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리뷰] 배우로 무대에 선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이 전하는 묵직한 감동, 연극 ‘문밖에서’
연극 ‘문밖에서‘ 컨셉 사진
연극 ‘문밖에서‘ 컨셉 사진ⓒ극단 ‘해인’·극단 ‘프로젝트 타브’(TAV) 제공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가 일어나고 그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았던 그때, 직장이 문을 닫았다. 천신만고 끝에 새 직장을 얻어 충남 아산으로 내려갔다. 논과 과수원, 농장으로 둘러싸인 시골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아산 바로 옆에 평택이 있었다. 그때도 평택은 큰 기차역과 쇼핑몰, 영화관, 시장이 있는 꽤 갖춰진 도시였다. 그것이 교과서에 밑줄 그으면 외웠던 군사도시 평택과 첫 만남이었다.

평택 안정리와 성환읍에 배밭이 많았던 것도 기억난다. 아주 큰 배밭을 소유한 농장 주인을 건너 건너 알았던 기억도 있다. 연극 '문밖에서'는 3년여 살며 오고 갔던 그 평택을 생각나게 함과 동시에 무거운 돌덩어리 하나를 가슴에 얹어 주었다. 당시도 미군부대가 남아있었고 미군부대로 밥벌이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적잖게 보았다. 하지만 미군부대 담장을 수없이 지나다니면서도 굳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실과 진실을 마주하고 느끼는 씁쓸함 때문이다.

무대에는 그 1997년 보았던 배꽃이 가득했다. 이야기는 금옥이가 죽은 지 며칠 만에 발견되고 난 뒤 어느 날에 시작된다. 금옥은 무연고자라 시신을 냉동고에 보관하고 순번이 오면 화장을 한다고 한다. 금옥은 평택시 안정리 기지촌에서 과거 미군 ’위안부‘로 일을 했다. 죽기 전까지 같이 일을 했던 동료들과 같은 동네에서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평소 밥은 안먹어도 술은 못 끊었던 금옥은 혼자서 쓸쓸하게 병으로 세상을 뜬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미군 여성 조이스의 눈을 통해 1970년대 안정리 클럽으로 시간을 거슬러 간다.

연극 ‘문밖에서‘ 컨셉사진
연극 ‘문밖에서‘ 컨셉사진ⓒ극단 ‘해인’·극단 ‘프로젝트 타브’(TAV) 제공

무대는 여러 개의 문들이 모양새없이 세워져 있다. 평택 안정리 어디쯤으로 보인다. 단층의 집에 문만 있고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다. 그저 문밖 의자에 앉아있을 뿐이다. 무대 한 켠에는 철망으로 가려진 파라다이스 클럽이 있다. 시간이 2020년과 1970년대를 오고가면 철망 안과 철망 밖으로 공간도 함께 이동한다. 죽은 금옥은 동네 언니 손에 이끌려 처음 파라다이스 클럽에 오게 된다. 그렇게 각자의 사연을 안고 클럽에서 일했던 숙자와 경희, 향자, 운심이, 은실은 이제 7~80대의 노인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도 이들은 여전히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다. 노인들은 고된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한다. 이들의 요즘 매일 아침 배밭으로 일을 나간다. 클럽에서 지배인의 감시와 정부의 감시를 받던 시간이 지나갔지만, 이들은 이제 배밭 주인의 감시를 받으며 일한다. 여전히 몸을 쉴 수 없는 이들에게 내일은 불투명한 안개같다.

이 작품은 아주 소중한 미덕을 갖고 있다. 실제 기지촌 위안부였던 여성 노인들이 배우라는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무대에서 현재 여성 노인의 삶을 보여주기도 하고 70년대 시절로 돌아가 클럽에서 일하던 당시를 재현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대 위 배역의 이름을 빌어 풀어 놓는다. 전문배우가 아니지만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실린 진정성은 관객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그녀들의 존재는 이 작품 자체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어느새 연극이면서 다큐멘터리이고 한 권의 역사책이 된다. 온몸으로 격변의 시기를 겪어낸 그녀들의 존재는 무대 등장부터 코끝을 찌릿하게 만드는 이유다.

주변을 겉돌던 미군 여성 조이스의 존재 이유는 극의 마지막에 드러난다. 아버지가 쿠바인인 조이스는 쿠바 출신 미군을 잊지 못하는 숙자와 조우한다. 숙자는 옛 애인을 김영철이라 불렀다. 쿠바 이름이 너무 어려워 숙자가 지어 준 이름이다. 숙자는 영철과 '꽃반지 끼고' 노래를 부르며 서로에게 꽃반지를 끼워 줬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영철이 건넨 약속을 숙자는 잊지 않고 살고 있다. 다시 볼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만난다면 기다렸노라고, 그리고 자신을 잊지 않고 그리워했을 그에게 사랑했노라고. 배역이 아닌 진짜 숙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진실을 보게 한다. 그녀들도 그저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냈다는 것. 우리 모두처럼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연극 ‘문밖에서‘ 컨셉사진
연극 ‘문밖에서‘ 컨셉사진ⓒ극단 ‘해인’·극단 ‘프로젝트 타브’(TAV) 제공

연극 ‘문밖에서’(2020)는 2013년 화제작 ‘일곱집매’를 잇는 연장선상의 작품이다. '일곱집매'는 미국 위안부 출신 노인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사회적 명예 회복을 위한 노력 중 하나로 시작됐다. 극단 <해인>은 ‘일곱집매’, ‘그대 있는 곳까지’, ‘문밖에서’ 등 연극작업을 거치며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의 삶을 표현하는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2020년 무대에 오른 ‘문밖에서’는 ‘일곱집매’ 출연 배우들과 미군 ‘위안부’출신 여성 노인들이 배우로 함께 무대에 오른다.

연극 '문밖에서'

공연장소:두산아트센터 Space111
공연날짜:2020년 7월 25일-26일/7월 30일-8월 1일
공연시간:80분
관람연령:14세 이상 관람가
제작:극단 해인/프로젝트 타브(TAV)
스테프:작 연출 이양구/프로듀서 김진이/무대디자인 조경훈/조명디자인 고귀경/음향디자인 목소/영상디자인 이재환/의상디자인 김미나
출연진:김숙자, 김경희, 권향자, 김지원, 김시영, 한철훈, 조시현, 최설화, 박인영, 이나리, 노유나

이숙정 객원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