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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은희의 내가 만난 동남아_8] 인생 여행지 ‘발리’를 대하는 다른 방법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이 자주 눈앞에 출몰하는 경험을 요사이 종종 한다. 관심이 생기니 구별이 되고 자연스럽게 눈에 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종일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노예로 사는 현대인이다 보니, 나의 시시각각이 주사장(페OO북)과 구O놈들에게 지배당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마감 일주일 전부터 다음 기고문의 소재를 자주 생각하고 검색도 해 보는 편인데, 발리 검색을 시작한 다음부터 지난주 내내 나의 온라인 기기들에는 여행, 항공사, 아쿠아슈즈, 다이어트 보조제 등의 광고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번 글에 다룰 장소는, 그렇다. 발리(Bali)이다.

열대의 낙원, 누구에게는 서핑 천국, 집집마다 힌두사원이 있는 곳, 누구에게는 Zen하거나 禪한 명상의 장소, 누구에게는 사랑의 장소(줄리아 로버츠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사랑편의 배경임), 아, 그리고 나에게도 리즈 시절의 조인성의 주먹울음과 하지원과 소지섭이 침대에서 총에 맞고, 조인성이 총으로 생을 마감했던 스브스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로케이션 장소로 기억되던 곳이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자료화면(2004년 상반기 방영됨)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자료화면(2004년 상반기 방영됨)ⓒSBS 방송자료 캡처

좀 다른 발리 이야기를 할 예정이지만, 그래도 지구인이 사랑하는 인생에서 한 번은 가 볼 만한 여행 목적지 중 한 곳이니까, 먼저 발리라는 적도의 섬에서 관광이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 큰 틀에서 이해를 좀 해 보도록 하자.

역사적인 측면에서 동남아시아 관광은 식민시대 상인, 군인, 종교인 혹은 자연과학자나 인류학자와 같은 전문가들의 방문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여행이라기보다는 식민지 경영을 위한 지역정보 수집의 목적이 더 컸으리라 본다. 식민 경영이 안정화된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서구 엘리트들 사이에서 동남아를 향한 ‘동방 대중여행’이 붐을 이루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동남아를 향한 국제 단체관광의 토대가 되었다.

다른 한편 동남아시아는 저예산 배낭여행객들, 이른바 백패커(backpacker)들의 주요 목적지다. 일부에서는 대중적 배낭여행의 시초가 동남아에서 유래했다고 보기도 하는데, 이는 1970년대 중반 세계 배낭여행객의 바이블 론리플래닛의 동남아 여행안내서 《Southeast Asia on a shoestring》이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인터넷만 접속하면, 네O버 블로그만 보아도 웬만한 여행지 정보는 다 알 수 있지만 사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행지 게스트하우스에서 각종 여행서적을 복사하거나 옮겨 적어가며 여행 계획을 현지에서 재조정하는 일이 많았다. 이 책에는 동남아(당시에는 공산국가는 제외됨)의 주요 관광목적지에 대한 개괄적 소개, 가는 법, 숙소와 식당 정보, 관광포인트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제시하는 동남아 트레일(Southeast Asia Trails)의 시작점은 태국의 방콕이고 종착지는 인도네시아의 발리이다.

인도네시아는 한반도의 9배에 달하는 면적에 1만7천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군도국가(Nusantara)다. 남북으로 길쭉한 한반도와는 달리 인도네시아는 동서로 넓게 펼쳐져 있다. 인도네시아의 주섬은 자바이고(자바섬이 남한보다 조금 더 큼) , 발리(제주의 3배)는 자바섬의 동쪽에 아주 가깝게 자리 잡고 있다.

발리는 인도네시아 최고의 관광목적지로 주정부 스스로가 ‘지구상의 마지막 낙원’을 표방한다. 한국에서 직항편도 따로 있다. 발리의 웅우라라이 공항에 도착하면 안내방송과 곳곳에 설치된 안내 전광판을 통해 “Welcome to Bali, Paradise Island”라는 환영사를 접할 수 있다. (TMI 잠시, 인도네시아의 공항명은 도시명이 아니라 독립영웅들의 이름을 따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웅우라 라이는 발리 출신 군인으로 네덜란드에 대항해 싸웠던 독립전쟁의 영웅이다.)

발리는 우리의 제주와 여러모로 비교할 만하다.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농촌이면 농촌, 특산품이면 특산품까지 아름다운 경관자산에 힌두교를 배경으로 한 문화와 종족적 특이성 또한 차별적이다. 발리인들의 예술적 재능과 일상이 된 종교의례와 문화공연을 앞세워 인도네시아의 그 어떤 섬보다 유명한 관광지가 될 수 있었다.

발리의 관광화는 네덜란드 식민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고갱으로 인해 유명해진 타히티를 비롯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섬들과 경쟁할 만한 이국적 식민지를 만들고자 했던 제국의 욕망이 투영된 개발이었다. 독립 이후에도 발리의 개발은 중앙정부에 의해 주도되었다. ‘굴뚝 없는 산업’이자 외화수입의 주원인으로 관광의 잠재력을 놓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독립 후 발리 개발의 출발점은 누사두아의 대규모 리조트 건설과 이를 통한 관광현대화였다(박정희 정부의 제주 중문 대단지 개발과 비교해서 생각해 볼 것)

하지만!
만들어진 문화관광과 대규모 리조트단지 중심의 관광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발리인들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첫 번째는 발리인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과 외국인에게 맞춰진 관광개발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발리 힌두교의 전통이 지켜지기보다 자카르타 중심의 이슬람문화에 대한 종속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타났다. 두 번째로는 대중 관광산업 일반이 가진 속성에서 기인하는데, 관광으로 생성된 경제적 가치는 외부로 빠져나가고(글로벌 호텔체인 등) 관광목적지는 오히려 사회적·환경적 폐해만 남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발리 내부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발리의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소위 아젝발리(Ajeg Bali, 발리여 일어나라!)는 운동이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이 캠페인은 발리인의 영성회복과 문화에 대한 긍지와 주체성을 회복하자는 발리판 문화부흥 운동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글로벌한 대중관광에 대한 성찰을 동반한 대안관광의 흐름(지속가능한 관광, 생태관광, 농촌관광, 자유여행 등등)이 적극적으로 결합되기 시작하였다.

발리의 대표적 환경단체 비스누재단(Wisnu Foundation)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이 단체는 남서부 해안과 도시를 중심으로 집중된 관광산업에서 유래하는 환경오염, 농업경관의 잠식, 사회경제적 갈등 등을 문제 삼았고, 대안으로 주민주도의 대안관광인 마을생태관광네트워크 JED(Jaringan Ekowisata Desa)를 2002년 출범시켰다. 나는 이 조직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2015~6년 사이 발리를 여러 차례 방문하며 ‘전통발리’ 혹은 ‘발리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마을’들에 며칠씩 체류해보며 이 대안관광 프로그램의 가치와 한계에 대해 연구를 한 바 있다.

발리의 커피마을에서 제가 커피를 따 보았습니다
발리의 커피마을에서 제가 커피를 따 보았습니다ⓒ필자 제공

내가 경험한 마을관광 프로그램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마을 스테이, 함께 요리하기, 한가하게 동네 구경하기, 마을 간 산길 트레킹하기, 자전거 타기, 농사일 체험(커피콩 수확, 와인 만들기), 운이 좋아 참석한 마을의 의례(성인식, 장례식) 등등.

내가 이곳을 다닐 때 한국에서 공정여행을 표방한 사회적 기업 몇몇도 JED와 제휴하여 마을스테이 프로그램을 안내하고 판매하기도 했다. 어떤 방문객들이 참여를 했나 살펴보니 국내의 생협 조합원들이나 2~40대 여성 개인여행자, 교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지, 이런 여행은 아직까지는 좁은 소수의 취향으로만 존재하는 작은 영역(소위 niche market)에 머물러 있다.

열대의 낙원이라는 발리, 인도네시아 최고의 관광목적지
발리인들의 각성과 새로운 여행 프로그램
렘푸양 사원 사진의 반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과잉관광’대신 만남과 학습의 과정이 되길

사람들이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해외여행을 다니는 목적은 뭘까?

지난주 나의 페친들 사이에서 허핑턴포스트의 한 기사(“최대한 많은 나라 다녀보기:인스타그램이 우리의 여행하는 방식을 망쳐놓고 있나?”)가 많이 회자되었는데, 그중에는 고등학교에서 여행지리와 세계지리를 가르치는 교사들이 #수업자료 라는 태그를 달아 포스팅한 경우가 많았다. 이 기고문의 요지는 여행이 일종의 성취목표가 되거나(서른 살 전 30개국 가보기 30 before 30) 인스타용 사진 찍기 미션이 되어버리면서 여행지의 환경은 물론 여행의 방식도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에서 요새 인스타에서 핫한 발리 렘푸양 사원(penataran Lempuyang)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원은 발리 섬의 가장 동쪽 끝 렘푸양 산의 서쪽 사면에 위치한다. 발리 힌두교들에게는 중요한 사원이지만 사실 발리의 관광 스팟은 대체로 남부와 남서부 해안에 밀집되어 있어서 부러 찾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곳이다. 그런데 이 사원이 요새 핫해지면서 스미냑의 해변, 울루와뚜, 타나롯, 우붓과 더불어 발리를 대표적 경관 사진으로 자주 떠오르고 있다.

렘푸양 사원은 발리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고 사진구도를 잘 잡으면 전통 힌두사원의 입구에 세워진 Candi bentar(갈라진 문) 사이로 구름에 휩싸인 신령스러운 산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잡을 수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간 사진들도 있다. 푸른 하늘, 산, 게이트와 발리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진의 주인공이 마치 거울처럼 발 아래 호수에 그대로 투영되는 아름다운 사진들, 맑은 하늘도 좋지만 석양까지 더해지면 더 아름다운 인생샷을 남기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 이 경관은 사실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그곳에 호수는 없다!

인스타 속 렘푸양의 이미지(구글)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Polina Marinova의 트위터 계정<br
인스타 속 렘푸양의 이미지(구글)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Polina Marinova의 트위터 계정ⓒ자료사진

거울처럼 피사체를 그대로 비춰내는 호수는 관광가이드의 카메라 하단에 붙은 거울이 만든 속임수이다. 렘푸양의 관광 진작을 위한 가이드의 재치에서 시작된 서비스였겠으나 이제는 이 인생샷을 건지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여행의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하루를 투자해 이곳까지 오는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제 여행의 패턴이 많이 바뀔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저가항공의 등장과 여행상품의 가격 하락이 여행의 대중화에 기여한 바도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과잉관광’이 가져온 환경적 사회적 비용 증대의 폐해도 크기 때문이다.

더 멀리, 더 자주, 인생 성취를 위해 가는 여행이 아니라면 앞으로 여행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선생님 같은 대답이겠으나 여행은 만남이어야 하고, 일상과는 다른 색다른 체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되돌아올 일상을 위한 회복의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불어 그 과정은 여행자와 로컬이 상호 부딪치고 이해하고 상호학습하는 과정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인도네시아 발리
인도네시아 발리ⓒ민중의소리

사족이지만 나는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 롬복편’이 재미있으면서도 동시에 많이 불편했다. (롬복은 발리 동쪽의 작은 섬이다) 롬복의 풍광은 아름다웠지만 그 기획된 식당을 찾는 이들은 대체로 1세계 관광객으로만 한정되었다. 프로그램 종영 때까지 기다려봤지만 롬복 주민, 인도네시아 손님은 끝내 그 식당을 찾아오지 않았다. 한식의 세계화도 좋지만, 그 세계화의 대상이 굳이 선진국 관광객들이라면 굳이 그 프로그램이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까지 찾아갈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도네시아는 가 본 적 없지만, 발리는 가 봤어요~” 해맑은 여행객들 중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따로, 발리 따로인 사람들. 어쩌면 이런 관광객들은 자신이 다녀온 곳이 발리이든, 세부이든, 파타야든, 보라카이든 관계없이 그저 열대의 해변과 야자수가 있는 풍경이면 괜찮은 사람들이지 싶다.

코로나 이후의 여행은 보다 값진 경험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소중한 경험, 비싼 돈 들여가는 여행 이제는 바꿔봅시다. 거창하지만 인류도 생각하고, 기후변화도 생각하고, 관광지 주민들도 생각하는 사려 깊은 관광객으로 거듭나려는 흐름이 글로벌 팬데믹 이후에는 강화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엄은희 서울대 사회과학원·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지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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