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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벤처캐피탈, ‘경제력 집중’ 방지 대책 담은 법안에도 우려 나오는 이유
세계 각국의 기업형 벤처캐피탈.
세계 각국의 기업형 벤처캐피탈.ⓒ기타

기업형 벤처캐피탈(CVC·Corporate Venture Capital) 규제 완화 방안이 발표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일반지주사가 CVC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해 벤처 투자를 활성화한다는 방침이다. 금산분리 원칙이 깨지면서 야기될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총수일가 사익편취 등 부작용 우려도 나온다. 국회에는 문제 해소 방안을 담은 법안이 발의돼있다. 전문가들은 해당 법안에 합격점을 주면서도 지주사의 CVC 보유 허용에는 반대 입장을 보인다. 이들은 예외적 규제 완화가 점차 확대되면서 금산분리 원칙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와 국회는 지주사의 CVC 보유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관련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의원 발의 법안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정부는 별도 개정안을 내지 않고 의원안을 바탕으로 부작용 방지 방안 등을 국회와 논의할 계획이다.

CVC는 대기업이 출자해 자회사 형태로 설립한 벤처캐피털(VC)이다. 재무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적인 벤처캐피탈과 달리, 전략적 이익을 동시에 추구한다. 전략적 이익은 CVC를 소유한 모기업의 사업 확장, 외부 자원(기술·인력) 탐색·확보, 신시장 개척 등을 이른다. 기업이 자체 연구 개발을 하기보다 자본 투자를 통해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방식이다.

현행법상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지주사가 아닌 일반지주사는 금융회사 소유가 금지된다. 대기업이 금융회사를 지배하면, 막대한 자본을 통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 경제력 집중이 심화할 수 있다. 금융자본이 총수일가의 사금고로 악용될 여지도 있다. CVC도 투자자를 모집해 자금 마련하는 만큼 금융회사로 분류돼, 지주사가 보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지주사 체제 대기업 집단의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벤처지주회사 제도를 마련했다. 벤처지주사는 벤처기업을 자회사로 하는 지주회사다. 자회사에 대한 지분 보유 기준은 20% 이상이다. 일반지주사는 자회사 주식을 40% 이상 보유하도록 하고 있으나, 벤처지주사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또한, 벤처지주사는 계열사가 아닌 국내회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하지 못한다. 벤처지주사 투자는 5% 미만이거나 20% 이상이어야 하는 셈이다.

CVC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벤처 업계는 벤처지주사 제도 활용이 사실상 어렵다고 주장한다. 자회사 지분 보유 규제 탓에 단계적인 투자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2001년 벤처지주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이후 이 제도를 활용한 사례는 1건에 그친다.

정부는 벤처 투자 활성화를 명목으로 지주사 CVC 소유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 공식적인 계획이 제시된 건 지난달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다. 당시 정부는 산업 혁신 추진 방안으로 지주사의 CVC 제한적 보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이 방안이 도입되면 벤처자금을 신규로 유입하는 등 벤처시장을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를 통해 이번달 중으로 구체적인 방안으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지난 20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기업형 벤처캐피탈을 조속히 결론을 내고 도입하는 등 혁신성 높은 벤처기업에 시중 유동성이 충분히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을 적극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반적인 벤처캐피탈과 기업형 벤처캐피탈 비교.
일반적인 벤처캐피탈과 기업형 벤처캐피탈 비교.ⓒ국회입법조사처

문어발 확장·총수 사익편취 우려…안전장치 담은 이용우 법안

전문가들은 CVC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을 지적한다. 이들은 금산분리 원칙이 훼손되면서 스타트업 중소중견기업에 주어져야 할 사업 기회를 대기업이 독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CVC를 통해 외부 투자금을 모은 대기업이 무분별한 사업 확장에 나설 우려가 있다.

사익편취 문제도 제기된다. 지주사가 CVC를 보유하게 되면, 총수일가가 지분을 가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게 가능해진다. 회삿돈이 ‘지주사-CVC-벤처기업-총수일가’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CVC 규제 완화가 편법 승계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정상영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는 “한국은 총수일가가 5% 수준의 적은 지주사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소유 집중이 심각한 데다, 이사회 중심의 투명한 지배구조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지주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면, 자본이 총수일가에 포섭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CVC 규제 완화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7개 올라와 있는데, 이 중에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안이 가장 충실하게 안전장치를 담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 의원 발의안을 보면, 금산분리 원칙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지주사의 CVC 소유를 허용한다. 총수일가가 지분을 가진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해 사익편취 통로를 봉쇄했다. CVC 투자금도 지주사 계열사나 자기 자본만으로 조성해야 하며,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한다. CVC의 금융 기능에서 자금 모집(수신)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벤처기업에 대한 분배(여신)만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지주사는 CVC 지분을 100% 소유해야 한다. 완전 자회사가 아니면, 다른 주주가 투자하는 형태로 외부 자금을 조달하는 형태와 유사해진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활성화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06.11.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활성화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0.06.11.ⓒ뉴시스

금산분리 균열 확대 경고…“인터넷전문은행에서 이미 경험했다”

CVC 규제를 완화하면 금산분리 원칙에 균열이 점점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번 예외를 두면 원칙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학계와 시민사회가 이 의원 발의안에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지주사의 CVC 소유 허용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 의원 발의안은 CVC 규제 완화에 따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면서도 “향후에 규제를 풀어주면서 금산분리 원칙을 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일단 제한된 형태로 지주사의 CVC 소유를 허용했다가 점차 조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현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제정하면서 엄격한 대주주 적격성 자격을 뒀지만, 1년 만에 규제를 완화해버렸다”며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은산분리 원칙이 훼손됐듯, CVC로 금산분리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의원 발의안은 벤처지주사와 비교해 오히려 규제 강도가 강한 측면이 있다”며 “차라리 벤처지주사의 자회사 지분 보유 기준을 낮춰주는 게 투자 활성화에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면서 정책 목적을 달성할 방안이 있음에도 CVC 규제 완화를 시도하는 의도가 의심된다는 지적이다.

경실련 권오인 경제정책국장도 인터넷전문은행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이유로 CVC 규제 완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권 국장은 “은산분리를 완화할 때도 안전장치를 둔다고 했지만, 곧 풀어버렸다”며 “CVC 규제 완화 역시 재계의 금산분리 허용 요구가 실현될 조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의당과 경실련,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은 지난 6월 23일 ‘대기업의 벤처산업 지배 및 지배주주 이익독식 정책·입법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의당과 경실련,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은 지난 6월 23일 ‘대기업의 벤처산업 지배 및 지배주주 이익독식 정책·입법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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