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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공기 반, 소리 반’과 산업예비군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8년 전쯤, 한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박진영 씨의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발성법 조언이 엄청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노래를 부를 때에는 공기와 소리가 반씩 섞여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 같은데 이 조언 때문에 수많은 가수 지망생들이 ‘공기 반, 소리 반’을 연습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공기 반, 소리 반’이 노래의 진리일까? 발성법에 대해 아는 게 전무한 나로서는 이 명제를 평가할 능력이 없다. 다만 당시 오디션 심사위원계의 쌍벽으로 군림했던 가수 이승철 씨는 “공기 반, 소리 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무슨 공기밥도 아니고…”라며 박진영 씨의 견해를 무시했다. 전설로 불리는 가수들의 견해가 이렇게 다르니 ‘공기 반, 소리 반’이 꼭 진리인 것은 아닌 모양이다.

‘공기 반, 소리 반’은 당연히 이 칼럼의 주제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영향력이 막강한 프로듀서 박진영 씨의 한 마디에 오디션에 참여했던 수많은 가수 지망생들이 영문도 모른 채 ‘공기 반, 소리 반’을 진리처럼 받아들여야 했다는 점이다. 이는 자본주의 300년 역사에서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던 산업예비군의 슬픈 운명이기도 하다.

시장이 완전고용을 만들어준다고?

주류경제학은 “원론적으로 시장은 늘 완전고용 상태를 유지한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진심으로 믿는다.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처럼 시장에서 살고 팔면 ‘보이지 않는 손(가격)’의 역할에 따라 노동시장의 초과공급도, 초과수요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이 최저임금제를 반대하는 명분도 이것이다. 인위적으로 노동력의 가격(임금)을 올리면 시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는 대부분의 실업 문제도 정부가 복지정책을 펼치는 바람에 시장의 기능을 제한해 발생한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게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가? 최저임금의 역사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1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유럽에서 최저임금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고작 80년 전이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이 없었던 나머지 200년 동안은 실업이 없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럴 리가 있나? 기계화로 일자리를 잃어 분노한 노동자들이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을 벌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제도가 없었던 1960년대 도시 지역의 공식 실업률은 16~17%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는 도시 지역 이야기일 뿐이고 농업 분야까지 감안하면 전체 노동력의 약 절반이 실직 상태였다. 시장이 완전고용을 달성케 해준다고? 웃기는 소리 작작들 해라.

산업예비군과 실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은 실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인류 7,000년 문명의 역사를 돌이켜보라. 자본주의 시대를 빼면, 실업이 지금처럼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우리 민중들은 일거리가 없어서 굶어죽었던 게 아니라 지배자들이 너무 일을 많이 시켜서 죽어나갔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 민중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죽는다. 단언컨대 실업은 자본주의가 탄생시킨 새로운 괴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자본주의 이전 지배자들은 민중들을 아무리 가혹하게 다뤄도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었다. 고대 귀족들은 노예의 합법적인 소유자였고, 중세 봉건영주들은 소작농을 부려먹을 합당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

1874년 뉴욕에서 벌어진 실업자들의 시위를 경찰이 진압하는 모습.
1874년 뉴욕에서 벌어진 실업자들의 시위를 경찰이 진압하는 모습.ⓒ기타

그러나 자본주의는 달랐다. 명색이 시민혁명으로 이뤄진 사회인데, 자본가라고 노동자들을 노예 부리듯이 부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노예 부리듯 부려야 돈을 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을 노예 취급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바로 실업이다.

실직상태에 몰린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그 어떤 부당하고 가혹한 요구도 거절하기 어려워졌다. 일자리를 잃으면 죽으니까! 그래서 민중들은 노예계약에 준하는 서류에 기꺼이 서명하고 살인적인 노동환경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안 하면 죽으니까! 그래놓고 자본가들은 “우리는 합법적 계약에 의해 쟤들을 탄압하는 거예요”라며 히죽거렸다.

칼 마르크스는 이렇게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실업층을 산업예비군(industrial reserve army)이라고 칭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내모는 노동자들이 득실거려야 자본은 노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산업혁명 시기 노동자들이 하루 일당 1,000원에 18시간씩 살인적인 노동을 하는 계약을 맺은 것은 절대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게 자본가들 주장처럼 자유계약일 리도 없었다. 노동자들이 그 계약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 계약조차 못하면 런던 거리에서 나뒹구는 산업예비군에게 일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실업이 발생하는 이유는 최저임금 탓도, 시장의 실패 탓도, 뭣도 아니다. 실업이 존재해야 자본가가 노동자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삶

다시 ‘공기 반, 소리 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잘은 모르지만 짐작컨대 ‘공기 반, 소리 반’은 여러 발성법 중 하나일 것이다. 박진영 씨는 그 발성법을 좋아하고, 이승철 씨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자기 개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노래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닌 한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들은 무조건 ‘공기 반, 소리 반’ 창법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고? 그래야 박진영 씨의 눈에 들 테니까. 박진영 씨 눈에 좀 안 들면 안 되냐고? 안 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10명도 안 되는데,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은 수만 명이기 때문이다. 수만 명의 산업예비군이 호시탐탐 내 자리를 노린다. 참가자는 박진영 씨의 ‘공기 반, 소리 반’에 복종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

나는 진정으로 민중들이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빈곤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산업예비군이 존재하는 한 그 어떤 노동자도 복종을 거부하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하나?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 시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아니, 해결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해결하지 않는다. 그게 그들의 통치 기술이기 때문이다. 기계화가 빨라질수록 산업예비군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이때 산업예비군을 죽음의 위기에 내몰면 민중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은 말살된다. 이 사회는 더 이상 인간이 사는 사회가 아니게 된다.

실업자가 되더라도 죽지 않을 권리, 아니 죽지 않을 권리를 넘어 인간답게 살아있을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복지국가의 첫 번째 사명이다. 내가 전국민 고용보험제도의 완성을 열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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