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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에서 ‘가짜뉴스’ 포장지를 걷어내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전문가들은 어렵게 관련 논의가 시작된 만큼 ‘동성애를 반대하면 잡혀간다’라는 등 보수 개신교의 가짜뉴스를 걷어내고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생산적인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20일 정의당 차별금지법제정추진운동본부 주최로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의 발제 ‘차별금지법, 쟁점과 과제’를 중심으로 토론이 진행됐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정혜영 의원을 비롯한 당 관계자들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차별금지법 발의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등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2020.06.29.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정혜영 의원을 비롯한 당 관계자들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차별금지법 발의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등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2020.06.29.ⓒ뉴시스

‘차별시정’ 강제할 수 있을까?
“차별 구제 실효성 높이려면 필요”
“강제적 처분은 행정소송 이어질 수밖에”

현재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과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이 있다. 두 법안 모두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등 특정한 차별금지 사유와 영역에 따라 제정한 개별법을 넘어 모든 사유와 영역을 포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법안의 차이점이자 차별금지법 제정의 핵심 쟁점은 ‘차별 시정명령제도’ 여부다. 시정명령제도는 시정 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에 대한 불복절차로 이의신청, 소 제기, 집행정지 신청 등을 규정한다. 현행법상 차별 행위가 발생하면 인권위가 시정 권고를 해 법무부나 고용노동부에 시정명령을 내리도록 한다.

장 의원 등 법안은 인권위가 차별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인권위 시안엔 없는 조항이다. 전문가들은 차별 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해당 제도가 필요하다면서도, 인권위 명령이 법원 판결에 종속될 수 있다며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홍 교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도 인권위가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면서도 “시정명령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빈발하게 되면, 인권위의 시정 권고는 사실상 소송의 전 단계로 전락하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패소하는 일이 반복되면 인권위의 권고와 명령은 결국 소송에서 패소하지 않도록 그 범위와 강도를 소극적으로 설정하게 된다”라며 “시정명령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시정 권고의 효과를 향상하는 비 강제적, 비 법적 수단의 활용을 회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라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시정명령제도가 인권위 차별 구제 방식의 장점인 ▲진정을 받아 신속하고 저렴하게 처리 ▲독립적 조사 ▲실정법에 제한되지 않는 넓은 의미의 인권 관점에서 문제 해결 ▲적대적 대립이 아닌 설득적·협력적 인권구제 ▲문제의 근본적 해결 지향 등을 잃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과 인권위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표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인권위는 기자회견에 앞서 전원위원회를 열고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 의견표명의 건'에 대한 의결을 진행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인권위가 공식적인 의견을 내는 것은 14년 만이며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를 상대로 차별금지법 관련 권고안을 낸 바 있다.2020.6.30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과 인권위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의견표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인권위는 기자회견에 앞서 전원위원회를 열고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 의견표명의 건'에 대한 의결을 진행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 인권위가 공식적인 의견을 내는 것은 14년 만이며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를 상대로 차별금지법 관련 권고안을 낸 바 있다.2020.6.30ⓒ뉴스1

유승익 신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역시 “결국 법원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될 수 있다”라고 홍 교수의 발제에 동의했다. 그는 “시정명령은 강제력을 수반하는 행정처분의 성격을 갖는다. 시정절차에는 사법적 절차가 준용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인권위가 일정 정도 행정기관의 위상을 갖는다는 의미”라며 “인권위가 또 하나의 행정기관이 된다면 역설적으로 더 강한 통제를 요구받을 수도 있다. 차라리 행정부 내로 편입하는 것이 권력기관 편성원칙에 부합하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곤란해질 수도 있다”라고 짚었다.

유 교수는 또 “기존 법에서 시정명령제도는 작동하지 않았다”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경우 법 시행 후 11년간 인권위가 시정 권고한 133건 중 법무부 장관의 시정명령 집행은 2건에 불과했다. 사문화됐다는 평가다. 연령차별금지법의 경우 시행령상 시정명령을 심의할 위원회 규정조차 미비하다”라고 지적했다.

인권위 시안에서 해당 규정이 빠진 이유에 대해 서수정 인권위 차별시정총괄과장은 “시정명령은 강제 처분이다. (인권위 명령이) 사법적 통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인권위의 역할은 차별을 다양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대신 시정명령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중대한 사안에 있어 피해자 소송지원을 통해 구제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했다”라고 설명했다.

혐오세력의 우려와 달리 현재 차별금지법 논의에서 가장 강력한 처분은 시정명령이다. 차별한 사람을 직접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차별당했다고 신고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줬을 때만 처벌하고 있다.

처벌과 금지는 다르다고 이진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말했다. 그는 “혐오세력은 차별금지법이 차별 행위를 처벌한다며 차별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 개인적인 영역에 머물게 한다”라며 “금지는 차별하는 나의 위치를 알아차리게 해주는 사회적 사인이다. 무엇이 차별인지 인식해야 차별하는 사람도 평등을 향한 도전과 실천이 가능해진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나 차별의 가·피해자가 될 수 있다. 개인의 책임과 처벌로 해결하지 않고 사회적 구조와 책임의 문제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차별하는 사람의 권리를 제한·처벌하는 게 아니라 권리를 활성화하고 추동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통해 국가적 원칙과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가·피해자로 위치를 고정하지 않는 것이 평등을 향해가는 동료로서 만날 수 있는 시작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오른쪽)가 2일 국회에서 ‘평등법(차별금지법)’ 추진을 위해 방문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2020.07.02
정의당 심상정 대표(오른쪽)가 2일 국회에서 ‘평등법(차별금지법)’ 추진을 위해 방문한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2020.07.02ⓒ정의철 기자

소수자 내 소수자 보호 위해
‘복합차별’ 조항 넣어야
괴롭힘 인정해 혐오표현 규제도

차별금지법을 통해 차별의 범위를 명시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홍 교수는 강조했다. 두 법안은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차별 광고 등을 차별로 정했다. 간접차별이란 외견상 차별금지 사유와 관련해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했으나 결과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불리하게 된 경우를 말한다.

장 의원 등의 법안엔 ‘복합차별’이 더해졌다. 이를 별도로 규정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홍 교수는 “어느 하나의 사유에 근거했는지 각각 입증할 필요가 없게 해서 소수자를 두텁게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여성 노인이 차별받았다면 본인이 여성으로서 차별받은 것인지, 나이 때문에 차별받은 것인지 각각 개별 입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차별받는 자가 차별을 주장하기 쉽게 하는 것이고, 특히 여성 노인과 같은 ‘소수자 내의 소수자’를 보호하는 규정”이라고 설명했다.

교차적 차별을 경험하는 여성들에게 복합차별의 의미가 크다고 김신아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는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성차별과 성 평등에 대한 정의 규정에서 특정한 여성들을 배제하며 단일한 집단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그러나 현실의 여성들이 교차적인 정체성과 위치에서 존재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김 활동가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2018년 ‘교차적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채택할 것을 권고’한 사실을 언급하며 “미투 운동에서도 청소녀, 성매매 여성, 성수소자 여성, 이주여성, 장애여성 등 소수자들은 차별, 낙인, 혐오, 불이익으로 인해 말할 수 없었다. 피해구제에 있어서 하나의 사유만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경험된 차별을 그대로 인정받고 구제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2020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시민들의 열망과 인권위원 권고를 받아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전면적으로 나서기를 촉구한다"며, "국회는 평등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고 촉구했다. 2020.7.2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2020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시민들의 열망과 인권위원 권고를 받아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전면적으로 나서기를 촉구한다"며, "국회는 평등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고 촉구했다. 2020.7.2ⓒ뉴스1

두 법안 모두 차별로 규정한 ‘괴롭힘’ 부분은 차별금지법으로 혐오표현을 금지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혐오표현은 혐오·차별 문제에서 가장 심각한 의제로 떠올랐지만, ‘표현’이기 때문에 모든 혐오표현을 차별 구제의 대상으로 정할 수는 없다고 홍 교수는 지적했다.

다만 괴롭힘과 혐오표현 사이에 공통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괴롭힘이 인정되는 영역에서 혐오표현도 괴롭힘의 일환으로 규제될 수 있다. 홍 교수는 “혐오표현은 대체로 소수자에 대한 편견·차별·적대를 확산·정당화·조장·촉진·고무하는 표현을 뜻한다. 다만 괴롭힘은 표현 행위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물리적 행위로도 가능한 점이 다르다. 괴롭힘은 고용·교육·서비스·공공서비스 영역에서의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그 영역의 혐오표현은 괴롭힘의 한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평등에 관한 국가 책무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법률을 만든다는 데 있다고 이진희 공동위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차별금지법만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불평등을 없앨 수 없으나, 차별금지법도 못 만든 채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차별금지법은 차별과 평등에 관한 사회적 대화와 탐구가 제대로 시작될 수 있도록 하는 법, 사회적 대화가 공정하게 오갈 수 있게 하는 규칙을 만든 법”이라고 말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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