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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준의 경제비평] 특혜는 받고 맘대로 철수? 외투기업 정책 재검토해야

고용위기가 제조업으로 번지면서 외국인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의 자본 철수와 정리해고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필자가 사는 대구에서는 최근 미국계 투기자본 블랙스톤이 달성공단의 자동차 부품 제조사인 한국게이츠 공장의 7월 말 폐쇄를 결정했다. 이로 인해 협력업체 포함 대구 지역 노동자 약 6천여 명이 고용불안에 내몰릴 예상이다. 달성공단의 다른 외투기업 에이브이오카본코리아도 정리해고를 예고했다. 두 회사 모두 흑자 상태로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명분이다. 어디에서든 자본은 노동자들의 삶이 파괴될 수 있는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린다. 그런데 특히 외투자본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노사관계가 파행으로 치닫는 경우가 훨씬 많다.

지난달 30일 오후 대구 달성군 외국계 자동차부품 제조사 한국게이츠 대구공장에서 열린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투쟁선포 기자회견에서 노조원들이 한국게이츠 대구공장 폐업 통보에 생존권을 짓밟은 일방적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게이츠는 지난 26일 입장문을 통해 법적 절차와 규정에 따라 국내 제조시설을 폐쇄하고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20.6.30
지난달 30일 오후 대구 달성군 외국계 자동차부품 제조사 한국게이츠 대구공장에서 열린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투쟁선포 기자회견에서 노조원들이 한국게이츠 대구공장 폐업 통보에 생존권을 짓밟은 일방적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게이츠는 지난 26일 입장문을 통해 법적 절차와 규정에 따라 국내 제조시설을 폐쇄하고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20.6.30ⓒ뉴스1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외자도입을 목적으로 외투기업에 예외적인 특혜를 제공했다. 국세와 지방세를 감면하고 국유 재산을 싼 임대료로 빌려 준다. 기술이전이나 고용 관련 실적이 있으면 별도로 보조금도 준다. 정부는 올해도 외투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확대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이나 소재·부품·장비 관련으로 기술력이 있는 외국자본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복안이다.

아무런 제재도 없이 일방적인 해고와 폐업,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의 몫

그런데 이들이 누린 혜택만큼 한국경제에 기여하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산업연구원의 2016년 연구에서는 고용을 기준으로 할 때 외투기업이 국내기업보다 성과가 나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연구에서 외투기업의 자본 철수가 해당 산업뿐만 아니라 부품을 납품하는 후방산업의 중소협력사 고용에도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친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외투자본이 기업을 인수하면 고용은 줄어드는데 막상 선진기술의 이전은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여러 실태조사에서 드러났다. 외투자본은 단기적인 이익 실현에 치우쳐 이윤을 국내에 재투자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최악의 기술 유출 사례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외투기업이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정리해고를 하거나 사업을 철수해도 이에 대해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어떤 강제적인 조치도 취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방적인 자본 철수를 제재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없다. 국제법 자체가 투자 보호를 지향해왔고 이에 따라 기술유출이나 배임 등 예외적인 사항이 아니면 본사 경영방침으로 외투자본이 사업을 철수할 때 이를 막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노동조합도 별 수 없다. 사업장 단위로는 외투자본을 상대하는 것이 역부족이다. 흔히 사측은 자본 철수로 협박하거나 해외에서 물량을 들여와 파업을 무력화시킨다. 자본 철수에 맞선 노동조합의 투쟁은 여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대구 달성군 외국계 자동차부품 제조사 한국게이츠 대구공장에서 열린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투쟁선포 기자회견에서 노조원들이 한국게이츠 대구공장 폐업 통보에 생존권을 짓밟은 일방적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게이츠는 지난 26일 입장문을 통해 법적 절차와 규정에 따라 국내 제조시설을 폐쇄하고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20.6.30
지난달 30일 오후 대구 달성군 외국계 자동차부품 제조사 한국게이츠 대구공장에서 열린 금속노조 한국게이츠지회 투쟁선포 기자회견에서 노조원들이 한국게이츠 대구공장 폐업 통보에 생존권을 짓밟은 일방적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게이츠는 지난 26일 입장문을 통해 법적 절차와 규정에 따라 국내 제조시설을 폐쇄하고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20.6.30ⓒ뉴스1

총고용 유지를 위한 제도적 대책이 시급하다

그렇다면 외투기업이라고 손 놓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국제기준에서도 노동은 투자자와 함께 엄연히 보호 대상이다. 대표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적기업 고용 및 노사관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다국적기업의 사용자는 “투자 유치국의 대등한 사용자가 준수하는 고용 및 노사관계 기준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에 해당하는 기준을 준수해야” 하며(제4항), “정리해고가 수반된 사업장 폐쇄의 경우와 같이 고용에 중대한 영향이 있는 운영상의 변화를 고려함에 있어서는 부작용의 최소화를 위해 노동자 대표 및 정부 관계당국과 협력해야” 한다(제6항)고 규정되어 있다.

외투기업에 대한 규제 요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제기했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소극적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경제가 위기를 맞으면서, 보다 저렴한 생산비용을 찾아 이동하려는 외투기업의 이탈 압력이 점차 커지는 시점이다. 대구 달성공단의 사례는 하나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한국게이츠의 자본 철수와 사업장 폐쇄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는 그래서 중요하다. 지금 총고용을 유지하려면 외투기업의 일방적인 자본 철수에 대한 제도적 대책이 시급한 것이다.

당장 지방정부가 해고와 폐업의 타당성을 심의하고
부당한 결정에 대해서는 제재에 나서야

당장 지방정부 주도 하에 외투기업의 사업장 폐쇄와 정리해고 결정에 대해 타당성을 심의하는 지역 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 심의 결과 타당성이 불충분하면 FTA 투자 규정의 허용 범위 내에서 지금까지 지원받은 혜택을 회수하는 제재가 수반되어야 한다. 특별 근로감독과 세무조사를 제도화하고 외투자본으로 하여금 이직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외투자본에 대해 사전심의기구를 도입하고 고용안정기금을 조성하도록 함으로써 노동자와 지방정부 등의 입장이 최초 투자 단계에서부터 반영되게 해야 한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은 제4조 2항의 투자제한사유를 비롯해 전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 특히 고용안정 저해 요건을 투자제한사유로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외에도 미국의 엑슨-플로리오 법(Exon-Florio Amendment)이나 독일의 폭스바겐 법처럼 국가나 지방의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선례가 있으므로 가능한 접근법이다. 기존에 제공해온 다양한 혜택에 대해서는 고용 관련 조건을 추가해 조건 이행 정도에 따라 혜택을 허용하는 방향이 검토되어야 한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한 직원이 달러를 검수하고 있다.(자료사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한 직원이 달러를 검수하고 있다.(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외투기업에 대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할 시점

일각에서는 외투기업을 제재하지 말고 외국자본 유치에 따른 경제적 과실을 적절히 분배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 경제적 과실이라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므로 이는 실행가능한 해결책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퇴직금을 받고 해고된 중년의 가장은 대개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린다. 정리해고는 개인과 가족의 생계 문제를 넘어 지역 경제에도 상처로 남는다. 해고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해지는데 보상의 방법은 막막하다. 정부의 취업지원을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나 고용보험의 사회안전망은 물론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이는 외투기업의 ‘먹튀’를 눈감아주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지난 학기 필자의 학부 수업에서는 주류 경제학의 대표적인 성장이론을 학생들이 배웠다. 그 내용 가운데 하나는, 경제성장률이 추세적으로 이자율보다 큰 경제에서는 자본이 과잉 상태에 있으므로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늘리는 편이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딱 한국경제 이야기이다. 우리는 자본이 부족하지 않다. 성장을 위해 외자를 도입하던 시대는 지났다. 외투기업에 대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할 때이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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