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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은희의 내가 만난 동남아_9] 양곤, 처음이니까 여행처럼
미안먀 양곤
미안먀 양곤ⓒ민중의소리

“지난해 여름 양곤을 다녀왔다.”

이 한 문장을 써 놓고 반나절이 넘도록 글 진도를 못 뺐다. 동남아연구를 업(業)으로 삼으며, 동남아 10개국을 다 가보리 다짐도 하고 기대도 했었다(아직 브루나이와 동티모르는 가지 못했다). 이 업계 13년차에 이르도록 미얀마와는 연닿을 일이 없었는데 지난해 여름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겨우 아흐레(9일을 뜻합니다). 그 짧은 방문을 하고 그 곳에 대해 뭘 쓰려고 하다니.

‘가 본 적 있어’와 ‘그곳을 좀 알겠어’ 사이의 간극은 넓은데, 뭐가 아는 게 있어야 쓸 거 아닌가 싶어 정리가 안 된다. 그런데 이건 좀 겸손한 버전의 망설임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잘 아는 도시가 아닌 줄 알면서도 그럴듯한 글을 쓰고픈 욕구를 누르지 못해서다. 그러니 글도 생각도 머뭇거린다.

그런데도 나는 이 도시에 대해 내가 보고 느낀 바를 한 번은 정리해 보고 싶었다. 이럴 때 나에게 용기를 주는 만트라(mantra)를 되놰본다. “글은 마스터피스(Master-piece)가 아니라 퍼스트피스(First-piece)로 쓰는 거다.” 이글의 종착지가 어디일지 결정하지 않았지만 일단 시작해 본다.

#1. 금빛 사원, 일상이 된 종교

양곤 갤러리에서 본  유화작품
양곤 갤러리에서 본 유화작품ⓒ필자 제공

베트남을 제외한 대륙부 동남아에서 ‘불교’는 종교 그 이상이다. 미얀마는 불교의 기원지인 인도에서 가장 가까운 국가이고 불교의 전래 시기도 동남아에서 가장 이르다. 고립을 자처했던 시기 불교사회주의라는 이름 하에 불교를 국가 이념화하기도 했지만, 다수종족 버마족을 비롯한 90% 국민의 불심도 깊어 보인다. 지방의 국민들도 죽기 전에 한 번은 쉐다곤을 방문하는 것을 소원으로 삼을 정도라고. 해지고 선선해지는 늦은 저녁까지 파고다를 찾는 양곤 시민들이 적지 않다. 매일의 일상 중 하나이다. 하루라도 공양을 놓치면 마음에 녹이 끼는 양곤 시민들. 그들이 그리 열심히 기도하는 소원은 무엇일까. 적잖이 궁금했다.

미얀마 최대 도시(2006년부터 더 이상 수도 아님)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는 이 도시에서 가장 압도적인 건축물이자 성지이자 국민의 마음을 모으는 구심점이다. 언덕 위에 자리한 쉐다곤 사원의 해발고도는 99m. 인간의 간섭이 없었다면 호수와 늪지와 충적평야가 대부분이었을 곳에서는 이 정도면 높은 산이라 부를만 하니 가장 높은 곳에 사원을 짓고 화려하게 치장하며 성스러움을 더했으리라.

아직까지 양곤(적어도 남부지역)에서 쉐다곤 파고다보다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종교가 성스럽기만 할까. 쉐다곤 파고다가 보이는 지역은 양곤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어두운 밤 홀로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는 쉐다곤의 야경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주변의 어둠은 더욱 무겁고 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이 국가에서 불교라는 종교가 정치, 경제, 사회에 미쳐왔던 그리고 앞으로 미칠 영향이 궁금하다. 사회경제적으로 나아지려는 개인의 열망과 불교는 합일될지 갈등할지가 궁금하고, 처절하게 진압 당한 8888항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승려들의 후예가 여전히 존재하는지도 궁금하다. 미얀마 영토는 이라와디 강을 낀 충적평야지대와 동, 서, 북부의 산악지대로 구분된다. 산악지대는 소수종족들의 땅이라고 이들 중 일부(카친, 친, 카렌 등)는 기독교를 정체성으로 삼는다. 불교가 국가이념이었던 시절 이들에게 기독교는 저항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게다가 최근 미얀마가 국제적 비판의 대상이 되게 만든 무슬림인 로힝야 이슈까지 미얀마의 종교문제는 한 발 더 들어가면 복잡하다. 미얀마에 대한 공부거리 중 종교와 정치사회, 종교와 경제발전은 앞으로도 살펴보고 싶은 주제이다.

화려한 불교 사원
화려한 불교 사원ⓒ민중의소리

#2. 녹지와 호수의 도시

방문하던 시기의 운때가 좋았던지 날씨가 내내 좋았다. 더 좋았던 것은 양곤에는 걸을 수 있는 곳들이 곳곳에 많았던 것. 호수와 녹지가 도시 안에 제법 있고, 강변이나 녹음 속에서 젊은 사랑꾼들의 애정행각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개발도상국의 급격한 도시화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들이 호수와 녹지라는 점에서 미얀마의 더딘 개방과 개발이 역설적으로 이런 공간을 남겨두었다. 주변 개도국들이 겪었던 개발의 후과를 고려하여 호수와 녹지는 유지하는 선에서 도시 계획이 실행되면 좋겠는데 이게 지켜져 삶과 경제가 같이 발전할 수 있을지 관찰해 볼 일이다.

양곤의 공기질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중고 버스와 자가용과 택시로 곳곳에서 길은 막히는데 이 나라 좀 다르네 느껴진 것이 도로에 오토바이가 없다. 양곤 입문을 도와준 동료 박사의 설명으로는, 군사독재시절 오토바이를 탄 암살범들이나 기동력을 갖춘 집단의 급습시위를 막기 위해 양곤 시내의 오토바이 이용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대중교통이 미발달한 상태에서 오토바이는 서민들의 발이 되어준다. 그래서 동남아 중산층(한국의 중산층과는 개념이 좀 다릅니다.)을 구분할 때 오토바이, 휴대폰이 주요 지표가 된다.

그런데 오토바이 없는 도시라니. 양곤의 면적(576㎢)은 거의 서울(605.2㎢)에 육박하는데, 그렇다면 서민들은 어떻게 도시에서 움직이는 것일까? 개혁개방 이후 한국어가 그대로 붙어 있는 중고버스, 중고 승합차들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민 일반을 위한 대중교통은 많이 부족하다. 버스 타기가 주저되는 차 없는 외국인들은 꼼짝없이 (그랩)택시를 타야하는데 그렇다보니 교통비가 만만치 않게 든다.

호수와 녹지는 유지되고 있지만 오토바이 없는 도시. 이 사이에 양곤의 대중교통은 어떻게 자리 잡게 될까? 이것저것 건드리다 동남아 도시화도 살펴보고 있는 필자에게 관찰의 포인트이면서 국제협력을 위한 정책 개발 차원에서도 계속 주시해 봐야 할 대목이다.

#3. 양곤 순환열차

양곤을 찾는 관광객들이 쉐다곤 방문과 더불어 꼭 한 번씩 체험해 보는 활동이 양곤 순환열차 타기이다. 양곤의 도심과 도시 북부의 근교지대까지 한 바퀴를 도는 순환열차다. 대략적으로 양곤의 도시 경계를 다 포괄할 정도로 도달범위가 넓다. 대중교통 부족한 이 도시에서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기에도 충분해서 출퇴근 시간대에는 만석이 된다. 관광객의 재미보다는 서민들의 삶을 실어나르는 열차에 가깝다.

양곤의 순환열차, 객차 안에 키스 금지 표지판도 붙어 있음(우측)
양곤의 순환열차, 객차 안에 키스 금지 표지판도 붙어 있음(우측)ⓒ필자 제공

방문자의 입장에서 이 키워드를 검색하면 시간여행자라는 표현이 제법 나온다. ‘우리나라 6~70년대가 이랬을까’라는 상투적인 표현과 더불어 출퇴근 시간대를 피해 방문자들은 재미삼아 순환철도에 오른다. 37개에 이르는 역을 3시간 반에 걸쳐 덜컹거리며 천천히 한 바퀴 도는 코스다. 양곤 외곽의 농촌경관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 열차에 타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 일상을 훔쳐보는 것이 더 큰 목적일 수 있겠다. 온갖 물건을 파는 상인들부터 하릴없이 시간을 함께하려는 사랑꾼들(객차 안에 키스 금지 표지판도 붙어 있음) 일찍 하교하는 학생들까지 저들의 일상의 일부를 엿보는 것이 이 여행의 묘미라면 묘미이다.

그런데 양곤 순환열차의 이런 모습은 볼 날도 길게 남아 있지 않다. 일본국제개발협력단(JICA)의 지원으로 순환열차 현대화 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 쥐도 돌아다니는 낡은 열차들도 에어컨 나오는 깔끔한 열차로 바뀌고, 객차 높이와 맞지 않게 낮아서 거의 뛰어오르고 내려야 하는 플랫폼과 높이 맞추는 작업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출퇴근과 등하교를 하는 시민들에게는 속도감이 생기는 좋은 일이고, 가난한 행상이나 주민들에게는 가격이 오를 터이니 걱정되는 지점일 것이다.

양곤 순환열차에서 서민들도 관광객들도 좋아했던 역이 있다. 양곤의 최대 재래/도매시장이었던 다닝곤 시장과 연결된 다닝곤역. 몇 년 전 EBS의 세계테마기행에서 본 적도 있고 나도 기대를 했었는데 시간도 없었지만 그곳엔 이제 재래시장은 없고 도매시장만 남았다. 태국 자본으로 대형 창고형 건물이 들어서는 현대화사업이 진행된 후로 물건을 파는 사람도 물건이 유통되는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관련 동영상을 살펴보니 도매시장에서 팔리는 농산물도 로컬에서 나는 것보다 태국산 상품이 도매가격으로 판매된다고 한다.

하나씩 사라져 가는 풍경들.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사라져가는 것들이 아쉬운 사람들은 누구인가. 변화가 좋은 것일까. 경제발전 효율성 등을 고려한다면 현대화를 향한 변화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변화로 인한 혜택과 비용은 대체로 그 사회의 권력구조를 비틀기보다 확대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먀냥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 아쉬움에 그들의 가난을 상품화하려는 관광객의 시선은 없었나 자문도 해 본다.

#4. 책 읽는 사람들

양곤에서 현장조사 중이던 동료박사는 서점을 가고 싶다는 내 손을 잡고 양곤의 센터로 이끌었다. 양곤의 남부, 지도상으로보면 격자형으로 구획화가 되어 있는 지역. 그 곳은 식민시절 지어진 5~6층 규모의 석조건물들이 즐비한 장소이다. 고딕풍의 식민지 건축물들인데, 방치된 낡은 외관에 이끼와 풀이 자라는 것도 보였지만, 2013년 이후에는 페인트칠도 다시하고 리모델링 후 고급 취향의 상점이나 티하우스(찻집보다는 식당에 가깝습니다)로 바뀐 곳들도 제법 보였다.

안내자의 손에 이끌려 찾은 곳은 책방 거리. 길거리 노점 상태로 비록 해적본이지만 책을 파는 행상들도 많이 있었고, 골목 안쪽에는 제법 오래된 책방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미얀마도 50년 넘게 군사독재가 있었던 나라이고, 1988년 유명한 ‘8888항쟁’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대학이 폐쇄되기도 했었다. 이른바 우민화정책. 배운 사람들의 저항을 막으려는 선택이었다. 그 결과 미얀마의 고등교육은 크게 쇠퇴하였고, 민주화 이후 인재들을 찾는데도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양곤의 책방 거리
양곤의 책방 거리ⓒ필자 제공

그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던 나에게 길거리 책 행상과 가만히 앉아 독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낯설지만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풍경이 개방 이후의 모습인지 독재 하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왔던 전통인지 모르겠지만 책 읽는 시민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은 그래도 이 나라에 대해 희망을 걸어 볼 근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의 첫 번째 덕목은 다독(多讀)이다. 많이 읽기. 물론 요즘 세상에 읽기의 대상이 책으로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책으로서의 사람도 함께 읽는 세상(최근의 휴먼라이브러리 현상)이니, 읽기의 대상에는 활자를 넘어서 공간이나 경관, 어떤 인물의 삶과 경험도 포함될 수 있다.

여행도 세상읽기라는 점에서 독서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 여행의 일차적 목적은 나의 일상과는 다른 것에 대한 직접체험이다. 최근 들어 여행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예컨대 과시), 여전히 여행은 ‘지금, 여기’와는 구분되는 ‘다른 시간, 다른 장소, 다른 경험’을 추구한다. 그 경험이 남다를수록 여행에 대한 추억도 깊고, SNS 세계에서의 과시의 목적에도 더욱 부합하게 될 것이다.

연구자들의 현지조사는, 여행과 비슷하면서도 한 발 더 나아간다. 여행은 세상 읽기에서 끝나도 되지만, 현지조사는 세상 읽기 더하기 자신의 해석을 통해 궁극적으로 글이 남아야 한다. 세상을 읽는 독자이면서 궁극에는 작가가 되어야 하는 그런 운명이랄까. 그러니 현장과 관계 맺기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현장에 대한 구조적 이해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가보거나 장기 체류가 필수적이다.

나에게 양곤은 아직은 연구현장은 아니다. 지난 여름의 짧은 양곤 체류도 구체적 연구주제가 있어서라기보다 예비조사에 가까운 방문이었다. 답을 찾기보다 질문부터 찾아야 하는 곳. 그러니 이번엔 거의 인상비평 수준의 양곤 방문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다시 양곤에 갈 일이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다시 갈 기회가 생기기를 바라고 있다. 기꺼이 안내자가 되어 준 동료 박사님에게서 다음에도 같이 와요~ 초대도 받았다.

“다시 고백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 도시에 대한 궁금함이 여전합니다.
그러니 저는 그 물음표를 안고 이 도시를 다시 찾겠습니다.”

이번엔 여행으로, 다음엔 질문을 찾아서. 아직은 다 알지 못하는 양곤의 매력과 재미있는 질문이 곧 생기면 좋겠다.

엄은희 서울대 사회과학원·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지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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