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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환의 역사로 생각하기] 최숙현 선수 사건의 사회적 결말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심용환7
심용환7ⓒ민중의소리

메달이 애국인 나라

1977년 실업야구팀 롯데는 ‘광주에서 임진각까지’ ‘차가운 북서풍을 뚫고 1천 2백리길’ 주파에 나선다.

롯데 티임의 이 행군은 전라남도 광주에서 임진각까지 이르는 4백83.7km를 시속 10km로 매일 4시간씩 달려 13일간(2일간 휴식 포함)에 주파하는 것으로 주력 향상과 아울러 정신력과 투지를 기르는데 목적이 있다.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대행진에 나섰다는 건데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에는 한 겨울에 운동복만 걸친 채 일열로 뛰는 롯데 야구선수단의 모습이 함께 담겨 있다. 근 5백킬로 미터를 약 2주일간 달리는 것과 야구 실력 향상은 정비례할까? 군대에서나 할 법한 행군을 하고 나면 정말로 정신력이 향상될까? 인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 일화는 적합한 행태일까 아닐까.

한국에서의 엘리트 스포츠는 민족의 애환과 깊숙히 관련을 맺는다. 1936년 일제 강점기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우승은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해석될 때 비로소 큰 의미를 갖는다. 올림픽에서 우승한 그는 기뻐하지 않았고 비로소 1992년 황영조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1등으로 트랙을 통과할 때 완성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LA다저스에서 160km에 달하는 박찬호의 강속구에 메이저리거들이 헛스윙을 연발하는 가운데, 박세리 선수가 퍼팅을 하기 위해 신발을 벗었고 검디검은 허벅지와 하얀 발 색깔이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었을 때, 경제적인 고통을 겪던 이 땅의 국민 대다수는 열광했다. 장정구, 유명우, 문성길 등 복싱 챔피언들이 얼굴 퉁퉁 부어 가면서 방어전에 성공할 때 아나운서는 언제나 ‘고국에 계신’, ‘해외에 계신’ 동포들을 외치면서 그들의 개인적 성취를 국가적이고 민족적인 성취로 해석했다.

IMF 구제금융사태 이듬해인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 연못 옆에 떨어진 공을 치기 위해 양말을 벗고 맨발 투혼을 보여준 박세리 선수, 우승 후 환호하고 있다.
IMF 구제금융사태 이듬해인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 연못 옆에 떨어진 공을 치기 위해 양말을 벗고 맨발 투혼을 보여준 박세리 선수, 우승 후 환호하고 있다.ⓒ뉴시스/자료사진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일제 강점기 제도적, 문화적 차별 가운데 사이클 선수 엄복동이 일본 선수들을 물리치며 수차례 트로피를 거머쥐는 것을 보는 기쁨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금강호를 타고 고국 방문 비행에 성공한 안창남을 보면서 식민지의 고단함을 달랬던 그들이, 그들의 자식들이 지독히도 가난한 1950년대, 힘겹디 힘겨운 산업화의 시대를 살아내는데 스포츠란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을 주었을까.

2003년 3월 어느 날, 천안의 한 초등학교 운동부 합숙소에 그만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9명의 어린 꿈나무는 하늘의 별이 되어야 했습니다... 34평의 슬래브 건물... 달랑 방 2개에서 24명의 아이가 복닥거리며 생활해야 했지요. 창문은 방범용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거나 에어컨과 신발장으로 막혀 있어 탈출구가 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힘겨운 훈련에 도망이라도 칠까 봐 감독이 출입문을 잠그고 퇴근하는 바람에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19년에 발간한 [합숙소 앞에 멈춰 선 인권]이라는 ‘스포츠 인권 리포트’ 책자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에는 온갖 믿기 힘든, 아니 솔직히 외면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수두룩하다. ‘침실에까지 CCTV를 설치해 학생 선수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곳’, ‘관등성명을 외치면서 매일매일 긴장 상태로 살아가는 여고생의 고통’, ‘선배의 장기간 폭력이나 동성 간 유사 성행위 강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에 울분을 터뜨리는 여학생’ 등등 모든 합숙소가, 합숙소 자체가 끔찍한 지옥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심각한 문제에 노출되어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합숙소 앞에 멈춰 선 인권’ 보고서 표지
‘합숙소 앞에 멈춰 선 인권’ 보고서 표지ⓒ국가인권위

하지만 마치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식으로 방송과 미디어는 스포츠 엘리트들의 성장 과정을 열심히 희화화 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영웅인 선배 최용수가 후배 안정환에게 족발을 시키게 하고, 리모콘을 독점하는 모습을 짓궂은 재미거리고 묘사하고, 어느새 감독이 된 농구 스타 현주엽이 소속 선수들이 각자 싸온 음식을 꺼내 놓게 한 후 마음대로 먹는 모습을 뭐라뭐라 하면서도 즐겁게 지켜보는 것이 작금의 미디어 현실이다.

지독히도 여전한 그들의 문화

이 가운데 최숙현 선수 사건이, 스포츠 엘리트들의 인권 유린 사건이 다시 한 번 일어났다.

이제는 엄마들이 때려요.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를 통해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과거 심석희 사건을 비롯하여 최근 수 년 간 몇 차례 폭로로 인하여 그래도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스포츠 엘리트 육성은 정부가 관심을 갖는 국위 선양 사업이기 때문에 다른 부문에 비해 변화의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소위 근본적인 것들, 구조와 시스템, 감독과 코치들의 지도력이 확실히 변했는가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소수의 엘리트들이 지독한 훈련을 통해 메달을 거머쥐는 것이 이 동네의 근본 원리 아니던가. 학교에서 안 되면 학원이, 밖에서 안 되면 집에서 하면 그만일지도 모를 노릇.

생전의 최숙한 선수 모습(오른쪽)과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보낸 카톡 문자
생전의 최숙한 선수 모습(오른쪽)과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보낸 카톡 문자ⓒ자료사진

몇몇 문제를 개선하는 것과 그러한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원인 자체를 수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정이다. 더구나 스포츠계의 감독, 코치, 선배들이 품어온 행동방식이란 개인적인 성공과 국위 선양을 위해 오랜 기간 온갖 모진 고통을 감내해온 그들 자신의 내면적 논리이기도 하다. ‘고작 그것을 감당하지도 못하고’, ‘애가 마음이 여러서’ 식의 뒷담화는 단순한 푸념이 아닌 쉽사리 어찌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현실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최숙현 선수 사건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사회적 결말에 도달할 수 있을까. 충격적인 폭로, 자극적인 기사 이상의 노력이 이루어져야만 할 때이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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