 먹으면 자기 것이 되니 굶지는 않을 거라고 했단다. 시아버지가 어디서 점쟁이한테 물었는지 이사 갈 곳 방향이 영 좋지 못해 탈이 난다고 온 식구가 저고리 코에 부적을 붙이고 저고리를 손으로 잡고 이사를 갔다. 산에 올라갔더니 숯 굽는 사람들이 얼추 일을 마무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던 시기였다. 숯을 구울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터가 생기면 화전민들이 모여들어 집을 짓고 살았다.

“토막집이라고 낭구를 잘라다가 치싸. 그렇게 방으로 만들고 낭구 틈을 흙을 이겨서 발라. 거기다 고래 놓고 낭구를 해다가 막 때면 뜨뜻하지.”
*치싸-쳐 쌓아, *낭구-나무 *고래-구들

할머니의 주름
할머니의 주름ⓒ박지선

할머니는 산골 토막집에 살면서 딸 셋을 낳았다. 콩이랑 팥만 먹고는 살 수가 없으니 산골에서 아기를 업고 머리에 곡식을 이고 새벽밥 먹고 걸어서 읍내로 출발한다. 장터에서 보리쌀이랑 바꾸고 필요한 몇 가지 물건을 사고 다시 머리에 이고 집에 들어오면 깜깜한 한밤중이 되었다. 명절에는 남자들 바지저고리를 해 입히느라 들지름을 심지로 해서 개똥불처럼 달아 놓고 몇 날 밤을 지새워 베를 짰다.
*들지름- 들기름

“옷방이라고 있어. 밥을 부엌에서 불 때서 하고 상에다 음식 차리는 방인데 이 옷방에서 상을 차려서 방으로 나르는 거야. 그땐 상도 무겁고 사발도 무겁고 식구 수 대로 상을 차리지. 그 상을 들고 가서 무릎을 꿇고 갖다놔. 잘 못 내려놓다가는 힘없는 사람은 사람째 같이 앞으로 쏠려 넘어져. 부들부들 떨면서 상을 내려놓고 뒷걸음질로 방문 앞까지 나와. 뒤 돌면 안 돼. 꼭 뒷걸음질로 나와야 돼”

할머니의 남편은 그즈음 전쟁터로 나가 10년간 소식을 모르고 살았다. 할머니는 남편이 죽은 줄 알고 영영 못 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군인들이 도망칠까 봐 제주도까지 데리고 가서 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남편은 60세 환갑을 지내고 몇 달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할머니 생각으론 전쟁통에 혼이 나가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 그냥 끓여 먹는 건 아무것도 없어. 벼, 조, 옥수수 찧어야 되고, 갈아야 되고 발방아 돌리고. 물은 다 동이로 이어서 소 멕이고 사람 먹고. 애 젖먹일 새가 어딨어. 애는 목구녕이 마르도록 울고, 겨우 먹여놓고 나와서 또 일하고. 지금 같으면 살 수가 없어. 그래도 안 죽어. 나 배고픈 건 생각도 안 해. 그저 어린애들 어떻게 하면 죽이지 않을까.... ”

할머니는 왜정. 대동아전쟁, 6.25전쟁 등 볶아치는 전쟁을 서너 번은 겪은 것 같다. 여기 가만히 살고 싶은데 총을 들이대며 나가라고 해서 급한 짐을 싸고 솥단지를 이고 피난을 가면 어느 즈음엔 나오지 말라고 총을 쏘아 댔다고. 홍천 삼마치 고개에 송장이 널브러지는 것도 봤다고 한다. 애를 업고 가다가 죽으면 구덩이 파서 묻고. 나왔다 들어갔다 시키는 대로 서너 번은 한 것 같다고.

살구나무 아래의 할머니들
살구나무 아래의 할머니들ⓒ박지선

1960년대쯤 화전민들을 산 밑으로 강제로 내려보내서 그때부터 다시 화동리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다.

“우리 시어머니가 너는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인생을 두 번을 살아야 한다고 했어. 벌써 90살이 되었으니 길다 길어, 죽지도 않고. 굶어도 안 죽더라고.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추운 산골에서 방우리 재를 넘어 다니면서 배급 타서 하루 먹고 하루 살고, 산 바닥에다 애들 내려놓고 이 산에 있는 아카시아는 죄다 우리가 심었어.”

마을의 할머니, 할아버지 서너 분이 사무실 앞 살구나무 아래 앉아계신다. 나무 그늘 아래 바람이 산들산들 분다. 마을 한가운데 우리 사무실도 70년대에 마을에서 부역으로 개울가 자갈과 모래를 퍼다 만들었다고 한다. 이 살구나무도 이한순 할머니가 심으셨다. 곧, 언젠가 살구나무 아래 예쁜 평상을 하나 만들어 드리고 싶다. 90년, 80년의 역사들이 산들바람을 맞으며 고단한 몸을 쉬어 가셨으면.

박지선 마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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