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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설명 배달 왔습니다!” ‘철학계의 구몬’ 전기가오리가 전하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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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시작은 쉬워도 꾸준하기가 어렵다. 작심삼일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진입 장벽이 높거나, 충분한 교육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등 곳곳에 도사리는 방해 요소 탓에 집으로 배달되는 학습지 하나도 꾸준히 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물며 ‘철학’이라는 심오하고 낯선 학문을 공부하려 든다면,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찾아오는 외로움과 혼란스러움에 결국 시작과 함께 포기하기 일쑤다.

‘전기가오리’는 그런 의미에서 대체할 모델이 없다. 월 구독료 만 원을 내면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영국・미국 철학 논문을 접할 수 있으며, 이를 수월하게 이해하기 위한 설명 원고까지 제공된다. 매달 제공되는 도서와 설명 덕에 구독자들 사이에서는 ‘철학 구몬’으로도 불린다. 전기가오리의 철학은 겁 먹을 필요도, 거대한 목적성에 짓눌리지 않아도 된다. 그저 ‘깊게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전기가오리’는 서양 철학과 관련된 의미 있는 문헌을 번역해 출판물로 만들어 구독자에게 제공하는 공부 모임 단체다. 단체명은 철학가 메논이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말문을 잃게 한 소크라테스를 전기가오리에 빗댄 일화에서 착안했다. 표면적으로는 출판사같지만, 출판의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양 철학 문헌 번역・출판 및 공부 모임 ‘전기가오리’ 운영자 신우승 씨가 1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17
서양 철학 문헌 번역・출판 및 공부 모임 ‘전기가오리’ 운영자 신우승 씨가 1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17ⓒ정의철 기자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모처에서 만난 신우승(40) 씨는 ‘전기가오리’를 2016년부터 약 4년 간 혼자 운영해오고 있다. 몇 천명 가량 되는 구독자에게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매달 다른 주제의 논문을 선정하고, 번역하고, 출판하고, 배송까지 도맡아하고 있다. 논문과 함께 배송되는 설명 원고와 아울러 오프라인 강의와 온라인 강의 등을 통한 공부 모임도 나선다.

4년 전 공부 모임 ‘전기가오리’ 창설
“위계 질서 강한 교육 시스템에 ‘환멸’ 느꼈어요”

직접 논문을 선정하고 번역해 수준급의 출판물을 선보이는 우승 씨가 지금의 ‘전기가오리’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즉흥적이면서도 확실했다. 그의 선택의 이유는 대부분 그 당시의 강렬한 흥미였다. 요컨대 아주 오래전부터 철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리라 짐작한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학부 전공은 스페인어였다. 우승 씨는 “음악을 꿈꿨는데 부모님이 반대를 하셔서 ‘홧김에’ 간 거예요”라며 웃었다.

“저는 정말 즉흥적인 사람이에요. 대학교에서는 당연히 적응을 못 했죠. 학점도 낮았고 학사경고도 3번이나 받았어요, 하하. 10학기 정도 다니고 계절학기까지 들어서 간신히 졸업했죠. 그 당시에는 미술 비평에 관심이 많아서 미학을 공부하려고 대학원에 갔어요. 또 시간이 지나서는 서양 철학에 관심이 생겨서 철학과로 다른 대학원을 갔고요. 한 학기도 못 채우고 나왔습니다. 교수랑 대판 하고 나왔어요, 하하.”

‘전기가오리’는 단순히 서양 철학에 관심이 있어 설립한 공부 모임은 아니었다. 그가 국내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느낀 감정은 ‘환멸감’이었다. 양질의 교육 서비스가 제공되지도 않았고, 텍스트 분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외부 세미나 등 학교 바깥 환경에서도 불만족을 느꼈다. 우승 씨는 무엇보다 견고한 위계 질서가 작동하는 환경에서 답답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마지막 대학원에서 1년 정도 공부하며 느낀 건 ‘환멸감’이었어요. 저는 자유분방한 사람인데 위계 질서가 너무 강하더라고요. 학생이 틀렸을 때 교수가 정확하게 지적하지 않는 것, 젠더편향적 발언을 했을 때도 얼렁뚱땅 넘어가버리고, 철학은 텍스트를 정확히 읽는 게 중요한데 그런 부분이 많이 미비했어요. 젠더, 장애, 질병, 이런 것에 있어 대화가 이뤄지지도 않았고요. 국내 철학 교육 환경이 모두 그런 건 아니예요. 제가 운이 나빴죠.”

서양 철학 문헌 번역・출판 및 공부 모임 ‘전기가오리’ 운영자 신우승 씨가 1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17
서양 철학 문헌 번역・출판 및 공부 모임 ‘전기가오리’ 운영자 신우승 씨가 1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17ⓒ정의철 기자

“또 학생에 대한 정신적 지배가 존재하더라고요. 이걸 가르쳐줄테니 너(학생)은 시키는 뭔가를 해라, 추리닝 입지 마라, 등등 말도 안 되는 인격침해가 있었어요. 학생이 참아야 교육 서비스를 해주는 구조였죠. 번역 표절도 심했고요. 제가 느끼기에는 학교 안이든 바깥이든간에, 기댈만한 교육자가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공부 모임을 꾸리게 된 거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설명, 또 설명
“지역, 연령, 장애 등 격차 없이 철학 배울 수 있어야 해요”

7년 전 칸트 철학을 공부하는 소모임에서 시작한 ‘전기가오리’는 구독자에게 ‘구체적인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까지도 우승 씨는 공부 모임을 함께 하던 6명의 전공자에게 자문을 받으며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전기가오리’가 매달 구독자에게 제공하는 물질적 혜택은 출판된 번역 도서와 도서의 설명 원고, 철학 텍스트에서 한 문장을 뽑아 그 문장의 맥락, 개념, 문제 등을 설명하는 ‘천 논문도 한 문장부터’, 짧은 영어 텍스트를 정확히 읽도록 돕는 ‘영어 텍스트 읽기를 도와드립니다’ 원고, 그 때 그 때 시의적절한 주제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사고할 수 있게 돕는 소책자 등으로 이뤄진다. 이는 ‘전기가오리’가 출판사라고만 부를 수 없는 이유다.

서양 철학 문헌 번역・출판 및 공부 모임 '전기가오리'의 후원자에게 제공되는 물질적 혜택.
서양 철학 문헌 번역・출판 및 공부 모임 '전기가오리'의 후원자에게 제공되는 물질적 혜택.ⓒ제공 = 전기가오리

이 물질적 혜택은 원래 매달 발송됐지만, 최근 운영비 등을 이유로 격달에 한 번씩 받아볼 수 있게 조정됐다. 실제로 받아보면 구성이 굉장히 풍성하고, 디자인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기가오리’의 일은 거의 우승 씨가 도맡지만 디자인은 외주를 맡긴다. 디자인 역시 기존의 틀을 벗어난 독특하고 도전적인 표지를 지향한다.

“예쁜 게 좋잖아요, 하하. 디자인이 예쁜 것만을 만드는 작업은 아니지만, 아름답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해요. 디자인은 꽤 큰 고려 대상이에요. 도서를 만들 때 일반적으로 통용됐던 문법들을 깨 보고 싶어요. 표지에 들어가야 하는 정보를 일부러 누락하거나.”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전기가오리’의 목적은 ‘텍스트를 읽다가 의구심이 들어 원서를 뒤적일 필요가 없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의구심은 한국어 문법을 무시한 기계적인 번역이나, 방대한 양의 입문서, 대형 강의 등을 통해 ‘어디선가 들어본’ 수준의 얕은 지식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비롯되곤 한다.

“철학 공부에서 중요한 건 개념을 잘 외우는 거예요. 들어본 것과 아는 것은 다르거든요. 어려워도 전문적 텍스트, 석사 논문 하나 쓰는 데 문제 없을 만큼의 지식을 제공하고 싶어요. 설명 원고가 가장 어려워요. 사람들이 뭘 궁금해 할까, 뭘 모를까를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전기가오리' 물질적 혜택 중 하나인 '설명 원고 읽고가세요' 갈무리.
'전기가오리' 물질적 혜택 중 하나인 '설명 원고 읽고가세요' 갈무리.ⓒ제공 = 전기가오리

‘영어 텍스트 읽기를 도와드립니다’는 우승 씨가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원고 중 하나다. 구독자들도 이 원고를 가장 어려워한다. 하지만 영어로 쓰인 원 논문을 직접 번역하고 한국어로 습득하는 훈련은 더 나은 한국어 표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우승 씨는 강조했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길 때 너무 기계적으로 옮기다보니까, 막상 번역한 한국어가 도움도 안 되고 오히려 더 혼란스럽게 할 때가 많아요. 어떤 단어가 한 번 한국어로 굳어지면 맥락과는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번역되는 현상도 있고요. 그러면 교수는 ‘영어로 읽으면 되잖아’라고 하는데… 하하, 이해가 안 가죠. 한국어를 학술어로 인정하지 않는 것들 말이에요. 영어로 읽으면 되지… 한국어가 모국어인데 어떻게 그러나요?”

'전기가오리' 물질적 혜택 중 하나인 '영어 텍스트 읽기를 도와드립니다' 1회차 갈무리.
'전기가오리' 물질적 혜택 중 하나인 '영어 텍스트 읽기를 도와드립니다' 1회차 갈무리.ⓒ제공 = 전기가오리

물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과 더불어 ‘설명 배달 왔습니다’, ‘인터넷은 논문을 싣고’, ‘인터넷은 좌판을 깔고’ 등 다양한 오프라인 및 온라인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중 ‘설명 배달 왔습니다’는 우승 씨가 직접 구독자를 찾아가는 서비스로, 매주 목요일마다 광주, 대구, 대전, 제주, 울산 등 지역 제한 없이 방문해 소규모 강의를 진행한다. 다만 올해 일정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모두 무기한 연기됐으며, 준비된 대부분의 오프라인 강의를 온라인으로 대체해 진행하고 있다.

“규모는 도시마다 천차만별이에요. 소도시는 3분 정도 모인 적도 있었는데, 몇 명이 모이는 지는 중요하지 않죠. 저는 항상 이해가 안 됐어요. 철학 공부를 한다는 사람들의 집단이 3~40대 대졸, 비장애인으로 전제된게요. 너무 높은 기준이 자연스럽게 전제돼 있고 그것 때문에 배제된 사람이 많아요. 그런 분들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고 싶어요.”

주제 선정, 번역, 기획, 강의까지 1인 체제
“철학 배우는 이유? 학문을 어필하는 건 이상해요”
더 폐쇄적으로, 그러나 더 자유롭게 유영할 ‘전기가오리’

2017년 몇 백 명 단위였던 구독자는 2020년 현재 4천 명 이상으로 훌쩍 뛰었다. 하지만 우승 씨는 그 때와 다름없이 논문을 선정해 번역하고, 물질적 혜택을 구성・기획하고, 구독자들과 소통하며 온라인 강의까지 모두 홀로 도맡아 하고 있다. 직원을 들일 생각은 없다고. “사람 쓰는 게 무서워요. 금방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요”라는 게 그 이유였다.

‘전기가오리’만의 강점을 묻자 우승 씨는 “대체 모델이 없어요”라는 답을 내놨다. 철학적 주제에서도, 텍스트 측면에서도, 온라인 및 오프라인 공부 모임 방면에서도 ‘전기가오리’ 같은 곳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승 씨는 교육 서비스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결국 운영비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철저히 구독자만을 위한 폐쇄적 운영 방식을 고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위의 모든 물질적・비물질적 혜택은 철저히 구독자에게만 제공되는 서비스다.

“구독자가 많아지면 좋겠지만 저 혼자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으니까요, 이제 거의 한계점에 다다른 것 같아요. ‘전기가오리’는 점점 더 폐쇄적으로 갈 거예요. 가끔 진보적으로 교육 PDF파일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말도 안 돼요. 현금이 안정적으로 잘 돌게 하는 게 중요하죠. 그걸 위해 폐쇄성을 택한 거고요. 요새는 제가 뭐라고 외부 강의도 들어오는데, 그런 것도 다 안 해요. 철학과 관련된 지식은 무조건 ‘전기가오리’ 안에서만 공유하고 싶어요. 가끔 사람들이 돈 이야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돈이 돌아야 서로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서양 철학 문헌 번역・출판 및 공부 모임 ‘전기가오리’ 운영자 신우승 씨가 1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17
서양 철학 문헌 번역・출판 및 공부 모임 ‘전기가오리’ 운영자 신우승 씨가 17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0.07.17ⓒ정의철 기자

우승 씨가 ‘전기가오리’의 교육 서비스로 구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정확하고 구체적인’ 철학적 지식이다. ‘인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역사와 철학, 문학이 뒤섞인 수박 겉핥기 식 철학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다. 우승 씨와 ‘전기가오리’는 다소 어려워도 전문적인 텍스트를 읽는 훈련을 거쳐 적어도 대학원 석사 소논문을 쓸 때 요긴하게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수준의 지식을 함양하는 것, 그리고 학문으로서의 철학적 담론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저 ‘인문학’이라는 말 되게 싫어해요. 대형 강의 같은 데서 ‘인문학’이나 ‘철학’이라는 주제를 많이 다룹니다만, 가 보면 철학 내용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해요. 그런 건 싫어요. 어려워도 전문적인 텍스트를 읽고 배워서 가져갔으면 해요.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에게 소개한다는 이유로 디테일을 뭉개서 설명하는 건 싫어요. 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최소한 전공 학부 수준으로는 소개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기자가 ‘철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라고 묻자 우승 씨는 망설이지 않고 “없어요!”라며 웃었다. 기본적으로 학문은 문제 해결을 위해 존재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철학을 ‘꼭 배워야 하는 이유’라거나 철학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학문을 어필한다는 건 이상해요. 메타적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저 역시 철학에 흥미가 생겼을 때, ‘내가 왜 철학을 좋아하지?’ 같은 메타적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 생각은 판타지 같아요. 삶의 의미? 존재 이유? 이런 것도 넌센스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런 메타적 질문 말고도, 철학적 질문이 정말 많이 있어요. 그래서 철학은 혼자 할 수 없는 학문이에요. 다양한 철학적 질문을 함께 즐기며 공부하실 수 있게끔 돕고 싶습니다.”

▲ ‘전기가오리’ 웹 사이트:https://www.philo-electro-ray.org

허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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