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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20년 젊은 한국 레게의 외침

왠지 여름에는 레게를 들어야 할 것 같다. 레게 뿐일까. 맘보, 보사노바, 살사, 스카, 차차차 같은 중남미 출신 음악은 모두 여름을 위한 BGM처럼 느껴진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신한태와 레게소울은 7월 9일 첫 정규 음반 [Ark of Ideals]을 발표했다. 이상의 방주, 혹은 이상적인 방주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음반은 한국 레게의 차세대를 자임한다.

레게를 밥 말리 음반보다 더 들었다면 신한태와 레게소울의 음악이 시대를 거슬렀음을 금세 알아챌 것이다. 신한태와 레게소울의 레게는 1970~80년대 자메이카에서 시작해 영국을 강타했던 시절의 레게를 향한다. 밥 말리만이 아니라 킹 더비 이후의 덥(Dub)이 섞인 레게 음악이다. 그래서 리듬은 선명하고 사운드는 몽롱하다. 음반을 들으면서 계속 마음이 끌리고 움직이게 되는 이유는 신한태와 레게소울이 레퍼런스로 삼은 사운드를 재현하는데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 퍼커션 등으로 만들어낸 음악은 둔탁하고 흐릿하며 질박하고 끈끈한 루츠 레게와 덥 사운드에 안착했다.

레게 밴드 '신한태와 레게소울'<br
레게 밴드 '신한태와 레게소울'ⓒ사진 = 동양표준음향사


물론 과거의 사운드를 잘 재현한다는 것만으로 호평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음악에서 연주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좋아했던 사운드를 매끄럽게 연주하기만 해도 열광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바에는 레퍼런스가 된 원본을 듣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사실 대중음악은 원본과 복제, 그리고 변형이 엎치락뒤치락 뒤섞인 기록이다. 변화의 순서는 시간을 따라 순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어떤 장르이건 과거의 스타일은 곧잘 현재로 회귀한다. 영향력이 큰 장르일수록 경계가 없다. 그래서 신한태와 레게소울의 음악이 루츠 레게와 덥이라는 사실은 그 장르의 오랜 힘과 역사를 보여준다.

신한태와 레게소울은 음반에 수록된 9곡 대부분에서 예전 레게 사운드를 재현했을 뿐 아니라 초창기 레게가 담지한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라스타주의(Rastafarianism)의 한국화라고도 할 수 있을 노래들은 ‘마음을 열라’ 한다. “주 5회 8시간 이상 일을 하지 않으면/집 월세도 못 내고 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저 원망스런 철조망이/우릴 가로막고 있”다고 한탄한다. “마치 흙과 나무처럼 둘이 하나 되”고 싶은 마음과 “그대 자기 자신을/숨기지 말아요 표현을 해봐요”라고 권하는 목소리는 밥 말리나 피터 토시가 부르짖었던 레게 음악 속 평등과 평화의 현재형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 음반을 듣는 방법은 전통적인 레게 사운드와 현재의 메시지가 어떻게 이어졌는지 살펴보는 방식일 수밖에 없다.

음반을 여는 첫 곡 ‘Open Your Mind’에서 질박한 리듬과 영롱한 사운드가 만나 끈적하게 이어질 때, 우리는 새로운 장르가 출현하며 뜨거운 이상으로 가득했던 시절로 복귀한다. 반복과 부풀림으로 생성한 사운드는 드럼의 공격적인 연주로 마음을 흔들어 깨운다. 베이스, 키보드, 퍼커션이 총출동한 첫 곡은 신한태와 레게소울이 어디로 나아가려는지 보여줄 뿐 아니라, 그 곳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보고한다.

20대의 안타까운 삶을 기록한 ‘20’s’는 20대인 자신들의 욕망과 절망스러운 현실을 대비함으로써 정직한 고백을 완성한다. 이미 다수가 알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을 적은데다,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이는 현실 앞에서 뻔한 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는 노랫말은 거의 동일하게 이어지는 사운드로 변화의 어려움을 내비친다. 반면 좀 더 경쾌한 톤으로 분단을 노래하는 ‘.The 38 Parallel’은 호기심과 간절함을 들려준다. 분단 현실이나 국제 정치에 대한 냉철한 인식 대신 소박한 인간애가 돋보이는 곡이다. 20대 뮤지션이 노래하는 분단과 통일의 노래가 드물어 더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반면 ‘Nothing For Love’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정서가 편안하다. 이 또한 레게의 원형과 전통으로 이어진 곡이다. ‘Skankin'’은 시원하고 경쾌한 사운드에 실은 솔직한 자기 표현의 요청이 자연스럽다.

잠시 숨을 고른 신한태와 레게소울은 ‘Home Town’부터 다시 덥의 소리 공간으로 돌아간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농밀한 사운드로 표현한 ‘Home Town’은 아득한 추억의 심상에 충실하다. 동일한 리듬과 멜로디를 반복하면서 변화시키는 솜씨는 매끄럽다. 8분 36초의 긴 곡은 사운드를 돌출시키고 침잠시켜 빚은 농염한 맛이 깊게 느껴진다. ‘Crying 20' s Dub’ 역시 덥의 흐름을 이으며 소리를 흩날린다. 저음의 파장이 물결치고 파동은 또 다른 파동으로 이어진다. 그 울림의 드라마를 즐기는 것이 덥을 듣는 재미. ‘Lover Dub’은 좀 더 해사한 사운드로 따스한 사랑의 질감을 모사한다. 그리고 마지막 곡 ‘Daeya-Myeon Dub’은 ‘Home Town’에서 선보인 멜로디를 이어가며 신한태와 레게소울이 창조하고자 한 전통과 현재의 앙상블을 마감한다.

꾸준히 이어진 한국의 레게/스카 신은 이렇게 새로운 밴드로 이름을 바꿔가며 역사를 계속 쓴다. 연주력이 있고, 자신의 이야기가 또렷한 밴드의 데뷔작이다. 좀 더 막무가내로 따져 물으며 막막한 현실을 흔들었어도 좋았을 음악이, 평화와 안식의 방주가 될 수 있을까. 이 젊은 노래를 오늘의 젊음과 오래 전의 젊음이 들어줄까.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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