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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직장 내 성폭력이 벌어진 그 일터

직장 상사이자 충남도지사였던 안희정의 성폭력을 고발한 뒤, 그의 유죄가 확정되기까지 554일간의 기록을 담은 책 『김지은입니다』에서 저자는 자신의 폭력 피해 경험이, ‘여성 김지은’이 당한 일이자 ‘노동자 김지은’이 당한 일이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직장 내 성희롱, 성추행, 성적 차별 등은, 위계에 의한 폭력이 성을 매개로 발생한 것일 경우가 많다. 직장 내 성폭력이 벌어지는 직장은 위계에 따른 다른 형태의 폭력도 빈번하다. 안희정은 수행 비서에게 성적 폭력을 저지르기 전에, 우유나 담배를 사 오라는 사사로운 심부름을 시키고, 24시간 대기하도록 하며, 업무 이외의 일에 노동자를 동원한 노동권 침해자이기도 했다.

해당 사건에서 직접적인 ‘위력’을 가진 사람은 조직의 수장이자 여러 노동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안희정’이었지만, 그를 정점으로 하는 당시의 충남도청 자체가 위계와 위력이 작동하는 비민주적인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고위 공무원이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에게 성희롱을 저질러도, 조직이 나서서 문제 확산을 막기에 급급했다. 조직문화에 대한 하급 공무원의 문제제기는 제대로 다뤄질만한 통로도 없었다. 그것이 김지은의 일터였다.

김지은 씨의 책 '김지은 입니다'
김지은 씨의 책 '김지은 입니다'ⓒ사진 = 출판사 봄알람 누리집

전 비서가 직장 내 성추행으로 고소한 다음 날, 스스로 세상을 등진 박원순 전 서울시장. 그를 보며 ‘서울시청’이라는 노동 공간을 다시 생각해본다. 서울시는 지난 수 년간 여러 공무원 노동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한 일터다.

2015년 연말 스스로 세상을 등진 6급 공무원은, 사망 6개월 전 부서 이동이 있었다. 새로 만난 팀장으로부터 ‘돌대가리’라는 욕을 듣고, 팀장이 주도하는 왕따를 당했다. 노조를 찾아가기도 하고, 부서 책임자들에게 부당한 상황을 호소하기도 했으나 시측의 조치는 없었다. ‘직장’에서의 조직적 도움과 책임이 없는 사이, 지친 노동자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2014년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산하 상수도연구원에서 근무하던 연구 노동자는 성희롱과 괴롭힘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졌다. 상사들의 성희롱과 모욕적 발언을 연구원 측에 알렸지만, 가해자 1명의 공개 사과가 있었을 뿐이다. 서울시는 노동자의 사망 이후에야 가해자들을 조사하고 징계했다.

이번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박 시장을 고소한 이의 주장에 따르면, 서울시장은 비서직을 맡은 노동자에게 4년 여 간 성폭력을 저질렀다. 그 사이 피해 노동자는 주변에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지만, 서울시 차원의 조치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것이 서울시였다.

사건이 발생하면, 우리는 간편하게 ‘오만했던 가해자’나 ‘멘탈이 약했던 피해자’ 등 사건에 직접 연루된 개인들의 특성에서 사건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잊게 되는 것이 ‘조직’이다. 성폭력이 벌어지는 일터에서 성폭력만 일어나지 않는다. 괴롭힘과 언어 폭력, 성폭력과 물리적 폭력, 노동권의 상실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울시청사(자료사진)
서울시청사(자료사진)ⓒ서울시

2016년 게임회사 넷마블에서 젊은 노동자가 과로사 한 이후, 2017년 게임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했다. 평소에도 보통 주당 52시간 넘게 일한다는 답변이 33%나 됐다. 장시간 노동도 놀라웠지만, 여성은 세 명 중 한 명, 남성은 네 명 중 한 명이 지난 1개월 내 언어폭력, 원치 않는 성적 관심, 위협 또는 굴욕적 행동 등 직장 내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0% 미만이 겪었던 일이다.

당시 연구진은 게임 노동자 심층 면접을 통해, 작품을 위해 ‘감내해야’ 한다는 게임업계의 오랜 노동 규율과 개발사들이 하청회사화 되고 노동자들이 이런 회사들을 이리저리 떠돌게 되는 노동환경이 직장 내 폭력의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게임업계 노동자들의 불안한 처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서울시 공무원들의 일터에서 왜 괴롭힘과 성폭력이 반복되는가. 공무원 조직 문화와 체계, 과도한 업무량과 노동강도, 성과주의와 평가 시스템 등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묻히게 하는지 드러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지금 서울시 상황에서 이런 도전이 만만치는 않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목숨을 끊으면서, 진상조사보다 ‘애도’와 ‘공소권 없음’이 먼저 운위되었다.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까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서울시 공무원 노동자’들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이 사건을 반복되어 온 직장 내 폭력의 연장선에 두고, 진정한 폐부인 직장 내 폭력의 조직적, 구조적 원인까지 조사하고 밝혀내길 바란다. 그래야 달라질 것이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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