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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협동이 원칙이고, 경쟁은 협동 실패의 결과물이다

“붉은 기가 흐르는 금발의 그녀는 옆으로 가르마를 타서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렸다. 몸매가 드러나는 오리엔탈풍의 오렌지색 차이나 칼라 재킷에는 한자가 수 놓여 있다. 여기에 청바지와 밝은 색 스니커즈를 매치했다. 키가 큰 그녀는 몸매도 너무 마르지 않고 보기 좋은 정도다. 스탠퍼드 대학의 생물학과가 위치한 큰 건물 앞 거대한 야자나무 아래를 지나가다가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녀에게 인사를 한다.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조안,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그녀도 상대에게 간단히 인사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고 가던 길을 간다.”

독일의 뇌 과학자 베르너 지퍼(Werner Siefer)의 책 『우리, 그리고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것들』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지퍼가 묘사한 이 여성의 이름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했던 진화생물학자 조안 러프가든(Joan Roughgarden, 1946~)이다. 러프가든은 인간이 이기적 동물이 아니라 협동적 동물임을 설파한 세계적 진화생물학자다.

러프가든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보통 진화론과 창조론이 과학과 종교의 극단적 대립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학문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러프가든처럼 기독교인이면서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학문을 ‘유신론적 진화론’이라고 부른다.

지퍼는 러프가든을 ‘긴 금발과 큰 키, 보기 좋은(?) 몸매의 여성’으로 묘사하는데, 사실 이런 표현은 매우 불편하다.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는 듯한 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러프가든은 이런 묘사를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조안 러프가든이 아니라 조나선(Jonathan) 러프가든이었다. 이름을 조나선에서 조안으로 바꾼 것이다.

이제 그가 자신에 대한 ‘여성적인 묘사’를 불편해 하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원래 남자로 태어났다. 이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은 뒤 1996년 성 전환 수술을 받았다.

진화생물학계의 거목이 성 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은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여성으로서 새 삶을 찾은 러프가든에게 많은 불이익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고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진화를 연구하는 트랜스젠더 석학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이 사실을 기독교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녀는 과연 사탄의 저주를 받은 존재인가? 웃기지 말라. 장담하는데 하나님은 그녀를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고 아끼실 것이다. 러프가든에게 신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검은머리물떼새의 삼각관계

러프가든은 동물 사회에서 동성애가 얼마나 광범하게 퍼졌는지를 연구한 학자로도 유명하다. 북아메리카에 사는 큰뿔야생양을 비롯해 돌고래, 범고래, 여우원숭이 등이 동성애를 하는 대표적 동물들이다. 상세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지만, 러프가든에 따르면 이들의 동성애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따라서 러프가든의 관점에서 보면 동성애는 당연히 사탄의 저주가 아니다. 나쁜 짓 하느라 바빠 죽겠는 사탄이 뭐 할 짓이 없어서 큰뿔야생양이나 돌고래에게 저주나 걸고 다니겠나? 사탄(Satan)은 사악해서 붙은 이름이지 멍청하거나 한가해서 붙은 이름이 아니다.

러프가든에 따르면 검은머리물떼새는 삼각관계를 유지하는 대표적 조류다. 이 새는 대부분의 경우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두 마리가 함께 살아간다. 이 새 무리에는 두 부류의 가정이 있다. 암컷끼리 질투하는 부류와, 세 마리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부류다.

검은머리물떼새
검은머리물떼새ⓒBjørn Christian Tørrissen

질투에는 당연히 경쟁이 뒤따른다. 암컷이 수컷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에 나선다. 각자 둥지를 따로 만든 뒤 상대 암컷이 알을 품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상대의 둥지를 공격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이런 가정은 매우 불행하다. 수컷이 보호해야 하는 둥지가 두 개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보호가 제대로 될 리도 없다. 이 때문에 수컷은 모든 알을 지키지 못하고, 제일 먼저 나온 알 하나만 지키는 선택을 한다. 이게 바로 경쟁이 낳은 비효율적인 세상이다.

반면 협동의 가정을 꾸린 이들은 효율적으로 자손을 늘린다. 두 암컷은 한 둥지에서 사이좋게 알을 낳고 함께 그 알을 돌본다. 수컷도 효율적으로 둥지를 지킬 수 있다. 그래서 암컷들은 하루 간격으로 알을 낳고 그들을 대부분 무사히 보호한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 가정에서 두 암컷은 서로를 매우 아낀다. 서로 깃털을 골라주는 것은 물론, 암컷끼리 동성애를 하는 장면도 종종 발견된다.

협동이 원칙이다

무엇이 종족의 생존과 번성에 더 효율적인가?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 더 효율적이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래서 러프가든은 말한다. “협동이 원칙이고, 경쟁은 협동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실패했을 때 나타나는 매우 비효율적인 생존방식”이라는 것이다.

주류경제학은 오랫동안 “경쟁이 가장 효율적인 원칙이고, 협동은 예외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생태계를 살펴보면 사정은 딴판이다. 물론 단세포 생물 같은 하등동물일수록 생존을 위한 경쟁이 만연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고등동물일수록 협동이 경쟁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인간이라고 다른가? 원시 사회 인류가 만든 공동체의 대부분은 협동을 기반으로 형성됐다. 사바나 초원의 연약한 동물이었던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는 서로 돕고 살았기 때문이다.

반면 “함께 공존하며 살자”는 합의에 실패했을 때, 인류의 경쟁이 시작된다. 나 하나만이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상대를 죽이는 처참한 짓을 한다. 그게 효율적이었을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러프가든의 말처럼 “경쟁은 협동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실패했을 때 나타나는 매우 비효율적인 생존방식”일 뿐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러프가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두고 “신의 섭리를 어긴 사탄”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하지만 진짜 웃기 것은 그렇게 말하는 종교인들 중 경쟁을 부추기는 이 비열한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자들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알기에 그 어떤 신도 우리에게 “경쟁으로 서로를 죽이며 효율적인 세상을 만들어라”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떤 종교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서로를 베고 죽이고 험담하고 밀어내라고 가르친다는 말인가?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수학능력평가 시험을 보지도 않고, 경쟁의 결과를 성적으로 매겨 누구는 천국 정규직, 누구는 천국 비정규직으로 구분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 당당하게 살아가는 러프가든이 신의 섭리를 어긴 게 아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그건 분명 서로를 잘 돌보고 보듬으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걸 대놓고 어기면서 사람을 죽음의 경쟁으로 내모는 지금 세상이 신의 섭리를 어긴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협동이 우리 삶의 원칙이다. 그리고 경쟁? 그건, 협동이라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비효율적인 부산물이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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