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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무게 치는 여자 ‘샤크 코치’ 이윤주 “이런 여자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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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건강해 보인다” 종종 듣는 말이다. 칭찬이 아니었다. 여성의 몸은 가늘고 연약해야 하는 사회에서 ‘뚱뚱하다’라는 놀림이었다. 여성에게 ‘건강하다’라는 말은 욕이었다. 키 대비 몸무게는 평균보다 적은데, 상체보다 ‘건강한’ 하체 덕에 평생을 비만이라고 생각했다. 살도 근육도 없이 비쩍 마른, 이른바 ‘11자 다리’는 인생의 로망이다. 앉기만 하면 종아리를 주무르는 습관을 갖게 된 이유다.

페미니즘이 말했던 다양한 여성의 몸은 보이지 않았다. 들어갈 덴 들어가고 나올 덴 나온 ‘S라인’ 몸매가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었다. 운동은 그런 몸을 위한 것이었다. 수영과 자전거를 즐긴다고 하면 “어깨 넓어지면 어떡해”, “말 다리 되겠다”라는 ‘걱정’부터 나온다. 의기소침해져 한동안 몸매를 강조한 운동복을 입은 유튜버를 따라 ‘홈트’(홈 트레이닝)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윤주 크로스핏터의 바디 프로필
이윤주 크로스핏터의 바디 프로필ⓒ이윤주
이윤주 크로스핏터의 바디 프로필
이윤주 크로스핏터의 바디 프로필ⓒ이윤주 제공

사진 한 장으로 ‘운동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깨졌다. 이윤주(33) 크로스핏(Cross+Fitness) 선수 겸 코치의 바디 프로필이었다. 사진 속 그는 어깨, 등, 팔, 다리의 단단한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다. 저런 근육은 남자만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샤크 코치’에 들어가 봤다. ‘무게 치는’ 여성들의 모습에 어리둥절함도 잠시, ‘그래, 이런 게 운동이지’하며 건강하고 유쾌한 분위기에 깔깔 웃었다.

지난 8일 서울시 성북구 ‘샤크 짐’에서 만난 윤주 씨는 “젓가락 다리를 포기 못 하겠다”라는 기자에게 “그게 다리냐. 이 정도 근육은 붙어야 다리다”라며 자신의 허벅지 근육을 보여줬다.

근력운동부터 맨몸체조까지
재능에 욕심 더해지니 ‘1등 크로스핏터’

윤주 씨의 별명은 ‘샤크’다. 전설의 농구선수 샤킬 오닐의 별명 ‘샤크’(Shaq)에서 따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농구동호회 언니들이 까만 피부에 덩치가 크고 몸싸움도 좋아하는 윤주 씨에게 붙여줬다. 그는 축구와 인라인스케이트를 좋아했던 활동적인 어린이였다. 중학교 특별활동으로 우연히 선택한 농구에 푹 빠져 2001년 당시 한두 개뿐이었던 여성 농구동호회에 들어가 직장인 언니들과 어울렸다.

이윤주 크로스피터
이윤주 크로스피터ⓒ이윤주 제공

윤주 씨가 크로스핏을 시작한 이유는 다이어트였다. 그는 소아비만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몸무게 기본값은 85kg였다. MMORPG 게임 ‘리니지’에 빠졌던 대학생 시절엔 100kg을 넘기도 했다. “졸업반이 되자 취업을 위해서라도 살을 빼야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영화 300의 출연진들이 크로스핏으로 멋진 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이 생겼어요. 단시간에 멋진 외양을 갖추고 싶어서 시작했죠”

여러 운동을 크로스오버하는 크로스핏은 다양한 신체 능력을 골고루 갖춰야 한다. 힘만 세도 안 되고, 민첩하거나 지구력이 좋아서만도 안 된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순간 기록이 안 좋아진다. “처음에 저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서 무게 치는 걸 잘 했지만, 턱걸이같이 맨몸 동작을 못 했어요. 운동을 열심히 해서 안 되던 동작들이 되는 게 재밌었어요. 게임 캐릭터를 키울 때처럼 제 능력치 향상을 즐겼어요”

타고난 재능에 욕심까지 뒷받침된 윤주 씨는 각종 크로스핏 대회에서 1등을 거머쥐었다. 2013년 크로스핏에 입문한 그는 다음 해 ‘크로스핏 오픈 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도중 어깨 부상을 겪었지만 2017년까지 다섯 번의 국내 대회에서 1등 했다. 2014년 아시아 지역, 2017년 퍼시픽 지역 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에서 40여 명, 아시아에서 2명뿐인 ‘아이언 메이든’이기도 하다. (아이언 메이든은 24kg의 케틀벨로 한 다리 스쾃, 프레스, 무게 턱걸이를 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자격이다. 아시아 첫 번째는 최현진 씨다.)

“여성은 운동에서 배제됐다”

그동안 여성은 운동에서 배제돼왔다고 윤주 씨는 지적했다. “운동은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모든 인간에게 필요해요. 그런데 남성들에겐 운동을 당연시하면서, 여성들에겐 미용 목적이라는 좁은 한계에서만 운동을 허용했어요. 그간 사회는 ‘여성 운동’을 여성이 주체적으로 하는 운동이 아닌 ‘운동하는 여자’를 감상하는 시선을 기준으로 소비했어요. 심지어 프로리그에서도 여성 선수들에게 치마를 입혀 눈요깃감으로 전락하기도 하죠”

이윤주 크로스핏터
이윤주 크로스핏터ⓒ이윤주 제공

여성 대부분이 운동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윤주 씨는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회원 중에 소화가 안 돼서 운동하러 온 분이 계세요. 후면 근육이 모자라 등이 굽으면서 소화불량에 걸린 거예요. 그분이 운동하면서 처음으로 거북한 느낌이 안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살 빼려고 할 땐 8개에서 10개 하기가 그렇게 싫었는데, 건강해진다는 생각에 11개도 하게 된대요. 운동 자체를 즐기게 된 거죠”

“살 빼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생애 처음으로 근력운동을 접하고 내 몸으로 다룰 수 있는 무게를 높여 가면서 운동 그 자체에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차차 운동의 목적도 다이어트에서 건강과 강인함으로 옮겨가죠. 본인의 몸을 좀 더 자유롭게 활용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통해 자부심도 생기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는 그만큼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여성이 운동해야 하는 이유는 “기본 생존권처럼 당연한 것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윤주 씨는 말했다. “‘승모근이 커지면 안 된다. 몸이 두꺼워지면 안 된다’와 같은 사회적 제약 때문에 여성들은 몸을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근육도 부족한 경우가 많아요. 이런 분들은 나이가 들수록 몸이 아파져서 생존을 위해 운동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뒤늦게 체육관을 찾아오세요”

“체력이 좋아지면 사는 게 편해져요. 자전거를 타고 운전면허를 따는 이유는 자신의 가동성을 높이기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내 몸도 내 맘대로 못 쓴다면 활동 가능성은 줄어들죠. 체력이 안 좋으면 높은 산에 올라갈 수 없어 많은 걸 못 보는 것처럼요. 내가 내 몸에 갇혀있게 돼요. 좋은 체력을 갖는 건 게임으로 치면 좋은 장비를 갖는 것과 같아요. 삶을 풍요롭고 주체적으로 만들어줘요”

여자 같지 않다고?
“이런 여자도 있다”

170cm 넘는 키에, 80kg 넘는 몸무게. 짧은 머리에 근육질 몸을 갖은 윤주 씨는 ‘여자 같지 않다’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어야 했다. 선수로 가장 활발히 활동했던 2016년 그는 1등을 가장 많이 했지만, 어떤 후원도 받지 못했다. “다른 여자 선수들은 다 받았어요. 남자 같은 여자 선수에게 여성 옷을 입히지도 못하고 남성 옷을 후원할 바엔 남자에게 후원하겠다는 거죠. 그때 서러워서 많이 울었어요. 옷이야 사 입으면 그만인데, 선수로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구가 자신이 후원자라며 봉투에 3만 원을 넣어줬는데 감동이었어요”

윤주 씨는 지난 4월 속옷 브랜드 ‘톤포투’ 광고 모델로 발탁됐다. “세상이 바뀐 거죠. 이런 몸이 더 멋있다는 거잖아요” 광고 문구는 ‘FOCUS ON WIGHT. THE WEIGHT YOU LIFT’, 몸무게가 아닌 들어 올리는 무게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윤주 씨의 운동하는 모습이 광고에 실렸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는 속옷 광고에 여성들은 열광했다. 이 광고로 윤주 씨는 SNS 인기스타가 됐다.

‘톤포투’ 광고 속 이윤주 크로스핏터
‘톤포투’ 광고 속 이윤주 크로스핏터ⓒ톤포투
‘톤포투’ 광고 속 이윤주 크로스핏터
‘톤포투’ 광고 속 이윤주 크로스핏터ⓒ톤포투

“이런 여자도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윤주 씨가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다. “제가 대중적인 ‘여성’의 외양은 아니잖아요. 댓글에 ‘여자냐 남자냐’라는 말이 많아서 계정 이름에 ‘운동하는 여자’라고 써놨어요. 저는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가 아니에요. 운동과 여성성을 모두 사랑해요. 미용 목적이 아니라 힘과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여성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더 많은 여성이 ‘여성 운동’ 프레임을 깨고 나올 수 있게요”

“유튜브에서는 다소 못나고 우스운 모습이라도 최대한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려고 노력해요. 그동안 인스타그램 등 여타 SNS를 할 때는 저도 제일 잘 나온 사진만 고르고 골라서 전시하려는 마음이 컸어요. 하지만 유튜브에선 꾸미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려서 다른 분들이 ‘이래도 괜찮구나’하고 마음이 좀 더 편해졌으면 좋겠어요”

한 유튜버는 윤주 씨가 약물 주사를 맞았다는 악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여자라면 윤주 씨처럼 근육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제가 약물을 투여한 사람처럼 몸이 좋진 않은데 하하. 물론 남자들이 근육 만들긴 더 쉽죠. 과학적으로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여성들이 운동하는 데 그것을 한계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처럼 부피가 커지려면 많이 먹어야 해요. 많이 먹지 않으면 몸집이 작을 수밖에 없죠”

이윤주·신경해·서하얀 크로스핏터
이윤주·신경해·서하얀 크로스핏터ⓒ이윤주 제공

윤주 씨는 동료인 신경해·서하얀 코치와 함께 여성 크로스핏 커뮤니티 ‘움직여’를 운영하고 있다. “크로스핏은 비교적 최근에 탄생한 신생 운동임에도 남자들의 카르텔은 다른 어떤 운동 못지않게 견고해요. 여자 크로스핏 선수들이 2부 리그나 번외 이벤트 정도로 인식되는 등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여자들만의 운동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이들은 수익금을 여성단체, 어린이단체 등에 후원하고 있다.

“여성들끼리 편하게 운동하는 공간도 필요했어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운동하는 공간에서 남성 회원들은 코치가 있는데도 여성 회원들을 가르쳐주려고 해요. 또 여성들은 운동하고 지쳐 쓰러져 있는데 누군가 날 쳐다보는 느낌을 받아야 하죠. 더워서 옷 벗고 운동하고 싶은데 그 자체로 성적 대상화 돼 버리기도 해요. ‘거기선 상탈(상의 탈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댓글이 많이 달려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픈 윤주 씨다. “제 유튜브를 보고 ‘동기부여가 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운동이라고는 전혀 안 했는데 처음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코치님 같은 근육이 갖고 싶어졌다’ 등등의 댓글을 자주 접할 때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껴요. 지금보다 많은 사람에게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좀 더 큰 스피커가 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어요. 일단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스피커의 꿈을 이루도록 노력 중이에요”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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